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기에 도산업체 속출 … 전통-신재생 불문 '중병' 앓아

녹색성장이라는 '훈풍'도 막지 못한 경제위기 '한파'에 일부 에너지ㆍ자원 업체가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급감한 매출에 상심할 새도 없이 불청객처럼 유동성 위기가 찾아오고, 가까스로 고비를 넘긴 업체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황의 먹구름 앞에 극심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위기는 기업의 규모나 업종, 미래가치를 묻지도 않았다. 낙관적 전망속에 승부수를 던진 기업은 되레 투자가 몰고 올 재앙을 근심해야 하는 입장이고, 명함도 내밀기 힘든 영세기업은 그나마 일감이 끊겨 공장문을 닫고 있다.

 

'100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 기회'라며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신재생에너지 부문은 물론 '앞으로 3대는 망하지 않고 간다'던 전통 에너지 산업도 예상 외 충격파에 적잖이 당황해 하고 있다. 업계는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생존전략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2일 에너지ㆍ자원 업계에 따르면 해외자원 광산의 경영권까지 확보하며 한때 전도유망한 자원개발사로 회자된던 P사(코스닥상장사)는 현재 본사는 물론 핵심 임원들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P사는 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지난해 오일 트레이딩 사업에 손을 댔다 손실을 입은 상태에서 해외 광구의 개발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사실상 도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P사는 광업진흥공사(현 광물자원공사)로부터 수백만달러의 개발자금까지 지원받은 업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휴지조각이 된 주식 탓에 소액주주나 투자자들의 피해가 막심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위험을 잠재하고 있는 '시한폭탄' 같은 업체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글로벌 위기는 녹색성장과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호재에 힘입어 어느 때보다 사업여건이 좋은 신재생에너지 업체들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기존 방식과 발전방식이 다른 풍력발전기를 개발했다던 R사(코스닥상장)는 최근 국내외서 추진하던 사업이 잇따라 백지화되는 악재를 맞으면서 주가가 역대 최고가의 30분의 1수준으로 폭락했다. 이 회사는 불성실공시법인이라는 낙인도 찍혔다.

 

두 차례나 교체된 후 부임한 사업담당 CEO는 현재 두 달째 연락두절이다. 실현안 된 기술을 테마주로 띄우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지난한 불황에 기업의 실체를 숨기지 못한 경우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학계의 한 관계자는 "R사처럼 포장만 그럴싸하고 평판이 좋지 않았던 기업이 도태되는 것은 어쩌면 경제위기가 가져온 순기능으로 봐야 한다"면서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조금만 힘을 보태면 우뚝 설 중소기업이 힘없이 무너지는 경우"라고 말했다.

 

지난해 폭발적인 외형 확대를 이룬 태양광 업계도 호황 가운데 찾아온 불경기를 뼈아프게 체감하고 있다. 정부 발전차액 삭감으로 내수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 해외 경제가 동반 침체하면서 수출길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모듈-시스템에 이르는 국내 밸류체인 기업사이에 불신이 증폭되면서 서로 '안주고, 안받는' 불협화음이 확대되고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런 가운데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리는 매출추이가 기업의 생존환경을 갈수록 어렵게 하고 있다.

 

T사 대표이사는 "지난해 10월 이후 지금까지 올린 매출이 작년 한달분도 되지 않는다. 채용은 물론 올해 경영계획도 세우지 못했다"면서 "상황이 이런데도 올해 경영목표를 '밑지고 팔아도 생존만 하자'고 세운 회사가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수십년을 영위해 온 전통에너지 산업이라고 여유를 부릴 입장은 못된다. 가스공사 집계에 의하면 지난 1월 천연가스 판매량은 전년동기 대비 13.9% 감소한 320만1476톤으로 나타났다. 부산의 한 도시가스사는 "판매량이 20%나 감소했다"며 울상이다.

 

전력시장도 상황이 비슷해 한국전력의 전기판매량도 11년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소식이다. 이들 모두 제조업의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산업용 사용이 급갑한 때문이다. 모 기업의 한 임원은 "정부가 말로는 지원한다고 하지만 가슴에 올라타 숨통을 조이는 일도 여전히 많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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