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나라 정부엔 있는데, 한국 정부에만 없는 게 있다. 바로 에너지 전담부처, '에너지부(部)'다.

이름도 생소한 후진국조차 운영하는 전담부처를, 에너지의 97%를 수입하고 석유제품이 수출품목 1위(2008)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지적은 입장에 따라 불손하게 읽힐 수도 있다. 현존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를 부정해야 가능한 단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경부의 직제만 살펴보더라도 전혀 근거없는 얘기가 아니다.

현행 에너지 행정은 지경부 조직의 4분의 1에 국한돼 있고, 그나마도 무역행정과 함께 묶인 복수차관 소관이다. 제 아무리 에너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해 봐야 산업, 경제, 무역에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안정적 공급을 지상과제로 추진해 온 그간의 에너지정책이 유가가 급등할 때만 반짝 관심을 갖도록 그릇된 타성을 심어놓은 측면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정부조직이 '정책부재'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에너지정책은 적어도 5년, 길게는 30년 이상을 내다보고 수립,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지경부의 경우 핵심부서 책임자인 과장급은 대체로 1년, 실무행정의 주체가 돼야 할 사무관급은 아무리 길어야 2년 이내에 인사발령이 난다.

특히 산업, 경제, 무역 등을 담당하는 1, 2차관 일부 부서는 변화무쌍한 상황에 대응토록 임기응변을 요구받는 속성이 있다. 장기적인 계획 아래 5~10년 단위 정책을 일관성 있게 펴 나가야 할 에너지 행정과 본질적으로 성질이 다르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최근 갑작스런 고시개정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태양광 정책도 따지고 보면 이런 시스템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무리해서 총대를 메지 않고 대과없이 공직을 끝내고 싶다'는 게 우리 에너지 공직자들의 가장 큰 바람이 아닌가. 

이런 현실이 무시된 채 지난 수십년간 전담부처 설립을 미뤄온 정부는 지금이라도 '에너지부' 신설을 진중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정원의 족쇄에 물려 지경부나 행정안전부가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앞으로도 주체있는 에너지정책과 정책 철학을 기대할 수 없다. '자웅동체'의 조직 형태에서 비롯된 일종의 자기모순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경부는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다.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자면서 에너지절약과 온실가스 감축은 강제해야 할 처지다. 그야말로 중이 제머리를 깎아야 할 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 연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제15차 당사국 총회에서 우리는 의무감축국 지정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런 국가적 위기상황이 도래했을 때 전담부처도 없는 한국은 얼마나 초라하고 혼란스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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