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 지난해 302개 기업 대상 첫 WD 시행
노르웨이중앙은행, KB국민은행 등 전세계 137개 금융기관 서명

[이투뉴스] 당신이 만약 지난 저녁에 소고기 500g을 먹었다면 당신은 8000ℓ의 물을 쓴 셈이다. 직접 물을 마신 게 아니라 소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소비된 물의 양이다.

이렇듯 직접 마시고 씻는 물 이외에 음식이나 제품이 만들어지는 데 사용되는 물의 총량을 '가상수(Virtual Water)'라고 한다. 가상수는 1980년대 런던대학교의 토니 앨런 교수가 만든 개념으로 최근 물의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커피 한 잔에는 140ℓ의 물이, 1ℓ짜리 우유에는 1000ℓ, 햄버거 한 개에는 2500ℓ, 쌀 1㎏에는 3000ℓ, 밀 1㎏에는 1350ℓ의 가상수가 쓰인다. 가상수는 먹을거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4용지 1장에는 10ℓ, 면 티셔츠 한 장에 4000ℓ의 가상수가 사용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측정하는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처럼 물 배출량을 의미하는 '물 발자국(water footprint)'과 같은 개념이다.

또 물부족 국가는 가상수 소비가 적은 제품을 수출하고 물이 풍부한 나라는 가상수 소비가 많은 제품을 수출할 경우에 물의 재분배를 기대할 수 있다. 독일 '사회생태학연구소'가 2006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연간 320억㎥의 가상수를 수입해 스리랑카, 일본 등에 이어 세계 5위의 수입국이다. 최대 수출국은 호주로 연간 640억㎥의 가상수를 수출한다.

물 기업, 철강·화학 등 용수집약적 산업에 직격탄

▲ 지난해 11월 cdp가 발간한 첫 물 정보 공개 보고서.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비영리기구인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는 지난해 처음 '물정보공개(WD. Water Disclosure)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물정보공개란 기업들의 물 사용량 및 절약방안, 물관리 개선 계획, 물 부족으로 인한 기업의 위험·기회요인 등을 공개하는 프로젝트다.

폴 디킨슨 CDP 상임회장은 "물은 현재의 문제고, 탄소는 앞으로 닥쳐올 문제다. 물이 탄소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이슈"라며 물 문제의 시급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는 CDP와 마찬가지로 물정보공개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기업들에 많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UN은 2025년 세계 물 부족 인구가 30억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 도시화 등으로 수자원이 고갈되고 수질오염이 심화되면서 물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물 관리는 국가뿐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슈다. 물이 부족하면 물 기업은 물론 철강, 화학 등 물을 많이 사용하는 기업은 비용 증가와 물공급 중단 등 위기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오 CDP한국위원회 팀장은 "물은 기업경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동시에 기업은 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투자자들의 물 관련 위험과 기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국내기업 중 포스코만 응답…삼성전자·한전·현대차 불참

CDP는 지난해 FTSE 글로벌 500개 기업 중 화학, 일반생활소비재, 식음료, 광업, 제약, 전력, 반도체, 제조 등 전세계 302개 용수집약적 산업에 속한 기업에 물정보공개 질문서를 발송했다.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 포스코, 한국전력, 현대자동차가 질문서를 받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포스코만 답변서를 제출했다.

한전과 발전6사가 운영하는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물의 양이 상당한 것으로 추정됨에도 한전은 불참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한전 관계자는 "(물정보공개를) 안 해도 별 상관이 없지 않냐"며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시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은 현대차 관계자는 질문서를 받은 당시 "검토 중이다. 굳이 답변을 안 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사실 물은 연관성이 높은 기업이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Ford)는 CDP는 물론 물 정보 공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자동차 제조 기업으로선 처음이다. 포드는 답변서를 통해 기업의 수자원 정보공개 과정을 형상화하고 수자원에 대한 영향을 밝혔다.

지난해 물정보공개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업은 150개로, 대상기업이 아닌 25곳은 자발적으로 응답했다. 이를 토대로 발간된 '물정보공개프로젝트 2010'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96%가 물 관련 위험을 파악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0%는 물과 관련해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금속·채광(64%), 유틸리티(63%), 화학(50%) 업종이 심각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CDP한국위, 국내 기업 대상 물정보공개 프로젝트 예정

CDP한국위원회도 조만간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물정보공개프로젝트를 실시할 예정이다. 테크니컬 파트너인 삼성화재 삼성방재연구소 관계자는 "물 관련 산업의 업종별 위험도를 조사하고 있으며, 리스크 완화 방법에 대한 컨설팅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향후 물정보공개를 반영해 투자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CDP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되는 물정보공개에 힘을 실어주는 건 금융기관들이다. CDP는 기업의 물정보를 기관투자자들에게 제공해 이를 투자 포트폴리오에 반영하도록 한다.

노르웨이중앙은행(NBIM), 슈로더, APG 자산운용, 덱시아(Dexia) 자산운용 등 전세계 137개 금융기관이 이 프로젝트를 후원했다. 국내에선 KB국민은행과 NH-CA자산운용이 참여했다. 이들 금융기관의 총 자산운용 규모는 지난해 4월 기준 16조달러에 달한다. 물정보공개 대상기업은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하지만 투자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더라도 물정보를 관리하는 게 장·단기적으로 기업에 이익이 된다. 디킨슨 회장은 "물 이슈는 기업이 인지하고 이해해야 할 중대한 주제로, 물정보공개는 물에 대한 기업의 인식을 높이고 물로 인한 위험을 줄이는 한편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애 기자 moosim@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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