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수 자연환경보전연구소장

 

서정수 소장
[이투뉴스 칼럼 / 서정수]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역사는 반세기도 넘지 못하는 일천한 역사를 지녔다.

1948년 발족한 국제기구의 하나인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권유에 따라 1963년 한국의 자연보호론자들이 '한국 자연 및 자연자원보전 학술조사위원회'에 뜻을 같이했다.

자연보전을 위한 연구조사와 일반국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중 학술강연회 등을 통해 자연보호사상을 계몽하는 일을 한 것이 우리나라 환경운동 민간단체의 태생이며 효시다.

위원회의 대표적인 활동은 국토의 관리 및 보전을 위해 국립공원과 도립공원 등의 지정 및 설치에 따르는 문제 등에 관해 정부에 자문을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1966~1968년 미국 스미스소니언연구소와 공동으로 한국 휴전선 남방한계선 부근의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생태계 장기공동연구를 시행했다.

위원회는 설립 당시 주로 생물 관련 학자들이 주도해 국내외적 업적을 이뤄냈다. 이후 민주화운동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함께 환경운동 단체들과 종교계 일각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주제로 한 환경단체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단기간 내에 경제 선진국에 도달한 한국의 경제적 잠재력은 인정됐지만 환경운동의 역사는 고난의 갈릴리로 향하는 길과 같은 아픈 역사를 지녔다. 시화호, 낙동강 페놀사건, 경부고속철도(천성산), 부안 핵폐기장 등 당시 정부의 끊임없는 박해와 굴욕을 이겨내고 이루어낸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삶의 질을 위한 환경운동은 동토의 얼음 속에 깊이 묻힌 양 미동도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환경과 관련되어 민감한 사안들이 산적한 때도 드문 시기에 말이다. 그동안 정계에 진출하는 사람들치고 환경운동의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 없었고 우후죽순처럼 태생한 환경운동 단체들은 정권과 밀착하여 이념적 정치결사체처럼 변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정치정당으로 변신하는 편이 나을 정도로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했다.
 
개인이든 단체 대표든 정치권과 결탁해 순수성을 상실하고 현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 사례도 있다. 오직 환경이라는 단어만을 내세워 무모할 정도의 환경 지상주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는 비판의 무풍지대에 존재했던 까닭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일각에서는 “스님이 불공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경우라 하겠으니 환경단체가 성숙한 시민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데 오히려 사회의 암적 존재가 됐다”라고 혹평한다. 마치 혼탁한 정치권을 나무라듯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며 겸손함과 도덕성을 잃고 자기 혁신 없는 권력을 남용하는 세태”라고도 꾸짖고 있다.

그래서 오랜 동안 자기 성찰 속에 깊이 묻혀있는 걸까. 때마침 현 정부의 국정지표인 녹색성장과 관련하여 민간단체 지원이 늘어난다는 최근보도를 접하고 새롭게 행동으로 실천하는 환경운동을 제안하는 바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관료화된 조직, 언론플레이 등 지금까지 환경운동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다수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 대안 없는 반대도 문제지만 묵시적 동조는 더 큰 문제다. 훌륭한 인재는 영검 있는 땅에서 난다는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의 뜻을 새롭게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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