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4일 유엔 사무총장으로 최종 선출되기까지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본인의 능력 등이 두루 작용했지만 '운'도 반장관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엔 사무총장직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던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지난해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낙마함에 따라 자신이 한국 정부가 미는 공식 후보 자리에 무혈입성할 때도 '운'이라는 '+ ∝'가 작용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 ∝'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사례 1= 반장관은 지난 6월초 뉴욕에서 열리는 에이즈(AIDS) 유엔 총회 고위급 회의 참석을 계기로 유엔 내 각 지역그룹 인사 등과 회동하고 지지를 호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반 장관은 그에 앞서 워싱턴에서 이뤄진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과의 회동이 예정된 시간보다 길어지면서 당초 예약했던 뉴욕행 항공편을 놓쳤다. 백악관측의 특별 차량 에스코트까지 받으며 총알같이 공항으로 향했지만 그가 공항내 탑승 지점에 도착한 때 마침 예약했던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결국 반장관은 예정했던 뉴욕에서의 일정 중 하나를 취소한 채 다음 항공편에 탑승했다. 그런데 놓친 항공편은 뉴욕에 도착할 무렵 폭풍 때문에 워싱턴으로 회항했고 본인이 탄 비행기는 때마침 공항 주변 기상이 좋아지면서 무사히 뉴욕에 도착했다. 결국 반장관은 일정 손실을 최소화한 채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

만약 반장관이 예정대로 비행기에 탔더라면 하루 일정을 대폭 축소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사례 2 = 지난 6월 말 감비아 반줄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서 반장관을 비롯한 유엔 사무총장 후보들이 연설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경우 자국에서 맡는 직책이 높은 사람부터 연설하는 것이 보통인데 어찌된 일인지 당시 부총리인 태국의 수라키앗 후보 대신 반장관에게 먼저 마이크가 돌아왔다.

 

그러나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반장관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웬걸, 다음 순서로 나선 수라키앗 후보 차례 때는 아예 정전이 되면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아세안이 미는 단독후보로서 반장관의 경쟁자였던 수라키앗은 그 후에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태국 군부 쿠데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사례 3 = 반장관은 AU 회의에 참석한 후 7월 초 브라질, 멕시코,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국가들을 잇달아 방문할 계획이었다. 아프리카 일정을 소화한 후 귀국하지 않고 유럽을 거쳐 곧바로 첫 방문지인 브라질에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브라질이 현지 사정으로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수 없음을 통보해옴에 따라 반장관은 7월3일 일시 귀국했다가 7월5일 다시 멕시코,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양자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로 했다.

  

7월3일 귀국한 반장관은 당시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동향이 심상치 않게 전개된데다 7월5일 시작될 예정이던 한국의 독도주변 해류조사로 한일 신경전 가능성이 제기되자 중남미 방문일정을 통째로 연기했다.

결국 7월5일 새벽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만약 한국 외교의 실무책임자인 반장관이 그날 한가로이(?) 중남미를 방문하고 있었더라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단순한 비판 정도가 아니라 그가 외교장관직을 유지한 채 사무총장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시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정부의 인지와 대응이 일본보다 늦었다는 점에서 여론이 들끓었던 것을 감안하면 반장관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반장관은 브라질 덕분에 그 '역사적인' 순간 외교부 청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사례 4 = 반장관은 올 3월께 한 중국 역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내용은 반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반장관에 대한 기본 데이터 등을 근거로 도출된 역술인의 '예언'에 반장관은 그저 기분좋게 웃었다.

  

반장관은 사무총장으로 확정된 14일(한국시간) 그 편지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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