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9만기 이설 … 3500억원 지출

 
한국전력(사장 김쌍수)이 전봇대 이설을 요구하는 민원이 쇄도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동안 전기공급에 따른 전주설치를 공공사업으로 보고 이전 요구에 소극적 자세를 취해 왔으나 2007년 이후 국민의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이설비용을 부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전 배전운영처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은 전체 805만3000기의 전주 가운데 29만6000기를 옮겨 설치했다.

 이로 인해 한전이 부담한 비용은 3500억원에 달한다. 연간 2조원 안팎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한전은 각종 관련법에 근거해 전주를 이설하고 있다. 먼저 토지 소유주들은 헌법 제23조(국민의 재산권 보호 조항)에 따라 건물을 신축하거나 주차 공간 활용 등 다양한 이유로 전주 이설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이설 신청자는 토지 소유주에 한하고 있다.

반면 전주가 도로상에 있다면 '이설 원인을 제공한 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전기사업법 제72조는 나중에 시설을 설치한 자가 비용을 부담토록 하고 있다.  

이밖에 도로를 넓히는 과정에 발생하는 이전 사안은 도로법 제77조에 근거해 한전이 부담하며, 공익사업이나 재개발의 경우는 사업 시행자가 이설비를 내도록 하고 있다.

이들 관련 법에 의해 한전이 입는 손실은 막대하지만 현재로선 무분별한 이설을 막기 위한 뾰족한 수가 없는 상태다. 토지소유자가 원한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전주를 옮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토지소유주가 아닌 일반 민원인이 전주 이전을 요구하는 과정은 다소 복잡한 행정절차를 밟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나가던 행인이 이동에 불편을 주는 전주 이전을 요청하려면, 신청자는 한전에 일정한 개인정보를 제공한 뒤 한전 민원반이 출동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   

민감한 보상금 문제도 논란거리다.  

한전은 송전탑의 경우 전세권 등을 설정해 임대료나 토지 사용료를 일시불로 지불하고 있지만 전주의 경우 별도의 협의 보상금이 없다.

 한전 관계자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를 보급하고 있는데 개인 활동의 제약을 이유로 보상금을 지불해 달라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손바닥만한 토지를 사용하고 원하지 않는다면 무료 전주 이설까지 가능한 상황에 보상금까지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지 소유주인 서울시 쌍문동의 박모(50)씨는 "전주 건립 시 보상금이 지불되지 않았고 전기 요금은 똑같이 낸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토지 소유주와 건물 소유주, 실제 입주자가 다른 경우는 절차가 한층 복잡해진다. 전주 이설은 토지 소유주의 요청이라야 무상 이설이 가능하다.  

서울시 독산동에서 월 임대료를 지불하고 소규모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선(40)씨는 "주차도 불가능하고 간판도 가려 홍보에 차질이 있지만 건물 소유주와 토지 소유주가 달라 의뢰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