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교수의 '빗물 칼럼' (17)

[이투뉴스 칼럼/ 한무영 교수] 대부분의 시설은 만든 지 몇 년이 지나면 망가지거나 기능이 떨어져서 수리나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만든 사람이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아서 사용하는 사람은 돈이 더 들게 되므로 전체 시스템의 경제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건설비와 유지관리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2003년 완공된 서울대 대학원 기숙사 건물 중 아직까지 망가지지도 않고 유지보수비도 들지 않기로 유명한 두 개의 시설이 있다. 하나는 빗물이용시설이고 또 하나는 중수도라고 말하는 하수재이용시설이다.

빗물이용시설은 2000㎡의 지붕면에 떨어지는 빗물을 200톤 규모의 빗물탱크에 받아서 화장실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연평균 1600톤 가량을 사용했다. 1년에 저장탱크를 8사이클 사용한 셈이고, 하늘이 지붕면에 내려 주신 선물인 빗물을 60% 가량 사용한 셈이다.

1년에 약 300만 원정도 수도요금을 안 내니 오히려 돈을 버는 셈이다. 이 시설에는 움직이는 부속이 없고 사용하는 약품도 없고 비만 오면 탱크 안에 빗물이 저절로 모아지니 손을 볼 것도 돈이 들 것이 하나도 없다.

운전자들은 이 빗물이용시설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비가 오면 돈이 모인다고 생각하고, 어떠한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설계당시에 80톤 규모의 저장조와 하수재처리 시설을 연구용으로 쓰고자 만들어 놓았다. 이 시설도 그동안 한 번도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고 유지관리비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만들어 놓고 한 번도 이용을 안했기 때문이다.

운전자들의 생각은 이렇다. 하수를 처리해 재이용하기 위해서는 동력비와 약품비가 들고 운전자가 잘 관리해야 한다. 만약 어디 하나라도 잘못돼 냄새가 나거나 망가지는 경우, 모든 비난은 운전자에게 돌아오기 십상이다. 또 재이용하기 위해 1톤을 생산하는 비용이 1톤의 수도요금보다 많이 들기 때문에 하수재이용시설을 가동하지 않고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이 기숙사 사생들의 관리비를 줄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생각은 ‘잘해야 본전이다’라는 것이다. 둘 중 어떤 경우라도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다.

정부의 저탄소 정책에 기여도를 따져보자. 하수재이용시설에서 하수 1톤을 처리하는데 드는 에너지는 평균 1.2㎾h이다. 수돗물 1톤을 생산하고 운반하는데 드는 에너지는 0.24㎾h이다. 빗물은 지하 저장조에서 올려주는데 1톤당 0.0012㎾h의 에너지가 든다. 에너지 사용량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면 빗물, 수돗물, 하수재이용수순이 된다. 운전자들이 하수재이용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빗물과 수돗물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부의 저탄소 정책에 적극 협조한 셈이다.

환경부에서는 물관리 정책 중 하수의 재이용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 이를 의무화하고, 세제 혜택 등을 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대부분의 시설은 만들 때만 의무화를 하고 사후관리는 하지 않아서 설치만 해놓고 가동하지 않거나 아니면 에너지 낭비를 조장하는 정책인 것이다.

환경부는 우리나라에 일 년에 1300㎖라는 엄청난 양의 빗물이 오는 것을 모르거나 아니면 빗물은 더럽다는 잘못된 생각에 빨리 강으로 버린 다음 강에서 처리해서 다시 에너지를 들여 시민들에게 보내야만 한다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저탄소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건축법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전국에 있는 모든 지붕에서 빗물을 받아 사용하거나 땅속에 침투시키도록 하루 빨리 정책을 바꿔야 할 것이다.

‘밑져야 본전’과 ‘잘해야 본전’ 어느 것을 채택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다.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