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LG경제연구원>

한국 석유화학 업계의 수익성이 2004년 정점을 기록한 이후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 6개사(LG석유화학, LG화학-석유화학부문, 대한유화, 삼성토탈, 한화석유화학, 호남석유화학)의 영업이익률을 보면 2004년 14.1%의 높은성과를 기록한 이후 2005년 10.5%, 2006년 상반기 5.1%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 10년간 평균 영업이익률이 9%대 수준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석유화학 경기가 하강국면에 진입한 직후 1년 만에 경기 불황 수준까지 내려 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최근의 기업 실적 악화가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경기 싸이클에 기인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현재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이‘구조적 위기에직면한 것은 아닌가’라는 위기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최근 석유화학 산업 경기와 관련된 주요 이슈들을 점검하면서, 한국 석유화학 산업환경변화의 의미와 이에 따라 깨져야 할 고정관념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 석유화학 수익성 악화, 경기 싸이클 때문인가?

최근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수익성 하락을 지켜보면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세계 석유화학경기의 하강기 진입에서 찾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수차례 경험해온 석유화학 경기 싸이클로 볼 때 현상황은 경기 정점을 지나 경기 하강이 진행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개별 기업이 사이클에 노출되는 위험을 최소화 하면서 불황에 견딜수 있도록 허리띠를 졸라 매고 버틴다면, 다시 과거와 같은 경기 호황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하다.

그런데 제품 수급상황이나 동종 업계의 수익성에 비추어 볼 때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수익성 악화는 단순히 세계 경기 사이클의 하강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우선 수급측면을 보면 2006년 세계 석유화학산업의 가동률은 약 91% 수준으로 다소 타이트한 수급이 추정되고 있다. 이는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미국 및 중국 경제가 안정적 성장세를 나타내면서수요가 위축되지 않았고, 최근 2년간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공급 증가율도 연간 4%대의 평균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 동종 업계의 수익성도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즉 북미 석유화학기업의 수익성은 2000년 이후 꾸준한 회복세를 이어가면서 올해 상반기에도 1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중동의 대표 석유화학기업인 SABIC도 올해 상반기 약간의 실적 악화는 있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볼 때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경기는 정점은 지났지만, 아직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면 최근 한국석유화학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성과 부진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고유가와 시장의 공급과잉으로 구조적 위기에 직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 석유화학 산업의 환경이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고유가와 경쟁상대, 시장의 변화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배럴당 50달러 이상의 고유가가 고착화되면서,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원가 경쟁력은 과거에 비해 크게 열등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까지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원가 구조는 전체 물량의 10%에도 못 미치는 중동권 설비를 제외하고는 기업간차이가 크지 않았다. 따라서 원료(에탄, 나프타 등),단위설비 규모, 효율성, 기업별 설비운영 능력 등에따라 원가 경쟁력을 평가했고,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꽤 양호한 원가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고유가 시대에 들어 석유화학 산업의원가 경쟁력은‘어떤 지역에서 어떤 원료를 사용하는지’에 의해 결정되고, 그 격차도 현격하게 벌어졌다. 이는 원재료 비중이 제조원가의 60~70%를 차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현실이다.

예를 들어 에틸렌 제조원가의 경우 중동에서 에틸렌의 원료인 에탄 가격은 mmBtu(million ofBritish thermal unit, 기체 연료의 열량 단위)당0.75~1.5 달러로, 이를 유가로 대치하면 배럴당 약10 달러 수준에 해당한다. 또한 동남아의 에탄가는 mmBtu당 3~4 달러로 유가로는 약 25~30 달러수준이고, 북미는 에탄가가 mmBtu당 6~7 달러로 유가로는 약 40 달러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반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와 서유럽은 석유를 정제해서 생산하는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현 유가 기반으로 에틸렌을 생산한다. 이에 따라 과거 저유가 시대에 주요 기업들의 원료 기반이 10달러에서 20달러 사이에 분포되어 있었다면, 유가 60달러 시대에는 원료 기반이 10달러에서 60달러 사이로 원가 경쟁력의 차이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 이때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나프타에 기반하기 때문에 원가 경쟁력이 가장 열위한 쪽에 위치하게 된다.

