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산업 사양화, 그 뒤안길을 걷다 8]- 관리직은 노조의 아웃사이더

[이투뉴스 조찬제] 광업소에 입사하자마자 노조 대의원 선거가 있었다. 요즘 대의원 선거는 3년마다 있는데 그 당시에는 1년마다 시행했다. 그러다보니 대의원의 권한이 그렇게 센 편이 아니었고 노조원의 심부름꾼 역할을 충실히 한 것 같았다. 요즘의 대의원은 권력화 되어서 노조원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대의원이 훨씬 노조답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장성광업소 직원은 3000여명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대의원 선거구도 꽤 많았다. 필자의 선거구는 사무직군이었다. 대의원은 7선이었는데, 너무 조합원에게 인기가 좋았는지 그를 상대할 사람이 없어 혼자 출마했다.

홀로 출마하면 투표없이 당선되는 게 아니라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대의원으로 추인되는 진정 민주주의 방식의 선거제도였다. 당시에는 대의원이 되기 위해 저녁 식사 한 번 정도는 사는 게 관행이었다. 서로 얼굴을 익힐 겸 그 분이 필자를 특별히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술도 한 잔 마셨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신입사원을 자기편으로 만들면 두고두고 자기 표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이 힘든 광산에서 대의원 역할을 잘 하려면 저녁식사로 관리직의 표를 얻을 게 아니고, 진심으로 힘들게 일하는 노무자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투표날이었다. 필자는 처음으로 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인감도장을 가지고 갔다. 신원 확인란에 도장을 찍기 위해 가져 갔는데, 당황했던지 무지였던지 투표용지에 도장을 꽉 눌려 찍어버렸다.

그것도 반대표에 찍은 것이다. 개표를 했다. 무효표가 한표 있었는데, 인감도장으로 꽉 찍었으니 누구의 것인지 너무나 명명백백해졌다. 당시 광업소는 살벌했다. 길거리에서 시비가 자주 일어나곤 했는데, 관리직 중에 신임사원들이 그 지역 토박이에게 이유없이 얻어맞곤 하던 시절이었다.

7선의 대의원에게 반대표를 던졌으니 큰일이 나버렸다. 주위에서 겁을 주기도 했다. 저녁을 얻어먹고 반대표를 찍었으니 괘심죄에 걸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대의원은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도 않았고, 변함없이 잘 챙겨주었다. 역시 노조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온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섣불리 드려내지 않는가 보다.

87년과 88년의 두 차례의 노사분규로 관리직의 힘은 쇠퇴하고, 노조의 힘은 상대적으로 향상되었다. 이때만해도 관리직은 노조원이면서도 회사를 대변하는 직위에 있었고, 노조에서도 관리직을 상대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분규 때만 해도 관리직은 데모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했고 도망다니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변방인에 속했다. 관리직은 오히려 회사쪽에 기울어져 노조의 행위에 분개하고, 비난하는 듯했다.

필자 역시 노조원이었지만 노조편을 들기 보다는 회사편을 들고 싶었다. 이것이 90년대 들어와서는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급반전한 것이다. 노조원이 아닌 2급 부장이상은 명예퇴직, 희망퇴직, 권고사직 등으로 하루 아침에 퇴출을 당하게 되었고, 3급 과장급 이하 노조원들은 노조의 우산 속으로 들어와 자신이 희망하지 않으면 퇴직할 필요가 없는 확실한 신분 보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공기업은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었는데, 석탄산업합리화와 IMF를 겪으면서 수시로 구조조정을해 정년을 회사가 보장해 주지 않았다. 믿을 곳은 회사가 아니라 노조라고 판단한 관리직원들은 노조에 줄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3~4급 관리직의 협조 하에 노조는 회사 내부 정보를 다 파악할 수 있었고, 예산 및 인사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할 있게 된 것이다.

경영진은 2~3년마다 바뀌지만 한 번 잡은 노조간부들은 10년 이상을 연임하게 되니 경영진이 노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영진도 어려운 회사를 이끌어 가기 위해 노조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눈치빠른 관리직은 회사에 충성하는 것보다 노조에 충성을 하여야 승진을 할 수 있고, 좋은 직위가 보장된다는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체득하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노조에 대해 직원들은 충성경쟁을 하게 되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직원의 동태를 파악하여 수시 전달하였고, 결재를 받기 위해 노조에 사전 보고를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80년대에만 해도 노조의 힘이 센 줄 몰랐다.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고, 이해관계가 전혀 없으니 노조와 상대할 일이 별로 없었던가 보다.

