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교수의 '빗물 칼럼' (30)

[이투뉴스 칼럼/한무영] 고인 물은 썩는 법이라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깊은 동굴이나 우물 속의 물이나 지하  암반수는 고여 있지만 썩지 않는다. 잘 설계된 빗물저류조안의 빗물이나 소독약품 냄새가 나는 물도 썩지 않는다. 에너지를 들여 산소를 공급하는 저수지나 댐의 물도 썩지 않는다.

반면 썩은 물이 흐르는 하천도 있다. 따라서 고인 물이든 흐르는 물이든 썩을 조건이 되면 썩는 것이다.

물이 썩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산소가 모자란 상태(혐기성)에서 미생물이 물 속에 있는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메탄이나 황화수소와 같은 냄새나는 부산물을 발생시키는 현상이다. 또는 태양광에 의해 조류가 자라면서 나쁜 부산물을 발생하거나 심미적으로 보기 싫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물이 썩으려면 미생물, 유기물, 태양광 세 가지 조건이 다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중 한 가지 조건만 차단하면 물이 썩지 않는다. 미생물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모두 다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오히려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준다. 적당한 양의 미생물은 유기물을 분해하는 자정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소독한 수돗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미생물을 차단하였기 때문이다.

유기물이 많으면 그것을 미생물이 분해하면서 산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산소가 모자란 상태가 돼 썩는 현상이 발생한다. 계곡의 깨끗한 물이 썩지 않는 것은 유기물이 적기 때문이다.

태양광이 차단된 깊은 우물이나 동굴의 물에는 유기물과 미생물이 존재하더라도 썩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조건 중 가장 쉽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은 태양광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학적 원리를 이용하면 고인 물도 썩지 않게 할 수 있다. 단 경우에 따른 공학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물이 썩는 원인은 인위적인 오염에 의한 유기물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기물의 유입을 차단(하수처리)하거나 산소를 공급(폭기)하거나 물 속에 있는 유기물을 건져내면 된다.

따라서 녹조가 발생할 때 밑으로 가라앉게 하기보다 위로 띄워 건져내는 것이 옳다. 준설을 잘못하면 유기물이 물에 접촉할 기회가 많아져서 더 나빠지므로 교란을 최소화하는 공법을 택해야 한다.

같은 양의 유기물이 있더라도 물을 순환시키거나 희석하는 수리학적 지식을 동원하면 물이 썩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빗물을 지하에 침투시켜 유기물의 유입량을 차단하고 태양이 차단된 땅 속에 보관하고, 그 물을 저수지에 천천히 일정하게 보내면 저수지의 물이 썩지 않는다. 이에 대한 적정규모의 설계와 운전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공학자의 몫이다.

올바른 수질관리를 위해서는 물리, 화학, 생물의 과학적 원리와 수리학적, 공학을 바탕으로 한 복합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우리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수천 년 동안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이미 그 해답을 구해 놨다.

그러한 사례가 우리의 전통과 습관에 배어 있다. 모두가 다 이로우라는 홍익인간 철학과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 속에, 장을 담구고 보관하는 방법에, 빗물을 침투시키는 방법에 숨겨져 있다.

이번 주말에는 고궁에 있는 연못에 가보자. 거기에 물이 고여 있어도 썩지 않게 하는 선조들의 자연의 힘만을 이용한 수질관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은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실마리이자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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