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사 발빠른 행보에 산업계 '시기상조'
산업계-정부-시민사회 의견차 커 난항

탄소세 도입 -> 배출권거래제 무게중심의 이동

[이투뉴스 손지원기자]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라는 두 가지 안이 화두에 올랐지만 최근 전력거래소의 모의시범거래제 실시로 배출권거래제로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탄소세의 경우 올해 초 기후변화대책기본법 28조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법제 조치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포함돼 곧 탄소세가 도입되는 것 아니냐는 여지를 남겼으나 정부는 곧 탄소세 도입 그 자체를 의미한 것은 아니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탄소세는 이산화탄소 발생량만큼 세금을 매기는 직접적 규제로 연료비 상승과 함께 국내경제에 정면으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 시점을 두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탄소세가 직접적으로 벌을 주는 것이라면 배출권거래제도는 잘하는 기업에게 이윤이라는 상을 남긴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르다.

A라는 기업이 총량제한 기준보다 이산화탄소를 더 감축한다면 그 비율만큼 타 기업에게 배출권을 팔아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닌 햇살'이라는 동화처럼 벌을 받지 않기 위해 감축하기보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기업이 자연스럽게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일 것이라는 예측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애초에 탄소세냐 거래제냐 하는 논의의 중심은 배출권거래제도 쪽으로 옮겨 가고 있는 형국이다.

<쟁점 1>탄소배출권 ‘어떻게' 팔까
'파생상품으로‘ VS. '새로운 시장 형성'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 쟁점이 부딪치고 있을까.

이제는 새로운 논의의 장이 형성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로 간다면 어떤 형태의 시장으로 가야 궁극적으로 온실가스감축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두 가지 대안이 나오고 있다.

첫째는 탄소권을 파생상품의 하나로 포함시키자는 주장이다.

한국거래소가 주관기관을 맡아 기업이 탄소배출권을 주식시장에 상장해 자연스럽게 매매가 시작되도록 하자는 움직임이다.

이 경우 미국, 캐나다, 오스트렐리아 등 이미 탄소시장이 성숙된 국제사회와의 거래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세계은행이 발표한 ‘탄소거래 세계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된 탄소배출권은 모두 1260억달러로 2007년에 비해 90%나 급증했으며, 거래된 이산화탄소 총량도 2007년 30억톤에서 48억톤으로 55%가 늘었다. 탄소배출권 시장이 이미 초기단계를 넘어서 성장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기존에 있는 파생상품의 인프라를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 첫번째 안의 핵심이다. 즉 '탄소권=파생상품'으로 보자는 시각이다.

두번째 안은 탄소권을 한국의 체질에 맞게 새로운 룰을 가진 시장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력거래소는 이러한 관점에서 네 가지 시나리오를 짜 모의시범을 실시하고 있다.

전력거래소는 ▲업종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다른 점 ▲유상할당으로 갈 것인가 무상으로 갈 것인가 ▲수출 의존도에 따라 부문별 차등감축을 할 것인가라는 큰 틀의 변수를 적용해 지난 10일부터 4개월 동안 어떤 것이 온실가스감축에 효과적인 영향을 끼쳤는가 실태조사를 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어떤 시나리오가 실수요자를 끌어들임과 동시에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지를 분석해 정부에 보고하는 것이 앞으로 진행될 이번 모의거래제의 핵심 사안이다. 
   
<쟁점 2>탄소배출권,‘누가’팔까를 두고 '샅바싸움'  

주도기관 선정 싸고 보이지 않는 경쟁 일어

주도기관 선정에 있어서도 보이지 않는 각축전이 일고 있다.

갈등의 두 주인공은 전력거래소와 한국거래소로 탄소배출권을 향한 접근과 대응 방안이 다르다 보니 주관 기관 선정을 두고 상호 긴장감이 형성되고 있다.

현재로선 양자 중 하나를 택일할 것인지, 아니면 경쟁체제로 갈 것인지 녹색성장위원회의 입장 발표도 불투명한 상태로 서로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위기다.

김인수 한국거래소 본부장보는 이번 모의거래에 대해 “부담 없는 탄소배출권 할당 연습이었지 실제 돈이 오고 가거나 하는 건 아니다"며 "결국 나중에 본 사업에 들어갔을 때 어느 기관이 해야 거래비용을 줄이고 거래 활성화를 이뤄낼지 녹색위에서 객관적으로 검토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곽광신 전력거래소 과장은 “탄소시장이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데 사실 초반에는 그렇지 못 하다"며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투자자금이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폭발적인 효과가 발생할 수 없다”며 금융시장 전문가가 주도권을 잡아 배출권 시장에 대한 부풀린 낙관론만 전개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감을 표했다.

곽 과장은 “한국거래소가 주장하는 실질적 인프라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배출권 문제를 주식거래처럼 투자가치가 있다고 하는 건 현 실정과 맞지 않는 이야기”라며 탄소 배출권을 주식시장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부터 난색을 표했다. 

그는 또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는 유럽 탄소시장 역시 하루 500권의 배출권 정도만 처리되고 있다”며 “주식시장처럼 유동성이 많지도 않고 쉽게 경매방식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인프라 구축이나 네트워크 문제가 복잡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렇게 양측의 대립각에 날이 서고 있는 상황에서 주관기관 선정의 결정권을 지닌 녹색성장위원회는 "올 연말까지 탄소 배출권 거래소 추진계획안을 만들 계획으로 그때서야 주관기관이 가려지게 될 것”이라며 섣부른 판단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쟁점 3> 뚜렷한 입장 차 존재해

산업계 "배출권거래제도입 너무 빠르다"
시민단체 "탄소세가 뒷받침 되야"


실제 거래의 수요자가 돼야 할 산업계 쪽에서는 배출권거래제가 빠르게 도입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입장이다.

이경훈 포스코 상무는 "총량규제로 철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5% 줄인다고 하면 매년 9000억원의 비용이 드는데, 연간이익이 5조원인 이 산업에서 이 정도의 비용을 기업들이 어떻게 감당하겠냐"며 "이는 자칫 산업 경쟁력 약화를 불러와 궁극적으론 국가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모의시범거래를 시행한 전력거래소는 “아직 배출권거래제를 꼭 해야 하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산업계에 존재한다”며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로 인한 기업 이미지 실추 우려가 가장 큰 고민으로 거래제 시행도 초반에 실수요자를 모으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시민단체의 입장은 '절반의 동의'다. 이성조 환경연합 연구원은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해 보겠다는 의지에는 공감하나 탄소세나 법안 정비로 감축이 소비자의 부담으로 연결되거나 탄소배출을 할 수 있는 권리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약속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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