정부·산업계 “과학적 접근” vs 환경단체 “산업계 민원만 수용”
원전활용 확대 등 일부 제외하면 세부정책 이전과 차이 없어

[이투뉴스] 윤석열 정부가 3월 어렵사리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확정했지만 그 어느쪽에서도 확실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시민환경단체에선 산업계 엄살을 받아들여 기후위기 대응을 사실상 포기한 계획이라고 악평을 쏟아낸다. 반면 혜택을 입었다는 산업계에선 배출책임을 일부 줄여준 건 고맙지만 시장을 통한 해법 및 에너지신산업을 위한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한다.

온실가스 감축 책임이 갈수록 늘고 있는 에너지업계도 답답해하고 있다. 전력수급계획 등 후속대책이 나와야 발전원별 감축률이 확정되겠지만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감이 안오는 분위기다. 특히 대부분의 배출자가 에너지 공기업이라 제대로 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한 기후전문가는 이와 관련 “문재인 정부는 지나치게 과도한 감축계획을 세워 산업계를 두렵게 한 측면이 있고, 윤석열 정부는 원자력만 내세운 채 감축은 다 뒤로 미루는 경향을 보인다”며 “엇갈린 평가와 정권에 따른 엇박자가 온실가스 감축의 실행동력을 떨어뜨리지는 않는 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후행동시민연대 등 시민사회환경단체들이 제1차 국가 탄소중립기본계획에 반대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기후행동시민연대 등 시민사회환경단체들이 제1차 국가 탄소중립기본계획에 반대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기후위기·탄소감축 인식 ‘극과 극’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 4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 탄녹위 심의를 거친 기본계획은 곧이어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최종 확정됐다.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이행 및 녹생성장의 정책방향이 담긴 청사진을 최초로 선보인 셈이다.

내용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담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4억3660만톤CO2e 목표는 그대로 뒀다. 다만 산업부문 배출량을 당초 2억2260만톤(14.5%)에서 2억3070만톤(11.4%)으로 3.1%p 완화했다. 대신 전환부문은 1억4990만(44.4%)에서 1억4590만톤(45.9%)으로 1.5%p 더 키웠다. 산업부문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전환·에너지부문에 책임을 떠넘겼다.

탄소중립기본계획 정부안이 나온 후 최종 확정될 때까지 이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비롯해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천차만별로 달랐기 때문이다. 국가경제에 엄청한 충격을 주는 만큼 실현가능한 목표치 설정이 중요하다며 찬성의견이 나온 반면 국가 탄소중립계획을 산업계 민원수용하듯 처리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언론은 지난달 기사와 사설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년까지 40% 감축)를 ‘국가 자해와 같은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를 바이오나프타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한 목표였음에도 “위에서 숫자가 내려와 억지로 끼워 맞출 수밖에 없었다”는 산업부 관계자의 전언까지 실었다. 보면 볼수록 황당하고 기막힌 2030 NDC라는 이 글을 보면 보수 및 산업계가 탄소중립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반대로 최근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환경·시민단체들은 정부가 확정한 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철회하고, 현장 의견을 수렴해 친환경 중심의 계획을 재수립하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기후위기를 전혀 막을 수 없는 계획으로, 정부 임기 내에 온실가스를 펑펑 배출하다가 다음 세대가 급격하게 줄여야 하는 정의롭지 못한 계획”이라고 말했다. 탄소 배출량 세계 10위권인 우리나라의 기후대응 성과가 57위로 언제까지 ‘기후 악당’ 소리를 들을 거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감축 부담을 대폭 덜어낸 산업계지만 여전히 만족스럽다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들은 공정과 제품의 저탄소 전환을 준비하는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며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 정책은 물론 전환 과정에서 소외받을 수 있는 지역과 근로자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다. 또 고탄소업종의 구조적인 실업에 대비하고, 저탄소산업으로 전환을 지원할 직무전환교육 계획 수립도 대안으로 꼽았다.