둘째,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주 경쟁상대도 바뀌고 있다. 과거 저유가 시대의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화학 산업 육성 의지를 어느 정도 갖고 있었으나 인프라나 자금력의 문제 등으로 충분한 설비투자를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근래 고유가로 중동권 기업의 원가 경쟁력과 자금력 모두가 과거보다 훨씬 강해지면서 공격적인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따라 세계 시장에서 중동권 기업의 생산 비중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2010년에는 EG(에틸렌글리콜)의 경우 세계 총 생산능력의 30% 이상, PE(폴리에틸렌)는 20%, PP(폴리프로필렌)는 15%를 점유할 전망이다. 또한 중동기업들의 수출시장도 과거에는 유럽, 북아프리카 등 인근지역이 중심이었지만, 잉여능력이 커지면서 수입 규모가크고 성장성이 높은 아시아 시장으로 집중되고 있다. 결국 한국 석유화학 업계는 이제 중동권 기업들과의 본격적인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셋째,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참여하고 있는 시장 성격도 바뀌고 있다. ’90년대 초 한국 석유화학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던 당시 설비 투자에 참여한기업들은 하나같이 중국 시장을 제 2의 내수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즉 지리적 잇점과 문화적 동질감에 근거하여 중국시장을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가 공유하는 역내시장(Regional Market)으로 본 것이다. 이때 중국시장이 연평균 10% 이상의 고속 성장을 지속하면서 매년 수입이 크게 증가, 주변국의 석유화학 산업은 성장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중국시장의 성격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일부 품목에서는 자급률이 100%를 넘어서면서 수출국으로 전환하기도 했고, 중동권의 잉여물량이 중국으로 대량 유입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시황이 안 좋은 시장으로 바뀌었다. 더욱이 고유가로 구매자들의 원가 부담이 커지자, 물류 비용이나 빠른 배송, 고객 대응 등 인근 국가들이 가질 수 있었던 메리트 마저 그 영향력이 축소되었다. 이제 중국은 세계 각 지역 석유화학 제품의 잉여물량을 유일하게 흡수할 수 있는 시장으로,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격전장이 된 것이다.

한국 석유화학 업계, 깨져야 할 고정관념 세가지

이러한 환경 변화를 종합해 볼 때 최근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성과 부진은 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보다 본질적 원인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과 연결되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익숙해져 있는 고정관념의 타파가 중요하다. 그러면 한국 석유화학 업계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깨져야 할 고정관념은 무엇이 있는지 점검해보자.

