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감사가 대신 출장, 보고서는 가지않은 직원 몫"
"사장·감사가 대신 출장, 보고서는 가지않은 직원 몫"
  • 조찬제 편집위원
  • 승인 2010.05.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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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자원협력 비화-석탄공사편①] 이름 뿐인 대북사업 전담부서

[이투뉴스 조찬제 편집위원] 남북자원협력에 얽힌 비화와 북한 경제실상을 인기리에 연재한 조찬제 편집위원이 22년간의 공기업 생활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남북경제협력 비화-석탄공사편> 시리즈를 격주마다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DJ 정부가 들어서자 남북관계는 급속히 화해무드를 탔다. 대북인도지원사업이 굉장히 활기를 띄었고, 소리소문 없이 추진해 왔던 남북협력사업도 무슨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너도 나도 뛰어들었다. 필자는 당시 석탄공사에 근무하면서 2004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을 만들었다. 남과 북에 연탄을 지원하면서 많은 사업자와 접촉한 것이 대북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은 먹고 살기가 어려운 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많이 가져 오는 게 북한산 농수산물이고, 에너지가 부족한 데도 석탄이 팔려 나간다. 농수산물은 중소기업들이 소규모로 추진하고 있지만 석탄은 자금이 꽤 많이 들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경협사업 모델로 추진되고 있다. 남한은 무연탄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다가 IMF 이후 서민들의 가정 형편이 나빠지고 석유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소비가 급증해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당시 서민용 석탄인 무연탄 수입은 주로 베트남, 중국에서 이루어졌는데 중국은 자국의 경제성장으로 서서히 수출여력이 없어지게 되었고, 베트남은 기존 추진하던 업체가 독점 수입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격 결정을 수입업체가 좌우할 수 있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외부여건이 마련되자 북한산 무연탄을 서로 수입하겠다고 석탄공사에 많은 민간기업 매달렸다.

석탄공사는 연탄용 무연탄을 수입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에 공사와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손 안되고 코 풀 수 있을 만큼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당시 필자는 감사실에 근무했다. 석탄공사는 대북사업 업무를 추진하는 부서가 없었다. 이렇다보니 감사실 업무와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실무 총괄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던 필자가 자연스럽게 대북관련 업무를 같이 보게 된 것이다.

2004년 10월부터 2005년 3월까지 15회 가량 금강산 지역에 직접 연탄을 전달을 한 경험과 그 때 북한 명승지 국제 관광총회사 관계자들과 만나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경협사업을 논의하기도 했다. 특히 북한 지하자원 공동개발, 평양·개성·금강산지역에 연탄공장 설립에 관해 심도있게 논의하기도 했다. 민간업체들도 북한 무연탄 반입이 남북경협사업의 교두보 확보와 창구역할을 하면서 장래 큰 사업이 진행되면 돈과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사업으로 보고 참여하는 듯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석탄공사도 대북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대북사업팀을 신설했다. 필자는 대북사업을 거의 홀로 추진했고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에 대한 총괄 업무를 맡아 왔기에 전담부서가 신설되면 당연히 부서장으로 발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을 달랐다. 필자는 신설부서의 구성원으로 포함되는데 그쳤다. 지금 생각해 봐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승진을 위한 '비용'이 든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탄나눔운동을 감사실에서 추진했기 때문에 내심 감사가 승진에 대한 배려를 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대북사업팀장으로 갈 것이란 언질도 있었다. 너무 믿었던 게 화근이었다. 대외사업을 추진하면서 윗분들의 큰 뜻을 받들어 모시지 못해 눈 밖에 나 있었던 모양이다. 그 때 공직생활을 접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월급쟁이는 서류 한 장에 이 자리, 저 자리로 옮겨 다니는 슬픈 존재들이 아닌가. 

대북사업팀은 변변한 사무공간도 없었다. 소회의실에 달랑 책상 2개만 놓여 있었다. 회의가 있는 날에는 밖에서 배회하면서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런 고뇌와 번민으로 얻은 수입을 '눈물 젖은 월급봉투'라고 부르나보다. 석탄공사의 대북사업은 이렇게 첫발을 내딛었다. 북한 무연탄을 석탄공사와 손잡고 반입하겠다고 가장 먼저 나선 곳은 일본 조총련과 관련 있는 업체였다. 국내 해운업체가 중간 역할을 맡았는데, 추진상 애로사항이 많았는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후 등장한 업체가 현재 유일한 반입업체로 생존해 있는 서평에너지의 모기업인 아스트라상사다.

석공의 대북사업은 사장과 감사가 동시에 맡았다. 감사가 경영참여는 곤란하지만 경영진은 대북사업을 추진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데 반해 감사는 연탄나눔운동을 설립해 추진한 경험과 대북사업 관련 인맥 및 정보를 활용해 실무까지 깊이 관여할 수 있었다. 당시 감사실에는 많은 대북사업 추진 희망자들이 드나들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북한석탄을 직접 반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석탄에 대해 경험과 지식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엔 그의 말을 무시하다가 추진방법, 석탄반입 시 유의사항, 남한 내 시장상황, 유통과정을 설명해 주었더니 대북사업 실제 오너사장을 소개했다.

젋은 기업인이라 패기가 있었고, 자금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개인적으로 힘을 보탰다. 석탄공사는 북한 석탄광산 개발에만 관심이 있었고, 석탄 반입은 명분과 실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관심조차 없었다. 필자는 광산개발이 시기상조라 생각해 실무적인 업무는 처리해 주었지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석공은 중국 단둥에서 민경련 관계자와 만나 석탄광 개발에 관해 사전협의를 벌였다. 그리고 2005년 7월 개성에서 석공 사장과 민경련 명지총회사 총사장이 북한 석탄광 개발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실상은 한 마디로 코미디였다. 단둥을 방문할 때 고문과 감사가 석탄생산 책임자 역할을 하겠다고 해 정작 대북사업팀에서는 아무도 참여하지 못했다. 출장보고서를 쓸 때는 출장을 가지 않은 자가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개성을 갈 때도 사장, 감사, 고문, 실장 등 윗분들이 갔고, 대북사업팀은 끼지도 못했다. 전담부서의 존재이유가 무의미해졌다. 윗분들의 대외출장 실적용으로 활용하려고 했는지, 경력란에 스펙 한 줄을 더 추가하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후 일은 흐지부지 됐다.

중국 민경련 단둥 대표부에 전화를 걸어 북한 탄광관련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알겠다'고 하면서 자료를 보내지 않았다. 북한 방문 시 또는 북한 관련 사업 추진 시에는 항상 선금이 들어간다. 석공이 선금을 주지 않으니 석탄광 개발사업에 역시 한 발자국도 진척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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