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지난 8일 내년도 예산안이 여야의 격렬한 몸싸움 끝에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또다시 주먹이 오가는, 낯 뜨거운 광경을 봐야 한다는 사실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다.

앞서 지난 7일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 천연가스수급계획안에 대한 공청회가 동시에 열렸다.

국가 에너지산업에 관한 중장기 계획을 '패키지'로 맛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에너지정책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에너지계획 수립을 단 3시간의 공청회를 통해 발표와 패널토론까지 '속전속결'로 끝냈기 때문이다.

물리적 폭력은 없었지만 짧은 시간 내 발표와 토론을 통해 거대한 사안들에 대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겠다는 발상은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이나 다름없다.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을 몰아서 처리함으로써 의견수렴 절차를 건너뛰겠다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시민·환경단체들도 공동성명서를 내고 "국가에너지 전체와 전력, 가스 문제를 불과 3시간만에 몰아서 진행하는 사상 유래가 없는 공청회"라며 일제히 비판했다.

절차뿐만이 아니라 내용도 문제다. 정부의 에너지수요 전망치가 2008년 수립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전망치보다 무려 13.4%나 늘었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에너지수요 전망의 변수가 되는 GDP, 국제유가 등이 현 추세에 맞게 수정되면서 에너지소비가 줄어드는 쪽으로 전망치가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됐다.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 기조에 따라 에너지절감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도록 계획을 내놓았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의지가 없음을 시인하는 듯하다.

시민·환경단체들은 이를 두고 에너지수요 전망치를 부풀려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불리기 위한 '전시행정'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기준이 에너지수요 전망(BAU)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 수치가 커질수록 온실가스 감축효과도 덩달아 커지는 '착시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 규모는 유지한 채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LNG화력발전 비중은 줄였다.

반면 안전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원자력발전 비중은 늘려 기후변화 대응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얽혀 있어 논란을 야기하는 부분들이 많은데도 이를 심도 있게 논의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국가에너지 전체와 전력, 가스수급계획을 '패키지'로 처리하도록 한 정부의 발상은 국회를 닮아 있다.

김광균 기자 kk9640@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