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ㆍ생산능력ㆍ재무건전성 '탄탄'
대기업 신뢰 바탕 해외진출 목표

1978년 한 지방역의 서울행 기차 안. 스무살 한 청년이 차창밖 고향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곁에는 앳된 얼굴의 아내가 있었다. 수중에 2만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을 감행하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이 청년은 D기공이란 회사에 입사했다. 엔지니어 사장 아래서 코피를 흘려가며 일을 배웠다. 이듬해에는 첫 아이도 낳았다. 그러나 살림은 늘 팍팍했다. 사글세 방을 전전해야 했다.

속옷이 떨어져 아내의 것을 빌려 입기도 했다. 하지만 이 청년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돈 때문이 아니라 기계 만지고 설비를 만드는 일에 대한 열정과 애착 때문이었다.

그는 이후 10여년을 이 분야의 전문 엔지니어로 활약했다. 특유의 성실함과 눈썰미로 겸비한 그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었다. 그는 이때 '내가 경영을 하면 국내 최고의 장비를 만들 수 있겠다'는 욕심이 났다.

1991년 3월. 그는 퇴직금을 털어 인천에 공장터를 빌려 효준정밀기계란 작은 업체를 차렸다. 철도청 등에 제품을 출하하면서 수억원짜리 기계설비와 공작기계를 들여놓기도 했다.  

하지만 거래하던 중소기업이 부도를 내 하루 아침에 빚더미에 앉았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출근해 7시까지 견적과 설계를 직접 끝내고 현장에 들어가 직원들과 똑같이 철야작업을 했다.

좌절감에 죽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회사가 정상화되기까지는 꼬박 2년이 걸렸다. 

시련의 시절이 지날 즈음 그는 한 자동차사(기아차)로부터 설비제작을 의뢰 받았다. 내 손으로 만든 기계는 완벽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정성을 다해 제품을 납품했다.

대기업 실무자 사이에 '효준이 잘 한다'는 입소문이 구전됐고 일감은 밀려들었다. 그 사이 이 업체는 설비가공 중심의 사업영역을 보수와 제작부문까지 늘렸다.

이후로도 IMF사태, 경쟁업체의 유언비어 유포로 수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오뚜기 같은 그의 열정은 고비마다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현재 이 업체는 현대ㆍ기아차, 현대제철, 파워텍, 로템 등의 유수기업을 거래처로 둔 연매출 110억원(2007년)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랜 제조업 불황과 경기침체 압박 속에도 올해 170억~2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산업플랜트, 자동화 시스템, 정밀부품 가공업 분야에서 '장인기업'으로 정평난 효준정밀주식회사 CEO 김영주 대표와 그의 회사 이야기다. 

 ▶ 산업설비의 '명가' = 지난 17일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효준정밀 가공ㆍ제작ㆍ조립 공장. 김 대표의 안내로 이 회사의 핵심 사업장인 4000여평 규모의 가공반, 조립공장, 제관 1ㆍ2공장, 연구동 등을 속속들이 둘러봤다. 평균 15년차 이상의 엔지니어들이 각 공정에 배치돼 한창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중자조형기, 블록자동 적재장치, 탈사장치, 로전대차, 탕도파쇄기, 제품 취출기, 본딩머신, 타각기, 쿨리드럼 및 집진설비, 이재기, 고압주조기, 수평원심주조기, 이송장치 등 이름도 생소한 자동화 설비가 이곳을 거쳐 전국의 산업 현장으로 납품됐다.

의뢰사의 요구라면 어떠한 환경과 조건이라도 탈없이 제 몫을 해내는 설비를 만들고 철저한 사후관리까지 책임지는 것이 효준정밀의 강점이자 약속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만들 수 없는 설비는 없습니다. 말로 하는 수주가 아니라 기술과 신뢰로 보답하는 회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자사의 경쟁력을 설명해 달라는 주문을 받고 즉석에서 김 대표가 답변한 말이다.

현재 효준정밀은 시간당 500톤을 수송선에 실어나르는 대형 선적기를 자체 기술로 제작해 시험 운전을 벌이고 있다. 대북 에너지ㆍ자원 교역업체인 서평에너지가 북한 항구에 설치할 목적으로 의뢰한 제품이다.

하역기가 아닌 선적기를 이 정도 규모로 만든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김 대표는 "우리 기술을 믿고 맡긴 의뢰사가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만족하도록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며 "향후 남북간 자원교역이 확대되면 더 좋은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기본이 탄탄한 기업, 세계 진출 목표 = 김 대표는 설비업체의 필요충분조건으로 기술력, 생산능력(설비 및 장소), 재무능력 등을 꼽았다. 세 가지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기업의 영속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선 첫째 조건인 기술력은 효준정밀이 가장 자랑하는 부문이다. 실제 모 제철회사에 납품된 열연공장 설비는 일본 미쓰비씨중공업 제품이상의 성능을 보여 현장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는 귀띔이다.

그는 지금의 기술력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 나니와, 야으즈키, 베아텍, KGK 등의 유명 설비업체와 기술협약을 맺어 꾸준히 기술력 향상을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4년 현재의 화성사업장으로 공장을 신축ㆍ이전한 것은 두 번째 조건인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현재 설비는 연간 300억원 이상 수주가 가능한 규모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조건인 재무의 경우 대기업도 받기 어렵다는 신용등급 BBB+를 획득한 것으로 모든 설명을 대신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키기 아주 쉬운 기본적인 약속부터 철저히 지키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면서 "기술력은 높이고 투자는 능력껏 하되 부채는 최소화한다는 다소 보수적인 경영이 오늘날의 효준정밀을 있게 한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남은 소망은 탄탄한 저력을 바탕으로 해외진출의 문을 여는 일이다. 최근 그는 한국기업을 대표해 파키스탄 공기업 총수와 만나 제철 금속 주조설비 시스템 구축을 의뢰 받았다. 이 공기업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눈독을 들여 얼마전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숱한 역경을 버텨낸 한 엔지니어의 열정이 낙후된 신흥국가에서 한국 제조업의 또다른 가능성을 실현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독일, 일본 기술은 무조건 인정하면서 국내 기업은 아무리 경쟁력을 갖춰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효준정밀이 세계속의 설비분야 대표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남은 열정을 쏟아 붓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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