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종사자 및 주변주민 역학조사의 고난과 선물

 

[이투뉴스 칼럼 / 임영기] 1989년 11월, 지방 일간지 사회면에 “원전 출입자 무뇌아 유산, 원전 안전성 의심”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원전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원전을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여론이 대세였고, 원전의 방사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팽배한 시절이어서 이 한편의 기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놓은 것과도 같이 엄청난 속도로 확산됐다. 국회에서, 언론에서 모두 특종을 잡은 듯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원전 종사자 및 주변주민에 대한 역학조사였다. 역학조사란 어떤 이슈에 대해 원인을 밝혀내는 것으로, 방사선과 인체영향과의 인과성을 밝혀내야 하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개인의 식생활, 사회환경, 기호품 섭취, 가족력 등의 교란인자를 고려하는 대규모의 작업이었다.

이제 내년이면 20여년의 긴 여정을 걸어온 역학조사 사업도 1차적으로 막을 내리고 새로운 차원의 역학조사가 시작될 전망이다. 그간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기구와 국제공동연구도 수행했고, 연구결과를 국제 유명 저널에 게재해 학술적인 신뢰를 구했고, 여러 차례 지역 주민들을 방문해 중간 조사결과도 보고했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관련 전문가들의 노력도 있었고, 국민의 성숙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자력 사업이 원전수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 저변에 역학조사를 통해 서울의대를 비롯한 국립 의대 등 저명한 의료진이 직접 원전 주변 현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주민과 건강에 대한 대화 및 건강검진 사업이 원전의 안전성을 가슴으로 인정하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원전사업을 취소하는 시점에서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는 우리의 머리와 가슴으로 원전사업을 추진했다. 엄청난 비난과 역학조사장에서 일부 사람들의 행패 등으로 고통스러웠고, 오늘의 쾌거를 기대하지 못했지만 원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역학조사 연구 사업이 원전수출의 초석이 됐다고 생각하니, 글을 쓰는 지금 우린 원전 수출 이상의 선물을 가슴에 담는다.

'신의 선물', 세계 최고의 원전 종사자 DB

원전 종사자에 대한 세계 최고의 데이터베이스 확보와 우리 원전의 방사선안전 입증이라는 신이 주신 선물이 바로 그것이다. 이 DB는 규모면에서도 질적인 정확성면에서도 세계 최고이다. 향후 방사선과 인체영향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 원전 운영의 안전성을 학술적인 측면에서 입증할 수 있는 훌륭한 재산이다.

또 하나의 기쁨은 우리나라에 원전 방사선에 대한 역학조사 네트워크를 항시 가동할 수 있다는 것이고, 원전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의료진이 이젠 원전의 안전성의 전도사들이 된 것이다. 원전 역학조사단은 서울의대를 비롯해 7개 의과대학과 방사선보건연구원 전문가 등 100여명에 이른다.

초기 서울의대 고창순 교수에서 시작된 역학조사는 이명철 교수가 원전 주변 작은 리(里)까지 발로 뛰었고, 유근영 교수의 한 치 오차도 없는 기획으로 학술적인 가치까지 선물로 받았다. 종사자 검진을 담당한 전 원자력의학원장 김종순 박사, 핵의학 분야를 담당한 정준기 교수 등이 원전 역학조사의 주역들이다.

또 이렇게 탄생된 기관이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의 방사선보건연구원이다. 방사선 보건물리와 방호, 저선량 방사선연구, 방사선 비상진료, 원전종사자 건강영향평가 등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원전의 안전운영 지원에 없어서는 안 될 조직으로 자리매김 했다.

원전 수출, 원전 안전 운영 전문가들의 몫

원전이 안전하다는 걸 전문가 계층에선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정작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반대론자 등에게 안전성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접근 방법이 바로 역학조사라 생각된다. 물론 역학조사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은 DB는 확보하기 어려웠겠지만, 건강 영향평가 사업의 형태로 수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역학조사가 중간 중간 결과보고회를 순회 개최하면서 지역 여론주도층 인사와 환경단체, 종교단체 지도자들까지 참여시켜 낮은 자세로 의견을 청취하고 설득했다. 원전 수출의 공은 원전을 묵묵히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해온 전문가들의 몫이다.

보다 합리적이고 지속적인 역학조사 연구계획 작성할 때

“원전 안전성에 대해 국민이 믿고 있다. 반대는 아마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 일상 주변엔 지금 예기치 못한 변화들로 가득차 있다. 화산이 폭발해 이상 질병들의 발생이 우려되고, 갑작스런 이상기후로 5월의 문턱으로 접어드는데도 조석으론 아직 겨울옷을 벗지 못하는 등 지구 곳곳의 이상 변화는 우리의 상식 밖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우린 “원전은 안전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는 기정사실과도 같다. 그러나 향후 어떤 변화와 질병들이 우리의 주변에, 그것도 원전 주변에서 국한돼 발생한다면 우리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발생되면 역학조사 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이것은 많은 경제적인 손실과 그동안 닦아온 국민의 이해기반을 되돌리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수반한다.

그러한 손실과 시행착오를 방지하기 위해 우선 종사자들의 영구적인 데이터베이스 확보와 이에 대한 대가와 원전 안전운영을 위한 건강 영향평가의 강화가 필요하다. 원전 각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선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장시간의 숙달이 필요하고, 자동화 설비에 의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특히 세계 최고수준의 원전 이용률 지속 달성을 목표하는 원전 종사자의 뒤에서 묵묵히 원전 운영만큼 세계최고수준에 와 있는 방사선보건전문연구기관의 역할도 한번 지켜봐야할 필요가 있다. UAE 원전 수출에 있어서 원전 역학조사의 DB는 수입국에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건강염려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신뢰성 있는 해결책이 될 것으로 믿는다.

우린 이젠 다음 단계로 원전 종사자의 미래형 역학조사를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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