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체질개선 기회로 삼은 일본 / 소비 낮추고 효율 높여야 하는 한국

1달러의 GDP(국내총생산)를 얻기 위해 한ㆍ미ㆍ일 3국이 투입하는 에너지량은 얼마나 될까?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일본이 1을 투입할 때 미국은 두 배인 2를 투입하고, 한국은 무려 3.2를 쏟아 붓는다. 유럽연합도 1.9 수준이다. 그만큼 일본의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얘기다.

 

최근 우리나라는 2012년까지의 국가에너지 수요관리 계획인 '제4차 에너지이용합리화 기본계획'을 확정하면서 2012년까지 국가 에너지효율을 11.3%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최종 목표는 지난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정한 '2030년 에너지효율 46% 개선'이다.

 

에너지 효율을 이 정도 수준으로 높인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수반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GDP 1달러에 에너지 3.2를 썼다면, 앞으로는 약 1.7만 써서 똑같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30여년에 걸쳐 세계 최고의 에너지 효율 국가로 변신한 일본의 정책 사례를 되짚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5~10년의 시간차를 두고 일본의 에너지 정책을 답습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일본의 에너지 혁명

 

결과적으로 1,2차 오일 쇼크는 일본을 강하게 단련시켰다. 일본은 1차 오일 쇼크가 터지자마자 '선샤인 계획'을 내놨다. 2000년까지 에너지 수요의 상당 부분을 비석유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목표 아래 정부가 신에너지 개발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1974년부터 10년간 일본 정부가 이 계획에 투입한 예산은 2233억엔에 달한다. 이 기간동안 일본 정부는 태양에너지, 지열, 석탄 액화, 수소 등의 구체적 신에너지 프로젝트를 만들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후일 선샤인 계획은 일본을 신에너지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는 시금석이 됐다.

  

곧이어 2차 오일쇼크가 터졌을 때도 일본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은 '에너지 절약'이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이를 위한 탄생한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정책이 1978년 출범한 '문라이트 계획'이다. 

 

이 계획을 통해 일본은 대형 에너지 절약 기술개발을 독려하고 에너지 전환 효율 향상, 미사용에너지 회수 등의 효율성 제고에 관한 연구를 뒷받침했다.

 

문라이트 계획의 수혜를 받아 성장한 산업은 ▲폐열 이용 ▲고효율 가스터빈 ▲연료전지 발전 ▲기초 에너지절약 기술 ▲민간 에너지절약기술 ▲에너지 절약 표준화 등이다. 에너지 관련법과 제도를 손질하고 전담기관을 만든 것도 이 때다.

 

일본은 1979년 '에너지 사용의 합리화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에너지 절약을 위해 필요하다면 산업체와 건물, 각종 설비들의 절약을 강제할 수 있는 의무조항을 신설했다. 이듬해에는 산업 기술과 에너지ㆍ환경 기술의 연구개발과 보급을 전담할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를 창설하기도 했다.

 

1980년대 말부터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문제가 대두되자 일본은 선샤인 계획과 문라이트 계획을 통합해 '뉴 선샤인 계획'을 1993년 수립한다. 

 

지속가능발전, 에너지,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계획은 개별적으로 추진되던 신에너지 기술, 에너지 절약 기술, 환경대책 기술을 통합해 중복되는 분야를 조정하고 온난화 방지를 위한 혁신 기술을 해외에 개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들 3개 계획이 추진되는 동안 일본 정부가 정책 지원에 투입한 예산은 1조3000억엔이다.

 

이후 고유가가 지속되고 청정에너지 수요가 증가하자 2006년 일본은 '신 국가 에너지 전략'을 내놓는다. 이 전략은 최첨단 에너지 수급구조 실현을 위한 분야별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2030년까지 에너지 효율을 30% 개선하고, 전기차와 연료전지차를 늘려 수송에너지의 석유의존도 80% 수준으로 낮춘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전체 발전량의 29% 수준인 원자력을 30~40% 수준으로 높이고, 해외 자주개발률을 40%로 높인다는 내용을 포함됐다.

 

지난해 '에너지 기본 계획'을 발표한 일본은 이후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한다는 'Cool Earth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올해 저탄소 일본을 목표로 하는 '후쿠다 비전'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 에너지 다소비 한국 '혹독한 대가' 각오해야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훨씬 큰 일본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일본인 1명이 연간 4.1TOE(석유환산톤)를 사용하는 동안 한국인 1명은 4.58TOE를 쓰고 있다.

 

오늘날 일본과 한국이 이처럼 상반된 소비패턴을 갖게 된 것은 1,2차 오일쇼크를 맞딱뜨렸을 때  양국이 선택한 에너지 정책에 기인한다. 일본은 '선샤인 계획'과 '문라이트 계획'을 통해 신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효율성 제고에 주력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계속 증가하는 석유소비를 사실상 방관했다. 에너지 소비 증가를 고도의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 '에너지 수급'을 제 1의 에너지 정책 목표로 유지했다.

 

1990년대 이후 '에너지이용 합리화법'을 만들어 수요관리에 나서긴 했으나 여전히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소비를 줄여보자'는 소극적 개념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이 1차 오일쇼크부터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데 주력하는 동안 단기적인 대책을 내놓으면서 '시간끌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30여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혹독한 대가를 앞두고 있다. 일본이 여유롭게 에너지 절감 기술을 상업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을 때, 우리는 소비는 줄이면서 효율은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의 1차 에너지소비량 증가율은 연평균 3.1%이다. 이 상태에서 우리가 계획한 국가에너지 효율을 달성하려면 에너지 소비 증가율을 2.3% 이내로 억제하면서 매년 2.4%씩 에너지 효율을 개선시켜야 한다.

 

이는 지난 15년간 에너지 효율을 가장 많이 개선한 독일의 1.8%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수요관리를 전제로 한 고효율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산업계의 근본적인 체질변화와 정부의 강력한 의지, 국민들의 수용성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신재생에너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에너지수요관리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라며 "일본처럼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하되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 산업계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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