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 리더기업 ㈜후성] 냉매가스 만드는 '대동강물장수'

 

▲ 후성 울산 hcf공장 전경

[이투뉴스 김선애 기자] "10년 전 회사에서 CDM(청정개발체제) 사업에 뛰어들까 말까를 놓고 저울질하며 제게 CDM에 대해 '한 번 알아보라'고 얘기했을 땐 막막했습니다. 업계 사람은 물론이고 당시 산자부 사무관조차 'CDM이 뭐냐'고 반문할 정도였으니까요."

㈜후성에서 입사 이래 줄곧 CDM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박진식 CDM사업팀 과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야 발전사나 중화학공업, 매립지 등 온실가스 다배출기업과 신재생에너지기업 모두 CDM사업에 눈독을 들이지만 10년 전만 해도 산업계나 정부조차 먼나라 얘기였다.

그렇게 시험삼아 해보자던 CDM 사업이 지금은 후성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CDM으로만 연간 150억원을 벌어들인다. 후성이 CDM 사업으로 얻는 수익은 2006년 120억원, 2007년 110억원에 이어 2008년 220억원을 매년 크게 늘었다. 박 과장 자신도 "이 정도까지 큰 수익을 올릴 줄 몰랐다"고 했다. 덕분에 후성은 국내 CDM 사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후성이 이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는 간명하다. 스스로 온실가스를 내뿜는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시 남구 매암동 수소불화탄소(HFC) 공장에서 연간 7500톤의 냉매가스(HCFC22)를 만든다. 후성은 냉매가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열분해 소각 처리하는 방법으로 CDM을 확보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본업인 냉매가스 생산보다 CDM 사업이 더 쏠쏠하다는 후문이다.

▲ 소각로 내부
1930년 개발된 염화불화탄소(CFC)인 일명 프레온 가스나 수소불화탄소(HCFC)는 냉장고나 에어컨 등 냉동 공조기기 냉매와 발포제·세정제·분사제 등으로 사용돼 왔다. 오존층 파괴물질인 프레온가스(CFC)나 HCFC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한다는 이유로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에서도 생산과 사용이 금지됐다. 한국도 올해부터 프레온가스의 생산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그래서 대체냉매로 개발된 것이 바로 수소불화탄소(HFC)다. HFC는 교토의정서에서 정한 6대 온실가스에 포함돼 있다.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CDM 사업으로 인정되는 대상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₂)를 비롯해 메탄(CH₄), 일산화질소(N₂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 등이다. HFC의 지구온난화지수(GWP)는 140~1만1700이다. CO₂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보다 1만1700배나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에어컨, 냉장고 등 제조에 필요한 냉매가스를 생산하는 후성은 CDM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냉매가스 생산 단계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를 고스란히 공기 중으로 방출했다. 그러다 이를 포집해 소각하면 외국 탄소시장에서 주식처럼 거래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에 CDM 사업에 발을 담궜다.

CDM의 당초 목적은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를 안정화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기업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수익 사업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사업 진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회사에서는 CDM 사업 가능성 타진해보라고 했으나 직원들은 큰 투자 없이 수익을 올리는 사업모델이라고 폄하했다. 봉이 김선달이 돈을 받고 대동강 물을 파는 것과 흡사하다는 의미로 '대동강 프로젝트'라는 이름까지 붙여줬다. 박 과장은 "회사를 설득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부를 설득하는 데도 1년이 걸렸다. CDM 사업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최종 CDM 사업 시 국가 CDM 승인기구(DNA)의 승인이 필요한데 당시 한국에 DNA가 있을 리 만무했다. 후성은 자칫 산자부와 환경부의 '핑퐁게임'에 희생양이 될 뻔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두 부처 공동 승인을 받았다. 현재는 국무총리실 기후변화대책기획단이 DNA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후성의 HFC CDM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등록된 160개의 CDM 방법론 중 AM0001로 인증받으며 세계에서 네번째이자 아시아 최초로 2005년 2월 UNFCCC에 등록했다. 

후성이 2003년부터 시작한 HFC23 CDM 사업은 지난해 1차사업이 종료돼 현재 2차 사업계획서를 리뉴얼하고 있다. 감축실적(CER)의 발행 인증기간은 갱신이나 연장 없이 10년으로 하는 안과 7년씩 2번을 연장하는 안 두 가지로 CDM프로젝트 참여자가 선택할 수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 최대기간은 21년이 될 수 있지만 까다로운 사업계획서 재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때문에 후성은 후자을 택했다. 하지만 최근 CDM 사업을 등록한 기업들은 10년 단발을 신청하는 추세다.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 온실가스 의무 감축량 할당제 등 정부 규제가 강화될 예정이라 CDM 사업 연장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후성의 CDM 업 연장에 걸림돌은 또 있다. 한국과 같은 비부속서국가인 남미 국가들과 환경단체들은 온실가스 다배출기업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비해 경제적 이익을 너무 과하게 얻는다고 비판한다. 교토의정서 정신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또 조만간 한국이 온실가스 의무 이행국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후성의 CDM 사업도 언제까지 승승장구할 수만은 없는 환경이다.

그러나 후성은 이런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올 초 삼성 LCD 제조용 특수가스를 제공하는 사업권을 따내 수익구조를 다변화했고, 2차전지 전해질 개발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2008년 10월 KCF 사모펀드, KT&G, 휴켐스 등과 공동출자해 한국 최초의 탄소금융 전문기업인 한국탄소금융을 설립하기도 했다.

UNFCCC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한국의 인증 감축 실적(CER)은 5046만7546CER로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Non-CO2 CDM 9건과 신재생에너지 CDM 25건 등 36건의 프로젝트가 UNFCCC에 등록돼 있다.

박진식 CDM사업팀 과장은 "국내 CDM사업은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랐다"면서 "베트남 등 동남아 후발지역의 CDM사업개발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키워드> 지구온난화지수(GWP)

같은 질량일 때 온실가스별로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 이산화탄소(CO₂)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기준이다. 즉 CO2를 1로 볼 때 메탄(CH₄)은 21, 이산화질소(N₂O)는 310, 수소불화탄소(HFCs)는 140~11700, 과불화탄소(PFCs)는 6500~9200, 육불화황(SF6)은 2만3900 등이다.

GWP만 고려하면 HFC, PFC, SF6가 지구온난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만 배출량으로 따지면 6대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24%를 차지한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배출되는 CO₂가 56%로 단연 압도적이며 메탄 11%, N₂O 6%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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