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교수의 '빗물칼럼'(34)

[이투뉴스 칼럼/한무영] 최근들어 기후변화에 의한 홍수 피해 대책이 분분하다. 기후변화라는 공격과 방어의 개념이라면 무예의 고수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무예에서는 무공의 깊이에 따라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제어하는 방법이 다르다. 먼저 초보자는 맷집만 키운다. 상대방이 주먹으로 복부를 강타할 것을 생각하고 배에 힘을 팍 주고 있다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힘으로 치면 나가 떨어진다. 또는 상대방이 배를 치는 대신 턱을 치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순진한 초보자는 상대방이 예측한 곳을 예측한 힘으로 쳐줄 것을 생각하다가 당하고 만다.

조금 더 내공이 깊은 중급자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거나 피한다. 상대방이 칠 곳을 미리 예측하여 거기에 방비하거나 피하면서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싸움을 하되 지지는 않는다. 그를 위해 평소에 많은 훈련에 시간을 투자한다.

반면에 고수는 엎어치기를 한다. 상대방이 언제 어디를 공격하던 간에 그 공격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역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본인은 전혀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 이것이 고수의 실력이다.

구경꾼은 공격하는 사람의 힘이 얼마나 셀 것인가 어디로 칠 것인가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공격하는 사람이나 수비하는 사람이 나가 떨어져도 그들의 아픔을 모르고 그냥 재미있다고 박수만 친다.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방법을 무예에서 대응하는 방법으로 생각해 보자. 여러 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기후변화 예측값은 기관마다 다르고, 또 우리나라에 맞는 예측치가 어떤 것인지 확인된 것은 없다. 예측만 하면서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는 것은 누가 이기든지 즐거워하는 무책임한 구경꾼과 다름 없다.

도시 전역에 걸쳐 하수관거의 설계빈도를 10년에서 20년 빈도로 높이는 방법은 초보자의 수준이다. 그런데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20년 빈도로 만들었을 때 더 큰 빈도의 비가 왔을 때는 마찬가지로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돈을 들여도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중급자 수준은 하수관거의 빈도를 높이면서 거기에 들어오는 물의 양을 적절히 분산시키는 것이다. 빗물펌프장을 이용하거나 빗물을 저류하거나 침투를 시켜 언제 어디서 오는 게릴라성 강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여기도 건설비나 유지관리비가 엄청나게 들어가지만 일년 중 비가 오는 며칠만 사용하게 된다. 땅 속 깊이 판 터널에 빗물을 모으면 더러운 빗물을 처리하고 퍼 올리는데 에너지가 들어간다.

산이 없는 일본이나 말레이시아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받은 물은 홍수조절용 외에는 사용하기 어렵다. 중급의 무예의 수준이다.

이럴 때 고수라면 어떻게 할까. 홍수로 인해 내려가는 엄청난 양의 빗물은 재앙이 되긴 하지만 잘만 모아 두면 내년 봄에 훌륭한 수자원이 돼 가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홍수도 막고 수자원도 확보하는 것은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해 공격을 하는 엎어치기 기술과 같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산 중턱에서 깨끗한 빗물을 저장해 두면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서도 물을 유효하게 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천년 동안 전체 국토에 산 중턱에 저수지나 논을 만들어 이와 같은 고수의 물관리를 해왔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고수의 물에 대응법은 변하지 않는다. 재앙에서 축복으로 만드는 비법을 배워 그것을 현재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한 고수의 선조를 둔 건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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