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부교수

전문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가 있다. 기후변화협약 관련 국제회의에 참여 해 보면 상대방 국가는 이미 십여 년간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서 전문성을 쌓은 정부책임자와 약간 명의 관련전문가가 참여하는데 반해 한국 측은 한두 달 전에 임명되어 내용을 잘 모르는 정부 관료와 이를 뒷받침할 전문가 여러 명이, 그것도 지식경제부, 환경부, 외교통상부 해서 3개 부처가 모두 제각각 자기 부대를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십여 년 동안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은 실로 오랜만에 에너지가 우리나라 정책의 주요 관심사였던 한해였다. 국제유가의 고공행진과 이어진 급락 사태는 물론 선진국들은 이미 2001년~2003년에 수립하였지만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등구조 속에 갇혀 완성하지 못했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마침내 공표되었으며, 대통령의 저탄소녹색성장 선언에 이어 세부 국가기본계획의 발표로 연말을 마무리 하고 있다.

 

이른바 국내 에너지 이슈의 대부분이 2008년에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2009년은 교토체제를 이어갈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의 틀이 짜이는 해로서, 여기에 자원외교와 해외자원개발, 그리고 에너지산업 신성장동력 등을 더해 이른바 국제 에너지이슈의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및 정치 환경은 국민생활과 산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의 대부분을 외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면밀히 연구하고 분석하여야 할 대상이다. 에너지정책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국가정책의 주요 분야로 다루어져 왔으며 특히 장기적인 대비책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반도체,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우리나라 수출 주력산업 역시 값싸고 환경 친화적이며 안정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그 기능이 최대한 발휘된다.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수출산업의 육성뿐만 아니라 국민생활과 국토개발 및 환경보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렇듯 에너지정책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상당히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분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에너지는 또한 학술적으로도 다양한 학문이다. 에너지기술관련 학과들만 보아도 전기공학, 자원공학, 화학공학, 원자력공학, 기계공학, 에너지공학, 생물공학, 농학, 임산학, 환경공학 등 다양할 뿐만 아니라 배출되는 졸업생 대부분이 우리나라 에너지기술 분야 전문가로서 활동 중이다.

 

그러나 에너지정책 분야 교육의 경우는 에너지기술 분야의 전공들과 매우 차이가 난다. 현재 국내대학에서 에너지 정책만을 전문적으로 연구, 교육하는 학과는 단 한군데도 없으며 세부전공으로나마 에너지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곳은 단 두개 대학교의 공과대학 소속 학과 두 곳뿐이며 우리나라에서 에너지정책을 자기 주 전공으로 강의하고 있는 교수는 채 10명을 넘지 못한다.


이들 전공의 졸업생들이 현재 여러 기관에서 에너지정책의 수립에 기여하고 있으나 수요에 비하여 공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따라서 현재 에너지정책 및 기획 관련 기관들에 근무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최종학위를 받을 때 까지 에너지 분야의 정책연구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국책연구원으로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있어 천만 다행이다. 그 외에 우리나라에 에너지 분야 정책을 10년 이상 꾸준히 연구한 전문가가 몇 명이나 될까?  기후변화협약 쪽은 더 하다. 아마도 30여명 수준일 것으로 짐작된다.


정부 사정은 더 하다. 기후변화협약이나 에너지 분야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전문부처를 두고 이른바 해당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정책 실무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도 동력자원부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그나마 이런 전문성이 유지되었으나 순환보직제도의 단점을 들지 않더라도 현재는 잠시 왔다가 다른 부서로 떠나는 공무원들로만 정부조직이 구성되고 있다. 전문성을 고사하고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 어려운 체제인 것이다.


에너지정책 연구에 투자되는 연구비는 또한 어떠한가? 에너지기술개발 관련 R&D는 최근 몇 년간 실로 엄청난 규모로 늘어난 반면 에너지정책 관련 R&D 규모는 여전히 1990년대 수준이며 그 나마 대부분 국책연구소에 주어지고 있다. 연구비와 학생지원금이 없으니 대학이 인력양성에 나설 이유가 줄고, 전문가 양성이 안 되니 관련분야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선진국처럼 미래를 내다보고 10여 년 전부터 여러 대학에 기초연구를 맡기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국책연구원과의 협력 연구와 소수이나마 에너지정책 전문 인력의 양성이 꾸준히 계속될 수 있는 체계는 갖추어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닐지.

 

네덜란드나 스위스 등 유럽의 중소국가들은 대부분 20~50년 단위의 장기에너지계획을 수립하면서 대학과 연구소가 함께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가 여러 분야가 함께하는 종합학문인 것을 고려하면 에너지정책 전문가 양성에 아주 좋은 사례로 보인다.


교육만 百年大計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에너지정책 역시 장기적인 정책이다. 준비된 사람만이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사람은 많으나 에너지자원을 타국에 거의 전량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가 튼튼해지기 위해서는 에너지정책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대책이다. 정부도 학교도 에너지정책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공을 들이는 己丑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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