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제협력 秘話①] 폭탄주 제의해 "터지면 어떻게 되나" 화들짝

[이투뉴스] 이번 주부터 모두 3회에 걸쳐 조찬제 편집위원의 '남북경제협력 秘話' 시리즈를 게재한다. 조찬제 위원은 대한석탄공사 남북협력팀장을 거쳐 시민단체 '사랑의 연탄나눔 운동' 상임운영위원으로 평양, 금강산, 개성을 오가며 10여년간 에너지나눔운동을 폈다. 현재는 남북경제협력 및 에너지ㆍ자원 민간기업(㈜비앤코)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금강산 총기사건으로 막혔던 길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금강산 지역에 도착한 트럭에서 북측 사람들이 석탄을 하역하고 있다. 이 트럭은 군사분계선을 넘는 과정에 기사가 잠들어 한판 소동을 벌였다.

 

▲ 조찬제 편집위원

북한에 연탄을 전달하려면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초청장 발급, 북한방문 증명서 처리, 방북 교육, 북한 주민 접촉 신고, 차량운행 신고, 허가, 물품 반출입 신고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이 북측으로부터 초청장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 연예인 등은 본명을 쓰지 않고 예명을 사용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초청 대상자 명단을 북한에 보내면 북측에서 초청장을 보내준다. 초청장이라 해봐야 이름, 직업, 주소 등이 적혀 있는데 종종 실명이 달라 신원조회 때 방북 승인이 나지 않기도 한다.

본인에게 신원조회 결과를 알려 주면 그 때서야 자신의 본명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이유로 어떤 분은 금강산으로 가다가 중도에 되돌아 온 경우도 있고, 또 다른 분은 운이 좋아 착오를 인정받아 동행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간단한 문서를 주고 받으면서 그렇게 자주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한 측에서 실수하는 것은 가명을 본명인 줄 알고 잘못 작성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북한에서 명단이 잘못 넘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

이유를 물어보니 남한에서 금강산 현대아산 사무실로 팩스를 보내면 거기에서 다시 평양으로 팩스를 보내고, 또 다른 부서로 여러 번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마지막 문서를 받는 승인부서에서 명단의 글씨가 흐려져 알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은 2004년 10월 처음으로 북한 금강산에 연탄을 전달할 때 전국화물운송자동차차주협회의 후원(무상)으로 직접 전달했다. 그것도 매주 인도요원을 편성해 갔는데 초청장이 오지를 않아 가슴 졸였던 일이 잦았다.

북한과 한 약속을 믿고 초청장을 접수받기도 전에 25톤 트럭 10대에 연탄을 나눠 싣고 서울의 한 연탄공장에서 출발했다. 마침 퇴근 러시아워 시간대라 경찰차의 도움을 받아 고성까지 내달렸다. 그러나 초청장은 근무시간 내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탄은 싣는 것보다 내리는 것이 훨씬 어렵다. 만약 초청장이 오지 않으면 25톤 트럭에 실었던 연탄을 다시 내려야 한다. 다시 내리게 되면 하역료와 자동차 대기료 등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을 먼저 떠난 것이다.

하지만 통일부 근무시간이 끝난 오후 7시경에 금강산 현대아산 사무실에 초청장 팩스가 들어왔다.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퇴근하지 않고 끝까지 일처리를 해준 통일부 직원들이 고마웠다. 방문증명서 등 행정처리가 끝난 시간이 오후 9시였고, 강원도 고성 금강산 콘도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경이었다.

현대아산 직원과 함께 강원도 험한 길을 끝없이 달려갔건만 그 새벽에 비는 왜 그렇게 많이 내리는지. 정말 울고 싶었다. 연탄은 비를 맞으면 힘없이 깨지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연탄이 비에 젖지 않도록 천막 포장을 잘해 두었다. 다행히 아침에 비가 갰다.

