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 가격결정체계 문제있다" 이의 제기 / 민간발전사 ㆍ열공급사업자 '화들짝'

막대한 적자로 고민하고 있는 한국전력(사장 김쌍수)이 전력거래시장의 가격결정체계가 불합리하다며 이의를 제기,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연료비가 상승해 시장가격(매입가)이 오르면 전기요금 인상이 요원한 한전은 손해를 보지만 제값을 보장받는 민간발전사는 되레 이익이 늘어나니 이런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그래야 한전이 전력시장에서 사들이는 구매가격도 낮추고 궁극적으로 전기요금 인상 억제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명분은 충분해 보이지만 당장 수익률 감소가 불가피한 민간발전사 측의 강한 반발과 이해당사자간 논란이 예상된다.
  
12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초 한전은 이같은 내용을 뼈대로 하는 '전력시장 운영규칙 개정 제안서'를 전력거래소에 제출했다. 2001년 전력거래소 설립 당시 제정된 운영규칙은 전력을 시장에 내놓거나 사들이는 한전과 발전사 등 거래소 회원 누구나 수시로 제안을 낼 수 있다.

 

이번 제안은 월말께 정부ㆍ거래소 회원사ㆍ민간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인 전력거래소 실무협의회에서 우선 논의된 뒤, 5월께 규칙개정위원회에 상정돼 최종 제안 채택여부가 의결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시행까지는 전기위원회 심의와 지식경제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한전 전력거래팀 관계자는 "전력시장 개설 때부터 상존한 시장가격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개선해 제도의 합리성을 높이고, 시장가격이 과다하게 높아지는 점을 완화하기 위해 제안을 냈다"면서 "이번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한전이 사들이는 전력구매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 어떤 내용 담았나 = 본지가 입수한 '개정제안서' 요약본에 따르면 한전은 시장거래가 책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두 4건의 제안을 제출했다.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결론은 시장가(SMP) 하락에 촛점을 두고 있다.

 

우선 한전은 최대 전력수요에 따른 설비예비율 변동이 용량가격에 영향을 미치므로 예비율 15%를 기준으로 웃돈이 매겨지는 현행구조를 12%로 이하로 낮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현행 적정설비예비율은 설비규모가 5만2500MW였던 2002년 만들어져 용량이 7만2000MW가 넘어선 현재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한전과 계약을 맺고 급전지시를 받아 민간발전사가 공급한 전력의 계약가격이 거래가 책정에 영향을 끼쳐선 안된다는 제안도 포함돼 있다. PPA사업자로 불리는 이들 민간발전사업자로는 포스코파워, GS EPS, 메이야율촌, GS파워 등 4개사가 있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과 수급계약을 체결하고 시장가격이 아닌 계약가로 구매하는 발전기가 시장가격 결정에 포함돼 있으므로, 이를 제외하자는 것이 이 제안의 취지다"라고 설명했다.

 

지역난방공사처럼 집단에너지사업자의 수익을 좌우할 예민한 내용도 있다. 한전은 순수 전력생산 목적이 아닌 열공급, 연료의무사용, 시운전 등의 사유로 발전된 전력의 가격을 시장가로 통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메인 타깃은 열공급 사업자다.

 

이렇게 되면 열공급사업자는 경우에 따라 기존 판매가보다 싼 값에 전기를 팔아야 한다.

 

가동률이 저조한 양수발전소의 가동기회를 높이기 위한 조치도 눈에 띈다. 한전은 심야시간대에 물을 상부저수지로 끌어올려 전력소비가 많은 낮 시간에 발전하는 양수발전을 일종의 전력저장방식으로 보고, 이런 효용성을 인정해 입찰방식과 책정가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전 전력거래팀 관계자는 "현재는 양수발전사가 시간대별로 입찰하고 있는데, 이를 총가능발전량 개념으로 입찰토록 하고, 시간대별 구분은 거래소에서 계통 필요성을 검토해서 배분하는 내용"이라며 "발전단가도 시간대 개념이 아니라 그날의 최고 SMP로 책정해 달라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 '제안서' 나온 배경 = 지난해 한전은 2조9500억원의 눈덩이 적자를 봤다. 폭등한 국제유가로 전력 매입원가는 급상승했으나 정부는 물가안정을 이유로 전기료 인상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전원가 변동이 즉각 소비자가에 반영되지 않는 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한전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발전사의 영업이익률은 최소 8%에서 최대 51% 수준이다. 같은 기간 발전자회사가 -2%를, 한전이 -11%의 이익률을 기록한 것과 비교된다.

 

한전 관계자는 "이번 제안이 모두 채택된다 하더라도 발전사는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수익 증가액이 완화되는 수준"이라며 "이로 인해 한전의 적자폭이 줄어들고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만큼 합리적인 결정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 민간발전사 관계자는 "이대로 제안이 수용되면 회사별로 약 300억원의 손실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며 "일방적인 한전의 입장에서 논리를 만들고 이를 관철시키려는 것은 독점시장에서의 후진적 행태"라며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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