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규 광릉숲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대표

▲황상규 광릉숲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대표
황상규
광릉숲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대표

[이투뉴스 기고 / 황상규] 환경, CSR, ESG, 바이오에너지 관련 몇 가지 직함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애착이 더해 가는 이름은 OO숲길 '걷사모'다. '걷사모'는 걷는 사람들의 모임일 수도 있고, 걷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어도 좋다. 현대 사회에서 걷는 것은 정신, 육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요즘은 전국 어딜 가나 걷기 편하고 풍경과 경치도 좋은 멋진 길들이 많다. 그래서, 자연스레 '걷사모'도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고, 많이들 걸어서 건강도 유지하고, 그리하여 우리 이웃 모두가 건강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며칠 전 이른 아침 시간에 광릉숲 길을 걷게 되었다. 출근길 지하철 속 인파에 끼여 고생했어야 할 시간에 집 근처 광릉 숲속을 걷고 있다니,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걷다 보니, 걸음에 속도가 붙고, 맑은 공기를 마시니 온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숲에 오면 늘 좋지만, 해가 뜰 즈음의 아침 숲은 그중에 가장 좋다. 숲도 사람처럼 잠을 잔다. 아마 숲속에 사는 동식물들과 미생물 등도 밤에는 잠을 자겠지. 야행성은 밤낮을 바꿔서 자고. 해가 뜨고 아침이 되면 사람들이 눈 비비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듯이 숲도 잠에서 깨어난다. 
숲속 동식물들은 밤사이 신체 대사와 호흡 운동을 한다. 호흡을 하는 동안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그 양은 많지 않아 여전히 숲속은 산소통이다. 아침이 되어 숲에 햇볕이 들고, 숲이 활동을 하게 되면 숲의 산소 농도는 급격히 높아지고 피톤치드, 자연 음이온 등 건강에 도움이 되는 물질들이 많이 만들어진다. 숲은 언제 가더라도 항상 맑고 신선한 공기를 우리 인간에게 나누어 준다. 숲에 가면 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원래 우리 인류의 고향이 숲이었기 때문이다. 숲에 들어가면 숲은 우리 몸 구석구석에 산소를 더 많이 공급해 주고, 신진대사 활동을 촉진하고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 준다. 

아침 해가 떠서 태양 빛이 숲에 닿으면 나무들의 하루도 시작한다. 잎사귀 속의 푸른색 엽록소를 통해 광합성 작용을 하면서 숲은 드디어 본격적인 생태계 일원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내가 사는 곳 남양주 서북부 쪽에는 600년 가까이 된 세조의 묘, 광릉이 있다. 근처 광릉숲 한가운데로 광릉천이 흐르는데, 이 하천은 주변 동식물들에게 물과 수분과 습기의 원천을 제공한다. 그곳에는 원앙 오리들이 곳곳에 무리지어 살고, 백로, 왜가리, 두루미들이 훨훨 날아다닌다. 밤이 되면 고라니와 멧돼지들이 하천까지 내려와서 먹이활동을 하고 광릉천의 물을 마시기도 한다,

일출과 함께 숲도 잠에서 깨어나지만 사람들도 잠에서 깨어나 활동한다. 광릉숲길에는 일년 내내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걷기 위해 모여든다. 나이 지긋한 노인분들도 많지만,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체력운동을 하는 젊은이들도 많이 걷고 뛴다. 

아침 숲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빨리 걷는 것보다 조금 천천히 걷는 것이 좋다. 걷다가 새로운 나무와 풀이 눈에 보이면 잠시 멈추어 서서 자세히 들여야 보면 숲은 더 많은 것을 전해준다. 아침의 숲속 공기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치 솜사탕처럼 혹은 누에고치의 집처럼 부풀어져 숲을 에워싸고 있다. 그 공기 덩어리는 산소와 피톤치드 등 각종 건강물질들로 이루어져 있고, 햇빛이 없는 밤 시간 동안 식물과 동물 그리고 미생물들을 치유하고 복원한다. 그래서 숲속의 아침은 말 그대로 생명의 아침이고 생태의 근원이며 어머니 지구의 원래 모습이다. 

종교의 기원이나 신화에 나오는 태초의 이야기 속에 자연 생태계 스토리가 있다면 그 첫 모습은 숲의 아침이었을 것이다, 긴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숲속 나무들의 잎사귀 속 엽록소들의 광합성 활동이 시작되고, 광릉천은 반짝이는 금빛 모래를 가로지르며 흐른다. 이른 아침에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운동화 끈 질끈 묶고 떠나는 아침 산책은 숲의 품속으로 빠져드는 작은 여행이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발뒤꿈치로 바닥을 뒤로 힘껏 차면서 온몸을 앞으로 움직이며 걷는 걸음사위는 잠든 내 정신의 영혼을 깨우는 한 줄기 죽비(竹篦)이자, 한 꺼풀 속 내 자아로 들어가는 출정식(出征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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