금강산을 오고 가면서 사건사고 경위서를 두 번이나 썼다. 한번은 25톤 대형트럭에 연탄을 싣고 비무장 지대를 오고 갈 때 그만 운전자가 도로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비무장 지대를 운행할 때 운전자와 선탑자는 차에서 내릴 수 없고, 군인의 안내를 받지 않고는 후진조차 할 수 없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일사분란하게 전진만 해야 한다. 천천히 느릿하게 운행하니까 운전자가 너무 피곤했는지 잠이 든 모양이다. 하지만 선도차는 후미 차량이 뒤따라오지 않으면 계속 전진할 수 없다. 너무 오랫 동안 차가 오지 않으니 큰 사고가 난 줄 알았다.

군사 분계선 통과 예정시간이 지나도 차량이 움직이지 않아 헌병이 왔다. 군사 분계선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으니 행사 진행요원은 물론 군조차 불안했는가 보다. 헌병 짚차가 후미로 돌아가 잠든 운전자를 깨웠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큰일이 생겼는가 싶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처음 군사분계선을 넘는 그 긴박한 순간에도 잠이 들 수 있다니… .

두 번째 사고는 이듬해 북측에서 일어났다. 북한 고성군에 연탄을 전달하고 오후 2시 30분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그러나 점심식사 이후 출경시간(서울로 돌아오는 시간)이 지나도록 접선장소에 북측 안내 차량이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칫 아뭇소리 못하고 억류될 판이었다.

당장 현대아산에 연락해 나갈 시간이 지났는데도 북한 안내요원들이 오지 않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달라 부탁했다. 그 연락을 받고서야 북한 금강산 관광총회사 직원이 와서 일행을 외금강 호텔로 데려갔다.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고 거기서 기다리라고만 했다. 난 몇번이나 북한을 방문했기에 덜 긴장했지만 처음 온 운전자들은 얼마나 불안했을지 짐작이 간다.

예정된 시간에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남측과 상의를 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만만한 게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맨 마지막 나가는 관광버스 뒤를 따라 간신히 남한 땅으로 왔다. 통일부에서는 나와야 될 인원이 제 시간에 나오지 않으니 얼마나 또 걱정을 했을까.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그들은 소임을 결코 소홀히하지 않았다. 경위서를 써 달라고 했다. 못 쓰겠다고 버티다 서울까지 가야하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해 내 뜻을 접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비무장지대는 자연생태공원이다. 독수리떼가 날아와서 한가롭게 먹이를 주워 먹기도 하고 멧돼지가 새끼를 이끌고 나와 도로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사람과 차량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것도 진풍경이지만 철책선 안은 곳곳에 지뢰가 깔려 있는데 산짐승들은 어떻게 지뢰를 밟지 않고 잘 다닐 수 있는지 신기한 일이다. 

연탄 전달을 위해 북한 관계자를 자주 만나니 여러가지 부탁을 받게 된다. 한번은 낚시도구를 자꾸 달라고 졸라 "너희들은 받기만 하지 말고, 뭘 좀 주기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잡은 고기를 건넸다. 큰 고기 몇 마리를 가져가라고 했다. 잡은 걸 모두 주면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그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더니 다 가져 가라고 했다.

어떻게 하는가 한 번 떠 볼 심산이었는데 다 가져가라고 하니 더운 날씨라 고기가 상할 것 같기도 하고, 비린내가 진동해 "잡은 고기는 당신들이 먹고, 당신들 마음만 가져가겠다"며 되돌려 준 적이 있다. 그들과 우리의 마음이 다른 게 아니라 그들도 우리와 같이 받은 만큼 주고 싶은 데 줄 게 없어서 마음 아파하는 것 같아 마음이 더 무거웠다.

개성에서 있었던 일이다. 다들 술이 얼근하게 취했다. 우리는 남쪽 식으로 폭탄주로 마시자고 했다. 북측 사람이 “폭탄주가 뭔가요? 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되는가요?” 라고 화들짝 놀랐다. 혹시 말실수한 것은 아닐까 걱정돼 “아, 그것은 폭탄주가 아니고 화합주입니다. 개성 인삼주와 룡성 맥주를 혼합한 화합주” 같은 거라고 하니 “그것 정말 좋은 술” 같다고 하면서 장단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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