●‘석유화학 사업, 버티면 된다?’
석유화학 산업의 대표적 특징중 하나가‘사이클’산업이라는 것이다. 이 사이클이란 세계 석유화학업계의 수익성이 비슷한 수준과 방향성을 나타내면서, 주기적인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석유화학 산업에서는 경기가 불황기에 접어들어도 그 시기만 잘 버티면, 다시 호황이 찾아와서 평균적으로는 안정적 수익성을 유지할 수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석유화학 경기 사이클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투자사이클이 과거와 달라지고있다. 석유화학 경기 사이클은 업계 수익성이 좋으면 투자가 집중되고, 그 결과로 수익성이 하락하면 다시 투자가 감소하여 경기회복을 이끈다. 이러한 논리는 업계가 비슷한 수준의 수익성을 공유할 때 가능한데, 현재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수익성은 기업마다 전혀 다르기 때문에 투자패턴도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써, 석유화학 경기가 저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2010~2012년에도 사우디와 이란, 카타르, 중국 등지에서 천연가스와 석탄 기반의 대규모 신규설비 가동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 국가의 기업들은 제품 가격이 다소 하락 하더라도 안정적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는 원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보유 자원의 부가가치 향상이 국가적인 중요 정책방향이기 때문에 경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투자를 실행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따라 향후 석유화학 경기 사이클의 변화방향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는 기업별로 수익성 격차가 커짐에 따라서 과거 업계가 하나의 기준으로 인식하던 경기 사이클이 점차 의미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향후 경기사이클의 회복시점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경기 하강이 시작되면 신규 투자 발표가 감소하면서 경기 회복 시점을 전망해 볼 수 있었는데, 금번 하강기에는 중동권 및 중국권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중장기 신규투자 발표를 지속하고 있어 불황기간이 과거보다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제 석유화학 산업계는‘버티면 된다’가 아니라,‘ 버티면, 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석유화학 사업은 규모의 싸움이다?’
석유화학 기업이 신규 투자를 추진하거나, M&A를발표할 때 가장 흔히 등장하는 표현이‘규모의 경제’실현이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 비용 효율성이 좋아지고, 원재료 구매와 제품 판매의 협상력도 강해지며, 보통 특정 시장에서 과점적 지위도 향유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된 수익성을 창출할 수있다고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인식은 아직 유효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정도 영향력은 남아있으나, 더 이상‘전가의보도’와 같은 의미는 상실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규모의경제’를통해얻을수있는실질적이익은원료 문제와 비교할 때 매우 제한적인 반면, 너무나 비대해진 규모의 처리를 두고‘진퇴양난’의 곤란을 겪는기업들이 빈번하게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산업에서‘규모의 경제’와 관련한 대표적 사례로서 Basell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Basell은 2000년 9월 PE/PP 사업에서 세계 Top 5안에 포함되었던 BASF와 Shell이 50:50의 지분을가지고 설립한 PE/PP 전문기업이다. Basell의 PP사업은 세계 생산능력의 20% 비중을 차지하는 최대 규모이고, PE사업도 유럽 최대, 세계에서 7번째로 큰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Basell도 2004년 이후 매각설이 지속되다가, 결국 2005년 4월Access Industries라는 투자전문 회사에 의해 인수되었다. 고부가가치화를 추구하는 BASF와 자원 및석유사업에 집중하려는 Shell에게 Basell은 전략방향도 맞지 않았고, 장기적 사업성도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사업에서 마케팅은 중요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석유화학 산업은 생산하면 어떻게든 다팔렸고, 대리점이나대형상사/딜러를 통한 간접거래비중이 높아 마케팅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즉, ‘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만 만들면 다 팔리게 되어있다’는 인식이 폭넓게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석유화학 업계에서도 마케팅에 대한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이것은 환경변화에서 언급했던 중동의 영향력 확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중동이라는 특정 지역의 생산비중이 커지면서, 그만큼 수출을 통해 전세계로 판매해야 할물동량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중동 기업들이 사업파트너나 M&A 기업을 선택할 때 글로벌 마케팅 역량을 최우선에 두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2년 사우디의 SABIC이 유럽 DSM의 석유화학 사업 전체를 인수한 것을 들수 있다. SABIC과 같은 대규모 신설비에 막강한 원가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납사기반의 노후화된 설비를 보유한 DSM 사업을 인수한 것은 다소 의외의 결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중동설비의 1차적인 시장이 유럽인 상황에서, SABIC이 DSM을 인수함에 따라 설비 가동 초기부터 유럽 시장 판매를 비교적 수월하게 실행할 수 있었다. 또한 2005년 이란 국영기업인 NPC의 Basell 인수 노력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 2의 SABIC으로 불리우는 NPC는Basell의 매각설이 나오면서부터 인수를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NPC에게 Basell은 글로벌 수출을 위한 최고의 마케팅 파트너로 평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압력으로 인수가 무산되자, 같은해 10월 필리핀의 PE 업체인 Bataan Polyethylene을 인수했다. 이는 아시아로의 대량 수출을 보다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업거점 확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결정으로, 추가적으로 중국 또는동아시아 기업 인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한국 석유화학 기업, 무엇을 할 것인가?

“사꾸라가 지면, 호랑이가 발톱을 세운다.”
10여년전 국내 한 화학 주간지의 표지 타이틀로 쓰였던 제목이다. 세계 석유화학 산업 지도에서 아시아의 맹주였던 일본이 쇠퇴의 길목에 접어든 반면, 한국은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확장을 반복하면서 아시아의 수출대국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2006년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은 10여 년전 일본석유화학 산업과 비슷한 입장에 처한 것으로 보여진다. ’90년대 초 일본이‘장기 내수 침체와 한국, 대만등의 경쟁자 출현’으로 범용 석유화학 사업을 포기했다면, 2006년 한국은‘고유가와 중동권 경쟁자의 부상’으로 범용석유화학사업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 석유화학 기업은 한국에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석유화학 업계는 ▲ 설비 및 석유화학단지의 합리화 ▲ 업계간 적극적인 제휴 및 통합 ▲정보전자 소재와 같은 고부가가치 사업으로의 전환▲ 범용소재의 차별화 그레이드 및 컴파운딩 사업강화 ▲ 공정 기술력 강화 ▲ 해외 직접투자 확대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거의 사업 구조재편 전략의 백화점이라 할만 하다. 다만 일본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기업의 사업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대형M&A가 없었다는 점이 구미 석유화학 업계와는 큰 차이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 일본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재편 결과를 평가하기는 이르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아직 진행 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인 석유화학 사업의 구조재편은 아시아적 정서와 경제시스템에서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 평가된다.

2006년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 석유화학업계는 우선 과거의 고정관념이나 관성을 과감히 버리고 변화하는 환경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서구와 일본의 사례들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비교를 통해, 장기 생존을 위한 바람직한 전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나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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