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제협력 秘話 ③] 농장 돼지도 사료 부족해 날씬

[이투뉴스/연재] 북한은 술 문화가 발달돼 점심식사 때도 술을 마신다. 술이 있으면 노래와 여성이 따라 오게 마련. 특히 북한 '접대원'들은 노래 실력과 악기 연주 실력이 대단하다. 한 번은 얼큰하게 술에 취해 접대원 동무와 춤을 추게 됐다.

▲ 조찬제 편집위원

이때 북한 간부는 김일성 주석과 관련된 노래를 불렀다. 일행 모두 점잖게 경청하는 분위기가 되자 필자와 함께 춤을 추던 접대원이 완강하게 사양했다. 필자는 그녀를 꼭 붙잡아 노래가 끝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노래 중간에 깜짝 놀라서 추던 춤을 그만두는 것도 어색하고, 계속 춤을 추는 것도 이상했지만 춤을 마무리 짓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자 노래는 곧 끝나고 주위 분위기는 무겁게 변했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 남자답게 당당하게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북측에서 "조 선생은 여자를 정말 좋아해 우리 수령님을 찬송하는 노래도 들리지 않나 보다"며 핀잔을 줬다. 일행 모두 웅성거리며 각자 한마디씩 했는데 다행히 크게 문제삼는 이는 없없다. 하긴 술 마시고 북한 접대원 동무와 블루스 한번 췄다고 죄를 씌울 수 없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용기가 대단하다.

북한을 방문할 때는 작은 생활 필수품을 준비해 간다. 북측에선 처음엔 정중하게 사양하지만 이내 받아 가져가곤 했다. 금강산을 함께 다녀왔던 인도요원 중에 고가의 화장품을 다량 후원하는 분이 있어 그것을 몇 차례 나눠 가져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아무도 받지 않으려 했다.

북측 간부들에게 "부인들이 좋아할 테니 한번 선물해 보라"며 어렵게 쥐어 보냈다. 이후 그를 만나 "부인이 좋아하더냐"고 물으니 "너무 좋아했다"며 평양을 방문하면 꼭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평양을 방문했지만 그와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한번은 여벌의 화장품을 우리에게 친절히 대해주는 금강산호텔 식당 직원에게 준 적이 있다. 재방문할 때마다 그녀가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반겨주는지. 여자는 남북을 가리지 않고 선물에 넘어가는가 보다. 그래서 자주 선물하면 당연히 기다릴 것 같아 짓궂게 굴 요량으로 "화장품을 전해 줄 테니 내가 묵고 있는 호텔 룸으로 오라"고 했다.

그녀는 정색하며 "직원들은 호텔 룸에 올라갈 수 없으니 식당으로 가져다주면 고맙게 받겠다"고 했다. 그 후 그녀는 결혼을 했다고 한다.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종업원들은 관광객 식사가 끝나면 식당 안에서 자기들끼리 끼니를 때운다. 얼마나 맛있게 많이 먹는지 놀라 서 유심히 쳐다봤다. 식당에 처음 들어온 접대원은 영양이 부족한지 얼굴이 푸석푸석하다.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면 얼굴에 윤기가 흘러 처음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북한은 남녀 차별이 없는가 보다. 젊은 여성들도 장화를 신고 채소밭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고 남자와 똑같이 일한다. 관광객이 보고 있어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 걸 보니 이미 일상화된 듯하다.

겨울철 북녘 풍경은 우리네 50~60년대 시골과 같다. 일이 끝난 농한기에는 일이 없어 따뜻한 햇볕을 쬐기 위해 도란도란 앉아 있는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하지만 어려운 현실과 마주한 그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측은지심이 간다.

금강산에 연탄을 여러 번 전달하다보니 어느새 그들과 친해져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안내해 주기도 했다. 한번은 고성군에 있는 돼지농장을 가보자고 하니 흔쾌히 승낙했다. 농장이라면 사육 돼지 수가 어느 정도 되고, 건물도 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어미돼지와 새끼돼지를 합해 십수 마리가 전부였다.

건물도 너무 작아 더 큰 곳이 있는 줄 알고 다른 곳을 더 보여 달라고 하니 안내원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싶어 걱정을 했는데 "이것이 전부입니다"고 말해 오히려 내가 무안했다. 그곳에 있는 돼지는 통통하게 살이 찐 게 아니라 사료를 먹지 못해 다이어트한 돼지처럼 날씬하다.

그마저도 어느 정도 자라면 바로 도살한다고 했다. 씨돼지는 남겨 두기를 바랄 뿐이다. 돼지 먹일 사료도 지원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 같았으나 우리의 지원 한계를 벗어난 일이라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었다. 고주몽을 촬영했던 동명왕릉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 사찰이 하나 있는데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시주함이라 얼마를 시주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필자가 20유로를 시주했더니 주지스님이 염불을 해 주겠다고 했다. 염불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이때만은 진실한 신자가 됐다. 하지만 엎드린 상태에서 다리가 저리도록 목탁과 염불소리를 들어야 했다.

묘향산을 그들은 '향산'이라고 한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받은 선물을 전시한 국제전시기념관도 있다. 운치 있는 향산에서 북한 안내원이 요리해 준 음식을 먹으면 어느새 우리는 향산의 신선이 된다. 그 중에서도 백합요리가 일품이다.

백합 위에 알콜을 부어 구워 먹기도 하고, 알콜이 없으면 휘발유를 뿌리기도 한다. 조개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그 백합 맛을 처음 겪어보는 사람은 환장을 한다. 맛있다고 하니 갈 때마다 백합구이를 주고, 운이 좋으면 양주와 곁들일 수 있다.

이맘때 쯤이면 북한에서는 송이 채취가 한창이다. 당시 1kg에 100달러를 주고 여러 상자를 샀는데, 중국 세관에 걸렸다. 그때 우리와 같이 비행기를 탔던 분들이 송이를 많이 샀는데 폐기 처분될 판이었다. 그때 한 분이 박스를 개봉해 송이를 날 것으로 씹어 먹었다. 

일행이 너나할 것 없이 그렇게 하니 세관원이 깜짝 놀랐다. 일부를 줄 테니 공항 밖으로 가져가 요리를 해먹어도 좋다고 했다. 우리는 그 귀한 송이를 공항 부근 중국집에서 중국요리처럼 허겁지겁 해치웠다. 결국 양이 너무 많아 그 향과 맛에 질려서 다 먹지 못하고 남겨두고 온 적이 있다.

우리는 북한에 갈 때 선물을 마련해 나눠주지만 선물을 받아본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필자는 양주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그것도 나폴레옹이 그려져 있는 XO급 코냑이었다. 서로 존중하면 귀한 손님을 모시는  모습은 남과 북이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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