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면 박도원(정우성 분)과 박창이(이병헌 분)의 결투 순간마다 윤태구(송강호 분)가 불쑥 나타나 싸움에 끼어든다.

예상치 못한 인물 윤태구의 등장으로 영화의 대결구도는 가늠할 수 없게 된다.

지난 9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바람직한 전력산업구조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는 마치 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같은날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력산업구조개편 연구결과 브리핑에 앞서 받은 연구결과 자료를 읽어보면서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경주시민을 비롯한 전력산업계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간의 통합문제가 너무나도 두루뭉술하게 기술됐던 것이다.

OX퀴즈의 정답을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정답은 O 아니면 X, 둘 중 하나다”라는 대답을 듣는 기분이랄까.

반면 KDI는 한전의 5개 발전자회사 독립체제 유지라던가 판매경쟁 도입 등 한전-한수원 통합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은 제법 혁신적인 제안을 했다.

‘원캡코(One KEPCO)’를 외치던 한전의 방침과 완전히 대립하는 내용이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한전이 원하던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토론회가 열린 aT센터로 돌아가보자.

한전-한수원 통합문제는 KDI가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에서 배운 핌피현상(PIMFY; Please In My Front Yard)의 ‘교과서’를 보여준 경주시민들의 다소 무모한 행동은 토론회를 무산시켰다.

경주시민들도 멋쩍었을 것이다. 350여명이 미리 상해보험에 가입하고 관광버스 9대를 대절하는 등 작심하고 상경했는데, 정작 한전-한수원 통합건은 사실상 논외로 뒀으니 말이다.

그래도 경주시민들은 자신의 앞마당에 한수원 본사를 두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를 제대로 놓았다.

그들이 토론회장에서 터뜨린 소화기는 마치 한수원이 한전에 통합되는날에는 어디든 소화기 분말 대신 불바다를 만들겠다는 협박처럼 보였다.

한전과 한수원, 전력노조, 경주시민 등 각계에서 반대여론이 첨예하게 엇갈리자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일주일이 지난 16일 “한전과 한수원은 현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발표해 경주시민들을 달랬다.

여기에 전력노조도 달래려는 듯 판매경쟁 도입도 당장은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시 말해 전력산업구조는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기껏 비싼 세금들여 KDI에 연구용역을 의뢰해놓고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근 탤런트 권상우 씨가 음주운전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일으켜 물의를 빚었다.

특히 사건 직후 동료 배우 박용하 씨의 자살과 개그우먼 김미화 씨의 ‘KBS 블랙리스트’ 발언 등으로 여론의 관심이 줄어 조용히 넘어가려 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권 씨는 이 같은 여론에 못이겨 사건이 발생한지 한달여가 지난 후에야 사과문을 발표해 비난의 화살을 한몸에 받고 있다.

지경부도 혹 반대여론에 못이겨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조용히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것은 아닌지 싶다. 부디 권 씨가 저지른 우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성수 기자 anthony@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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