탄소중립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산업계의 책임 문제와 함께 감축경로라는 두 개의 사안에서 충돌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산업부문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탄소중립은 요원하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란이 그것이다. 실제 철강·석유화학 등 산업부문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36%를 차지하며, 전력 사용량까지 포함하면 54%에 달한다. 여기에 이번 NDC에는 이전에 없었던 연도별 감축목표, 부문별 감축량 등 구체적인 경로를 설정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에선 윤정부 임기인 2027년까지 매년 1.9%만 감축하고, 2028년 이후 9.3%로 대폭 늘어난다며 오히려 책임회피라고 비판한다.

◆원전 활용 빼면 세부대책 차이 별로 없어
지난 3월 IPCC는 만장일치로 제6차 종합보고서를 채택하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재차 경고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확보할 기회의 창이 빠르게 닫히고 있다”는 내용이다. 특히 실무보고서를 통해 지구온도가 1.5도 상승하면 3억5000만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는 등 극심한 사회·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온도 1.5 상승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라는 답안을 내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한상의는 최근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탄소중립 전략보고서’을 통해 향후 추진해야 할 100대 정책 과제를 공개했다. 탄소중립 투자로 실현될 환경적·경제적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고 탄소중립 골든크로스(편익이 총비용을 앞지르는 시기)를 앞당긴다는 취지다. 다만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며 올바른 정보 확산과 사회적 수용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익 창출과 생존이 목표인 기업 입장을 우선하다 보니 IPCC 보고서와는 결이 상당히 다르다.

산업계는 탄소중립 3대 원칙으로 시장 원리를 활용한 정책 수단 강화, 과학기술 기반의 탄소중립 실현, 저탄소 투자 및 인센티브 정비를 강조했다. 이어 9대 전략으로 ▶국가 에너지시스템 개편 ▶전력시장 운영 효율화 ▶배출권거래시장 활성화 ▶산업경쟁력 강화 ▶친환경·저탄소 기술혁신 ▶R&D 확대 및 선제적 기술 상용화 ▶기후금융 활성화 ▶자원순환제도 개선 ▶민주적 의사결정 기반 구축을 꼽았다.

특히 ESS와 가상발전소 등 에너지신산업과 분산에너지 분야 스타트업을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며 정부의 지원체계 마련을 촉구했다. 더불어 규제에 막혀 에너지신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전력 시장·제도 개선과 에너지시스템 혁신도 요구했다. 우태희 대한상의 부회장은 “탄소중립을 단지 목적지로만 보기보다 성공적인 전환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 탄소중립기본계획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구체적인 방법론은 이전과 크게 차이가 없다. 우선 전환(에너지)부문을 보면 원자력발전 비중 증가와 재생에너지 비중 축소가 두드러진다. 가장 비용효율적인 원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원전 만능주의에 빠져 세계적 추세인 ‘재생에너지 죽이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원전을 빼면 에너지 효율혁신이 그나마 눈에 띄지만 “산업·건물·수송 등 수요효율화를 추진하고, 시장원리에 기반한 합리적 에너지요금체계 구축한다”는 틀에 박힌 계획이 메인이다. 대형건물의 에너지원단위 관리 제도화, 에너지정보 공개 및 에너지절약 강화, 전기차 에너지효율 등급제 도입, 에너지관리시스템 보급 확대도 늘상 나오던 아이템이다. 

산업부문에선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도입, 탄소저감 보조·융자 확대, 배출권 할당방식 개선을 통한 제도이행 유연성 증대 등 주로 기업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모아졌다. 건물부문도 이전 정부에서부터 논의됐던 제로에너지건축물(ZEB) 확대, 그린리모델링 확산, 대형건물 효율목표 부여 및 에너지소비량 평가제 도입 등이 그대로 등장했다. 수송부문 역시 전기·수소차 보급 확산을 제외하면 별다른 것이 없다. 일부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는 내연기관 신차판매 중단도 빠졌다.

기후전문가들은 정부가 통치이념과 우선순위에 따라 탄소중립에 대한 목표와 노선을 일부 변경할 수는 있지만 과도한 쏠림과 급격한 변화는 이행동력을 떨어뜨린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전·현 정부 모두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하지만 공감대 형성을 위해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쏟아냈다. ‘2050년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및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선 이념과 정권을 넘어선 지혜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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