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량 늘지만 수요개선은 기대난… 후발기업 희생양 될 수도

 

▲ 미국 rec사의 폴리실리콘 생산공장 전경.

[이투뉴스 이상복 기자] '황금알 낳는 거위', '태양광의 진주', '100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

폴리실리콘 산업을 빗댄 그간의 표현들이다. 실제 물량이 달릴 땐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만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공급과잉', '치킨게임', '레드오션' 등 부정적 단어들이 심심치 않게 오간다. <본지 2009년 8월 17일자 "폴리실리콘 '레드오션' 진입하나" 기사 참조>

특히 국내외 후발업체가 대거 시장에 참여하는 올해는 수요나 기술혁신에 따라 어느 때보다 이 산업의 기상변화가 클 것으로 보인다. '태풍의 눈' 속에 들어선 폴리실리콘 산업의 기상을 둘러봤다.

◆ 낮아진 문턱에 후발기업 잰걸음 =  폴리실리콘은 대규모 자본과 첨단기술이 동시에 요구되는 산업이다. 설비투자에 앞서 제조기술과 운영 노하우가 확보돼 있어야 한다. 

여러 기업이 군침을 흘리면서도 이같은 진입장벽 때문에 정식 진출을 선언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 기준 세계 10대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메이커(반도체 제외)는 독일 바커, 한국 OCI, 미국 햄록, 이탈리아 MEMC, 미국 REC, 중국 GCL솔라, 일본 M.Setek, 도쿠야마 등 순이다. 

전체 생산능력은 7만31톤으로, 상위 10개사가 69.4%(4만8600톤)를 점유하고 있다. 아직 일부 기업들만의 과점시장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의 추격은 예상보다 빨랐다. 

2008년 세계 시장의 15%를 점유했던 중국은 지난해 2배 이상 점유율(32%)을 늘렸다. 상위 10개사의 점유율은 2008년 84.2%에서 올해 69.4%로 떨어졌다. 그만큼을 신규업체들이 가져갔다는 얘기다.

특히 50여개의 프로젝트가 추진된 중국에서만 올해 말까지 8만~10만톤의 물량이 쏟아질 것이란 예측이  있다. 일부 시장 분석기관은 올해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20만톤이 공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상용화 운전에 돌입하는 국내 기업도 다수다. KCC와 한국폴리실리콘이 1분기와 3분기에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고, 웅진폴리실리콘도 공장 준공을 서두르고 있다.

삼성정밀화학, SK케미칼도 진입시기와 규모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공급과잉 '치킨게임' 부르나 = 문제는 이처럼 늘어나는 공급에 비례해 수요가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업계는 올해 메이저 기업들의 생산량을 포함, 최소 15만톤이 공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중국기업들의 상용운전 시기 등 시장변화에 따라 가변적이나 수요는 평균 10만톤 수준에 그쳐 약 5만톤의 초과공급이 발생할 것이란 예측이다. 이렇게 되면 후발기업의 경우 기대마진 축소가 불가피하다.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는 폴리실리콘은 원가비중 가운데 설비 감가상각이 34%에 이른다. 현재 기술로 인건비나 에너지(전기사용량)를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때문에 과거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처럼 '승자 독식' 구도가 전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양세인 OCI 기술연구소장(전무)은 "내년부터 점차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신규 참여 물량이 이를 앞서 당분간 공급과잉 상태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치킨게임이 벌어진다면 고순도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업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소장은 "문제는 품질과 가격이다. 같은 값이면 고객은 고순도를 선호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면서 "후발기업이 텐-나인(Ten-nine, 99.99999999%)급 양산기술을 확보하기까지는 기술력이 뒷받침되더라도 상당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 화합물계 태양전지도 위협 요인 = 폴리실리콘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2세대 화합물계 태양전지의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도 폴리실리콘 산업에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퍼스트솔라는 지난 한 해에만 1GW가 넘는 CdTe(카드뮴텔루라이드) 태양전지를 쏟아내며 실리콘계 태양전지를 생산하는 큐셀, 썬텍, 샤프 등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점유율 1위 업체로 등극했다.

만약 올해까지 CdTe의 파상공세가 이어지면 결정질 전지의 점유율은 물론 폴리실리콘의 수요 감소도 불가피해 보인다.

CIGS(구리·인듐·갈륨·셀레늄)도 협공을 펴는 모양새다. 최근 양산기술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는 CIGS는 제조단가는 물론 효율면에서도 결정질 전지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CdTe보다 CIGS의 잠재력을 더 크게 보는 시각도 있다.

▲ 2세대 화합물계 태양전지가 결정질 태양전지의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 계열 전지의 우점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태양전지 제조사들이 원가경쟁력 확보 차원에 웨이퍼 두께를 슬림화하면서 장당 폴리실리콘 사용량이 갈수록 줄고 있는 것도 변수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웨이퍼는 두께는 200㎛(마이크로미터, 1000분의 1㎜) 안팎으로, 이미 이를 50㎛나 더 얇게 만든 150㎛제품이 유통되고 있다. 태양광 모듈에서 웨이퍼가 차지하는 원가비중은 64%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환경변화가 궁극적으로 폴리실리콘의 앞날을 가로막게 될까?

견해차는 있지만 화합물 전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결정질 태양전지의 시장 군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유권종 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폴리실리콘의 원료가 되는 규소는 지구상에서 탄소 다음으로 많이 부존한 자원으로 화합물계 전지 원료인 희소금속 등과는 무한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전체 시장을 차지하긴 어렵겠지만 2020년 이후에도 화합물의 점유율은 절대 50%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연구원은 "박막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폴리실리콘 제조기술이나 태양전지 효율기술도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며 "한때 박막에 눈을 돌렸던 일본 업계와 정부가 뒤늦게 폴리실리콘 산업부양에 나서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폴리실리콘(Polycrystalline Silicon) 

잉곳-웨이퍼-태양전지(Cell)-모듈-발전시스템으로 이어지는 태양광산업 밸류체인의 가장 앞에 위치한 핵심 기초소재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일부업체가 시장을 독점해 오다가 우리나라에선 2008년 3월 OCI(옛 동양제철화학)가 99.9999999%급 상업생산에 성공해 국산화를 이뤘다. 염화실란가스 등 화학적 공정이 동원되는 지멘스 공법과 FBR공법, 불순물 함량을 낮춰나가는 방식의 금속정련(UMG) 공법 등으로 제조된다. 한때 스팟시장에서 kg당 400달러를 호가했지만 지금은 60달러 안팎에서 거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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