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오랫동안 기자를 상대했는데 결국은 입 연 사람만 피곤해집디다. 이 정도로 해둡시다."

 

거리낌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다 결정적 순간에 말문을 닫아버리는 이런 취재원을 만나면 난감해진다. 선험에서 비롯된 일종의 피해의식이 완강한 저지선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최근에도 이런 상황과 맞딱뜨린 적이 있다. 상대는 정년이 멀지 않은 공직자였다. '다 알고 있다'는 듯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를 짧은 시간내 무장해제 시킬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누가 그의 마음을 걸어 잠근것일까?.

 

짐작컨데 원인은 언론이 제공했을 공산이 크다. 더 구체적으론 그가 만나온 기자들의 미숙함이나 부주의가 초래한 결과로 추측된다.

 

대게 믿고 얘기했다 '발등'을 찍힌 경험이 있는 취재원들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 기자의 미숙한 기사처리로 은연 중에 취재원이 노출된 경우도 그렇다.

 

민감한 내부 정보나 파급 효과가 큰 정보를 외부로 흘리는 이들은 익명성에 기대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다.

 

안에선 도저히 해결히 안된다고 보고 최후의 선택으로 외부에 자신이 속한 조직의 치부를 노출시키는거다. 그로 인해 자신도 영향을 받게 되고, 최악의 경우 자리를 내놓을 각오를 하고 내리는 결단이다.

 

외부에선 '양심선언'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조직의 관점에선 엄연한 '내부고발자'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기자가 주로 취하는 방법이 취재원과의 합의다. 원하는 정보를 공개해주면 취재원이 원하는 수준으로 보도수위를 조정해 준다고 하거나, 필요한 시점까지 엠바고를 지키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실제 그걸 지키는 방법이다. 현장에선 이런 경우가 빈번하다. 

 

문제는 양측이 감내할 접점을 찾지 못했을 때다. 팩트가 부족한 기자는 아무래도 무리수를 쓰게 되고, 이 과정에 무고한 취재원들은 또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이럴수록 그들의 언론기피 성향이 점증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나 기록하고 알리는 기자의 숙명은 기자의 존재가치이기도 하다.

 

두서없이 글이 장황해진 것은 취재원 보호라는 기자의 본분에 소홀해 얼마전 본의 아니게 한 취재원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일을 지면을 통해 사과드리기 위해서다. 조직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용단을 내린 그분들의 충정을 생각하면 한 없이 펜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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