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교수의 '빗물칼럼'(36)

[이투뉴스 칼럼/한무영] 해운대 대형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해 큰 피해를 입었다. 화재의 특성상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 게릴라와 같다. 특히 도시가 오래되고 복잡해질수록 화재 발생의 위험이 더욱 커지고, 피해규모 또한 어마어마하다.

이러한 화재 발생 예방책을 ‘게릴라 퇴치 작전’에서 배워보자. 즉, 각 지역마다 스스로 방어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이번 해운대 화재 진압 시 아쉬운 점은 물의 조달방법이었다. 건물이나 산과 같이 높은 곳의 불을 끄기 위해서는 소방 헬기의 역할이 매우 크다. 그런데 이 헬기가 가지고 오는 물의 양은 1회에 5톤 정도 밖에 안 된다.

소방 헬기가 한번 물을 뿌리고 그 다음 헬기가 오는 시간 동안 불은 더욱 크게 번진다. 헬기에만 의존하게 되면 초등진화에 매우 취약해진다. 만약 건물 중간이나 산 중턱에 빗물 탱크가 있었다면 화재초기에 쉽게 불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골목에서 불이 났을 때도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제 때에 불을 진압하지 못해 불이 더 크게 번질 수 있다. 빈 소방차를 수돗물로 채운 뒤 다시 오는 동안 불은 더 크게 번질 수 있다.  

화재 진압 시 물 공급을 소방시스템에만 의존하는 것은 이와 같이 불안하며, 보다 효율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게릴라에 대한 대응방식처럼 현지에서 물의 조달체계를 갖춰 보완하는 것을 생각하자. 

소방당국의 평가방법으로 소방차가 현장에 출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이용한다. 사고의 원인 파악이나 초등진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빨리 온다고 불을 잘 끈다는 보장이 없다. 가지고 올수 있는 물의 양에 달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방당국의 평가방법에 초기에 뿌린 물의 양을 추가해야 한다. 같은 10톤의 물이라도 화재발생 초기 10분 안에 뿌려진 것과 한 시간 안에 뿌려진 것과는 피해 정도가 천양지차기 때문이다.  

예방 차원에서도 어느 지역에 불이 났을 때 초기 10분 동안 조달할 수 있는 물의 양으로 평가하고, 그에 대한 지도를 만들어 관리하자.  

서울 자양동 주상복합건물의 지하 4층에는 3000톤짜리 빗물탱크가 만들어져 있다. 1000톤짜리 3개로, 각각 홍수 대비용과 수자원 확보용, 비상용으로 나뉘어 있다. 10톤짜리 소방차 100대분의 소방용수가 항상 저장돼 있는 것이다. 지하탱크에서 지상의 도로 옆의 밸브까지 200㎜관을 연결해 누구나 펌프만 연결하면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만약 건물 근처에서 불이 났을 때 빗물탱크에 있는 1000톤의 물로 초등진화에 성공한다면, 수돗물값의 1000배가 되는 돈이 들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화재시 동원된 물에 대한 적절한 가격만 책정한다면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협조도 가능하다.  

마침 환경부에서 물재이용법에 건물마다 빗물이용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해 놓았다. 만약 환경부와 소방방재청이 협조만 한다면 건물의 빗물이용시설에서 물도 절약하고 화재도 예방하는 다목적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분산돼 있는 소방용수시설의 물 확보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관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광역방재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불을 잡는 것은 물이다. 그 물을 얼마나 빨리 조달할 수 있는가를 소방의 새로운 목표로 추가해야 한다. 지역 단위로 불이 났을 때 소방용수에서 자급할 수 있는 물의 양과 초기 조달 가능한 물의 양에 따라 소방취약지역을 결정하고 그에 대한 집중투자나 인센티브를 준다면 국가 전체가 소방에 안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질 것이다. 부가적으로 홍수와 물 부족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다.  

앞으로는 불이 났을 때 소방대원이나 주민들이 주위에 있는 건물의 빗물탱크에서 물을 퍼 빨리 진화할 것을 기대한다. “불나면 우리 건물의 빗물로 끄세요!”하면서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건물의 빗물탱크에 채워져 있는 소방용수의 양을 확인하면서 마치 주머니 안쪽에 들어 있는 비상금처럼 든든하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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