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 입찰로 시공업계 도산 위기…기술평가로 부실시공 막아야

▲ 경상북도 한 임야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이투뉴스] 아사(餓死) 직전에 몰린 태양광 시공사들이 출혈경쟁에 나서면서 정부 주도 RPS 사업이 관련기업들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일부 입찰은 이미 '역마진' 수준으로 수익성이 떨어져 장기적으론 부실시공과 관련산업 공멸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국내 태양광 시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RPS 시범사업은 발주처인 한국전력 산하 발전사들의 의도대로 사실상 '최저가 입찰'이 반복되고 있다. 얼마나 좋은 자재와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를 따지는 품질경쟁이 아니라 얼마나 싼값에 공사를 끝낼 수 있냐는 단가경쟁이 횡행하고 있는 것.

실제 현행 응찰조건을 살펴보면 시공사들의 하소연은 빈말이 아니다. 현재 발전사들은 입찰참여 기업이 기본적인 국내인증을 통과한 모듈을 사용하고 최소한의 발전량만 보장하면 별도의 기술적 역량을 따지지 않고 있다. 장기성능을 좌우할 발전소 설계나 시공노하우, 자재품질 등을 검증할 기술평가 항목이 따로 없다.

한 시공사 관계자는 "기술적 항목을 평가하게 되면 발전사 입장에선 구조적으로 저가입찰 유도가 어려워지고 챙길 일이 늘어나 꺼리고 있다"며 "결국 지금의 최저가 입찰방식은 각종 폐해에도 불구하고 공기업들의 이해타산과 업무 편의주의에 의해 시공사들만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 시공사들 "일단 살고보자" 자충수 = 평가기준이 이렇다보니 한정된 시장을 놓고 시공사들이 벌이는 출혈경쟁도 점입가경이다. 우선 지난해 최저가로 첫 사업을 수주한 S사부터 첫 단추를 잘못 뀄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당시 S사는 낙찰가 하향조정을 위한 발전사 측의 유찰에도 불구, 경쟁사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을써내 사업을 따냈다. 이 업체는 예가에서 경쟁사가 포기한 2MW급 입찰도 수주를 감행했다.

하지만 마이너스 마진을 불사하고 덤벼든 결과는 비참했다. S사는 낙찰 이후 발전사와 협의해 설계변경을 추진했고, 이를 통해 가까스로 손실폭을 최소화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입찰에 참여했던 A사 관계자는 "매출상황이 좋지 않던 S사가 무리수를 쓰면서 '현금돌리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첫 사업부터 '최저가로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발전사들에게 심어준 꼴이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S사의 선례는 제살깎기식 수주전의 신호탄이 됐다. 내수시장이 급랭하면서 사업철수 위기를 맞은 대기업 사업부 L사 역시 차기 입찰에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최저가를 써내 연명작전을 폈다. 뒤이어 T사가 같은 수순을 밟았고, 사태를 지켜보던 K사도 최근 경쟁사가 '불가능한 가격'이라며 고개를 내젓는 사업을 끌어안았다. 이를 두고 업계 한 관계자는 "가장 배고픈 순서대로 앞줄에 서서 받아먹고, 맨 뒤로 물러나는 식"이라고 표현했다.

◆ 부실시공 · 시공업체 연쇄도산 불가피 = 문제는 이런 식의 수주관행이 국내 시공업계의 연쇄도산을 불러 다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그대로 사장시킬 수 있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더 큰 문제는 공기업 예산으로 집행되는 RPS사업이 머지않아 부실시공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라는데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차적으론 정상적인 공사를 하려는 업체가 안남아날 것이고, 살아남은 업체도 제대로 된 공사를 하고 끝까지 생존해 하자보증을 해낼 여력이 남을지 의심스럽다"면서 "발전사들은 당장 예산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발전량 저하로 더 큰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공사 관계자는 "정부 의무량 채우기에 급급한 발전사 실무자들은 농어촌공사 입찰처럼 기술과 가격을 동시에 평가하는 방법이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당장 큰 문제만 없다면 그만이라는 식이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RPS은 머지않아 큰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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