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기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보건연구원 수석연구원

[이투뉴스 칼럼/ 임영기] 올초 '사람답게' 살아보려 큰  맘 먹고 아들 손을 잡고 영화관을 찾았다. 대책없이 찾아간 영화관 앞에서 식사 메뉴를 고르듯 기웃거리고 있는데 우리 부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The Road>였다. ‘언젠가 한번 봐야지’ 마음먹었던터라 주저없이 극장 안으로 직행했다. 조조라 한산하고 넉넉한 공간이었지만 우린 두 시간 동안 긴장하면서 영화를 관람했다.

포스터에서 보여 주듯이 두려울 정도의 황량함과 메마름이 영화 상영시간 내내 느껴졌다.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세상, 식량이 없어 사람마저도 서로 잡아먹으려는 광기어린 행동을 보이는 장면에서 ‘공포심보다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슬픔이 느껴지는 영화였다’는 평론가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영화 속 세상이 먼 미래 우리에게 다가올지도 모른 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극장을 나오자 관람하는 동안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인류의 사랑, 아들을 끝까지 지키려는 아버지의 사투와 같은 헌신이 우리 부자의 잡은 손을 더 따스하게 연결해 주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서점에서 원작을 구해 읽은 유일한 경험이었다.

영화만큼 그 시대의 관심사를 제일 잘 표현하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한 일처럼, 원전의 안전확보를 위해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은 지금도 원전의 현장 또는 연구소에서, 학교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방사선환경을 가장 최적으로 만들기 위한 우리나라의 노력은 전 세계에서도 정상급이다.

지금 우린 '원전 수출', '원전 르네상스'하면서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이 르네상스를 맞이하면서 자칫 간과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정부가 공기업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것이 ‘몸집 줄이기’다. 전문기관의 잠정적인 진단 결과, 원전에서 방사선안전 분야의 인력을 줄인단다.

물론 비효율적으로 비대한 부분도 있을 수 있으나, 현재 사고가 없다고 해서 안전에 대해 소홀해선 더욱 안 될 일이다. 원전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면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방사선으로부터 인류의 건강과 안전을 함께 짊어지고 가야할 책무는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자만의 몫은 아니다.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정부도 미래지향적인 안목을 가져야할 부분이다.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즉 보건학적인 영향은 전문가들의 연구결과에서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방사선은 아무리 적은량일지라도 암을 일으킬 수 있다’라는 학설(Stochastic effect)과 ‘일시적으로 어떤량 이상을 받아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학설(Deterministic effect), ‘낮은 방사선량은 인체 면역증강효과(Hormesis effect)가 있다’는 학설이다. 그러나 규제 차원에선 보수적인 측면을 견지해 가능한 낮게 받도록 유도하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인 전력생산의 기저부하를 담당할 에너지원으로 원자력발전 이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방사선으로부터 원전의 종사자를 지키고, 나아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단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08년 기준으로 세계원전 사업자협회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원전 작업자 방사선 피폭량이 가장 낮다. 이는 세계 최고수준의 원전의 가동률로 국내 전력생산에 가장 많이 기여하면서도 방사선 차폐기술개발과 숙련된 정비능력 및 방사선 안전요원들의 우수한 관리능력이 일궈낸 기록이다. 또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시스템이 외국과 달리 한개의 회사(한국수력원자력)가 일관된 정책과 표준화 등을 통해 달성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 같이 우수한 운영능력은 방사선 안전사고 대책의 지원 하에 믿음과 정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사선 재해방어는 한마디로 함축하면 ‘인류의 보호’다. 한수원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방사선 비상진료 전담 기구인 방사선보건연구원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원전 사업자가 방사선 사고를 대비한 방사선비상진료 시스템을 확보한 것이다.

방사선보건연구원은 방사선사고시 인명구호를 위해 전 원전의 요원들과 인근 병원, 119구조대, 지자체 등과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항시 가동할 수 있는 방사선비상진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2004년 세계보건기구 산하 방사선비상진료기구(WHO/REMPAN)로서 인정받아 비상상황시 전세계 네트워크를 가동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방사선비상진료기구는 전 세계 22개국이 방사선비상진료 기관으로 가입되어 있으며, 한수원 방사선 보건연구원을 제외하면 모든 기관이 국가 기관이다. 여러개의 회사가 각기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과 달리, 한개의 회사가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과 방사선보건연구원이 비상 대응능력을 감안해 세계비상진료기관으로 지정받아 운영하고 있다.

방사선보건연구원의 방사선재해 방어능력은 2000년 11월 울산 비파괴업체 종사자의 방사능오염사고시 신속한 대응으로 인명을 구호하고, 울산 시민의 심리적인 안정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좋은 사례도 남겼다.

방사선비상진료능력은 사고시 의료적인 대책보다는 종합적인 연구와 기술개발을 통해 확보되고 교육훈련을 통해 동 시스템이 안정 된다. 우선 방사선 피폭환자가 발생하면 피폭된 사람에게 묻어있는 방사능 오염물질을 신속하게 제거해 환자의 방사선피폭을 최소화하고 주변환경으로 오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또 피폭된 사람이 받은 방사선의 양을 신속하게 측정해 그에 적합한 의료처치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방사선 피폭의 결정은 매우 복잡하고 첨단의 기술을 요하는 분야다. 다시 말해 피폭된 부위가 국소피폭과 전신피폭인지 내부피폭과 외부피폭인지, 내부 오염일 경우 방사선의 핵종이 무엇인지 등을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방사선 사고시 과다 피폭자의 경우 개인선량계의 회수가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피폭된 부위에 따라 개인선량계를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따라서 방사선의 피폭량을 평가하는 도구는 다양하게 준비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권고한 방사선 사고시 피폭량 평가는 ▶이상 염색체의 숫자로 피폭량을 평가하는 생물학적인 선량평가방법 ▶모발이나 치아, 의류 등을 이용해 평가하는 전자공명측정법 등 물리적인 방법 ▶수학적으로 피폭현장을 시뮬레이션해서 평가하는 방법 ▶임상적인 증상을 관찰해 평가하는 방법 등 크게 네 가지를 권고하고 있다.

방사선보건연구원은 이 모든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유일의 기관이며, 세계적으로도 몇 되지 않은 기관 중 하나다. 이들의 연구와 기술개발은 별도로 이 분야에 별도의 예산을 투입해 연구개발을 통해 이룩한 것만은 아니다. 한수원이 30년 넘는 원전운영과 방사선안전 관리경험을 통해 습득하고 정리된 기술들을 종합한 것이고, 이 기술 등의 일부는 원전의 방사선안전관리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을 리모델링해 체계화했다.

영화 <The Road>는 어쩌면 미래에 닥칠일이 아닌 재난사고의 빈도가 늘면서 시작된 소설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일일것으로 믿는다. 또 우리에게 있어서도 방사선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만약을 대비해서 우리는 오늘도 방사선 안전 능력의 강화와 우리 자손들의 안녕을 위해, 내 아들을 위해 기술 개발에 매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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