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교수의 '빗물칼럼'(39)

[이투뉴스 칼럼/한무영] 올해 3월 독일의 대법원은 세탁을 수돗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신 빗물이나 우물물로 세탁을 해도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수돗물 판매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수도사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법원은 가정에서 세탁을 할 때 수돗물이든 빗물이든 어떤 물을 사용할지에 대한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라고 결론지었다. 독일시민들은 이 판결이 물값을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소비자와 자연, 나라 전체에 좋은 일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이전에 만들어진 독일의 공업규격 DIN에서는 이미 빗물을 세탁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다만 세탁기 옆에는 수도꼭지와 빗물꼭지 두 개를 만들어 소비자가 선택해 쓸 수 있도록 규정했다.

물은 사용처에 따라 요구되는 수질이 달라진다. 마시거나 조리용 물은 최상의 물이 필요하지만 세수나 세탁 등 몸에 닿는 물은 그보다 수질이 낮아도 된다. 또 화장실 세척수와 같이 신체와 접촉되지 않는 물의 질은 더 낮아도 된다.

자연계의 물 중 총용존고형물질(물 1리터를 끓인 후 남는 고형물의 무게. TDS)을 보면 빗물(5~10ppm)에서 시작해 하류(50~150ppm)로 갈수록 점점 더 높아진다. 하천수를 취수해 수돗물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약간 더 높아진다. 지하수는 경도가 높은 것이 있는데 300~500ppm까지 되는 것도 있다.

이 가운데 어떤 물이 가장 빨래하기 좋은가는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경도가 낮은 빗물이 가장 잘 빨래가 잘되고 경도가 높은 지하수는 빨래가 잘 안 된다. 그래서 세제와 물을 많이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 하수량과 수질오염의 증가로 이어진다.

빗물의 세척효과는 공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세척효과는 포화농도와 현재 농도의 차이인 구동력(Driving Force)에 비례한다. 이는 식욕을 예로 들면 쉽게 설명된다. 식욕은 현재 얼마나 배가 고프냐에 따라 비례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빨리 맛있게 먹고 배가 더부룩하면 밥을 천천히 먹게 된다. 현재 상태와 포화상태의 차이가 식욕을 좌우하는 것처럼 세척하는 물의 농도가 낮을수록 더 깨끗하게 빨린다.

섬유연구소에서 실시한 실험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기름이 묻은 천 조각을 각각 빗물과 수돗물, 지하수에 빨았을 때 빗물에서 빤 것이 가장 세제를 적게 쓰고 세척 효과도 좋았다.

빗물로 빨래를 하면 수돗물의 운송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천에서 물을 안 가져와도 되기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세제를 적게 쓰기 때문에 수질오염도 막을 수 있고 가계 지출도 줄일 수 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수돗물을 쓰면 된다.

빗물을 받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빗물 저장조를 만들면 홍수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소화용수나 열섬완화의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생활 속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해선 주부들의 동참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 또한 필요하다.

환경부에서는 빗물로 세탁이 가능하도록 빗물저류이용시설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KS에도 빗물세탁기의 규격을 만들어야 한다. 호텔이나 세탁소 등 세탁량이 많은 곳에서는 빗물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

TV 드라마 등에서도 빗물세탁에 관한 장면이 나오고, 선조들의 빗물이용 방식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좋겠다. 또 빗물체험관을 만들어 빗물세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전 국민이 동참하면 현재 물 사용량의 30% 이상을 절감해 큰돈을 안들이고도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생활 속 저탄소 기술은 쉽게 구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제도나 행정 절차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하우는 장차 우리나라가 전 세계의 저탄소 녹색성장을 리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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