광업소 생활 3년 정도 되었을 때 부산지사에 자리가 하나 생겼다. 외자 물품을 인수 하기 위해 부산지사에 출장을 자주 내려가다 보니 지사 직원을 거의 다 알게 되었다. 결혼 전이라 부산에서 결혼 상대자를 찾고 싶은 욕심이 생겨 부산지사 발령을 수락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외로운 첩첩산중의 광업소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자재과 직원에게 전출 인사를 하고, 짐을 다 꾸려 놓았다. 그런데 발령이 자꾸 뒤로 미뤄지는 것이다. 부산에 확인을 해보니 조금 더 기다리라는 얘기만 했다. 뒤로 미뤄진 승진발령의 쓴 경험이 또 재연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라 다를까 부산지사에서 발령 건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했다. 다른 사람이 대신 발령났다고 했다. 억울했다. 누가 위의 권력을 빌어 다 된 밥상을 대신 차지한 것이다. 그 당사자는 필자가 잘 아는 선배였다. 치사하게 원인을 밝히고 싶지 않았는데, 정확한 내용을 아는 분이 술자리에서 그 내막을 소상히 얘기해 주었다.

노조의 힘이 그렇게 센 건지 그 때 처음 알았다. 발령 구두 통보를 받고 서로 승낙을 했는데 갑자기 이것을 뒤집어 버린 것은 노조의 힘이었다. 뒤늦게 정보를 입수한 선배는 노조 간부 부인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 부인은 고향 누나뻘이 된다고 했다. 그래도 청탁은 성공했고 필자는 쓴 잔을 마셔야 했다. 그 때부터 노조에 대한 적대감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본사에 출장을 갔다. 본사 지부장이 고교 선배라는 얘기를 부산지사에서 들었다. 부산 발령을 못 받은 것도 지부장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것도 있었다. 지질부에 근무하는 선배와 같이 저녁식사 겸 술을 한 잔 했다. 그 좌석에서 지부장에게 다짜고짜 “선배님 그럴 수가 있습니까?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 주지는 못할망정, 앞길을 막아서야 되겠습니까?”라고 정색을 하며 따지고 들었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느냐고 능청을 떠는 건 지 더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필자가 들은 바로는 노조원이 광업소에서 본사 및 지사로 발령 받기 위해서는 본사지부장의 사전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했다. 필자는 부산지사 발령이 거의 날 뻔 했는데, 취소된 게 선배님이 장난친 거 아니냐고 대들었다. “나는 네가 내 후배인 줄 몰랐다. 걸마가 내 후배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잘못됐네”라고 하는 것이다.

“책임져야 합니다.”라고 하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몬 되는데? 본사로 올라올래?”라고 하여 본사는 가고 싶지 않고, 부산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광업소로 내려 왔다. 그 때 필자의 따끔한 지적에 많은 부담을 느꼈는지 부산지사 판촉요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부산 내려 갈래?”, “네”, “그러면 짐 싸놔라”, "저번에도 짐 싸놨다가 풀었는데 이번에는 실수하면 안됩니다.", “걱정하지 마라. 확실히 할테니 부산 갈 준비해라." 와이프와 같이 짐을 정리했다.

부산지사는 인원이 남아 판촉요원을 외부에서 차출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도 억지로 한 명을 끼워 넣으려고 하니 무리가 따른 것 같다. 대전, 대구사무소가 새로 생기고, 다른 곳은 기존 저탄장을 관리하는 사무소가 판촉업무를 추가로 맡으면 되게 되어 있었다.

부산지사는 자체요원으로 대체하기로 사장결재가 났다고 했다. 지부장이 당황하였던지 사장실로 급히 달려갔다. 그때는 사장의 권위가 대단했다. 노조에서도 깍듯이 예의를 지켰다. 경영진과 노조와의 힘겨루기가 있었지만 노골적으로 사장에게 힘 과시를 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였든 사장이 낸 인사발령에 추가로 필자의 이름을 넣어 간신히 승낙을 받았다고 후일담으로 얘기해 주어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되는 일을 필자는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이루어지는지 석탄공사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았던가 보다.

<조찬제 편집위원의 글은 격주로 온라인판에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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