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CEO 사회적 책임 몰라, 사회공헌으로 인식
'노조의 사회적 책임' 요구는 신선, LG·KT 앞서 있어

[이투뉴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한국사회에서 회자되기 시작한 건 불과 3~4년밖에 안 됐지만 한국사회는 변화가 빨라 10년 안에 선진국을 따라잡을 겁니다."

주철기 전 주(駐)프랑스 대사<사진>는 CSR을 얘기하는 자리라면 빠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부회장 겸 사무총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글로벌콤팩트(UNGC)는 2000년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지지와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만든 국제협약이다. 현재 UNGC에 전세계 130여개국의 7700여곳이 회원이 가입했으며, 이 가운데 기업 회원은 5200여곳이다.

35년간의 외교관 생활 끝에 그가 선택한 길은 국내 기업들의 사회 책임을 위한 활동, 그 중에서도 UNGC 한국협회를 이끄는 것이었다. 워낙에 알려진 외교통에다 국제 경제에 관해서도 높은 식견을 갖고 있는 그이기에 유엔과 한국 외교통상부에서 이를 권유했다고 한다.

한국협회는 2007년 9월 설립됐으며 현재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협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한국협회 가입 회원은 기업과 지자체, 공공기관 등 190여곳에 이른다.

지난달 21일 서울 한남동 한국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CSR을 잘 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기업이 적극적으로 이를 이용해야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주 사무총장과 일문일답.

-한국협회 개설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유엔글로벌콤팩트가 한국협회를 만들기 위해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안 됐다. 유엔과 외교통상부에서 프랑스 대사였던 내게 제안을 해왔다. 유엔과 국제경제를 잘 알았기 때문이지 싶다. 한국협회를 만들기 위해 5개월 동안 기업들을 설득했고 유한킴벌리와 풀무원 등이 뜻을 모았다. 대한항공, 이건산업, 아시아나 등 좋은 기업들이 동참을 해 한국협회가 출범할 수 있었다.

글로벌콤팩트는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하지만 단 가입 후 2년이 지나면서부터 매년 추진경과보고서(COP)를 발간해야 한다. 최근 국내 회원사 가운데 작은 단체, 연구소 등 10여곳이 COP를 제출하지 않아 자격 정지를 당했다. 한국협회는 이들에 '무료로 보고서를 도와주겠다'며 자격 회복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UNGC는 누구를 벌 주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 멋 모르고 글로벌콤팩트에 가입했다가 이렇게 자격 정지를 당하는 사례가 발생해 이제는 아예 가입 전에 COP 의무 발간에 대한 지침을 알려주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해득실이 분명해야 참여가 높지 않나.

▶소비자를 포함해 이제 정부까지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이 바르게 경영하기를 원하고 있다. 지속가능보고서를 쓰거나 ISO26000(사회 책임을 위한 국제표준) 준수 등은 모두 비강제적인 사안이지만 만약 하지 않으면 국내외적으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회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도 이를 시행하는 게 이익이다.

또 이러한 기준과 원칙을 적용하면서 회사에 있을 수 있는 배제적 위험요소들, 즉 환경을 안 지켰다든가 노동문제가 있다든가 등의 문제들을 제거할 수 있다. 기업이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투자기관들의 압박이 상당한 걸로 알고 있다.

▶글로벌콤팩트가 2007년에 만든 조직이 있다. UN PRI로, 세계 기관투자자들이 사회적 책임 즉 환경(Environment)·사회(Society)·가버넌스(Governance)를 잘 하는 기업에만 투자를 하자는 조직이다. 3년 지난 현재 800개 투자기관이 가입해 있고, 이들의 재정 가동력을 다 합치면 22조달러다.

세계 유수의 기관투자가들은 지속가능보고서가 있나 없나 따져서 엄격히 투자를 점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4위의 재력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가입했고, 노르웨이 국부펀드, 캘리포니아 펀드, 영국의 헐미스 펀드 등이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ISO26000 발효가 갖는 의미는.

▶ ISO26000의 7가지 부문과 유엔글로벌콤팩트와 겹친다. 소비자 이슈, 지방자치와의 관계 등 가버넌스가 따로 나와있는 건 아니지만 이는 투명성, 반부패와 연관된다. 유엔 1000년 개발 목표와 지향하는 바와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ISO26000은 ISO14000 시리즈처럼 규범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국가가 지키기를
안 했을 때 간접적인 무역규제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입법 움직임이 있다. 잘 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된다.

-이런 기류에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 가지만 잘 하면 되는데, 지속가능보고서를 잘 쓰면 된다. 비록 홍보용일지라도 우선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이를 써야 한다. 지금 100여개 밖에 안 된다. 일본은 몇 천개 이상의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하면 기업의 위험요소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갈 것이다. 그리고 현재 재무보고서와 비재무보고서를 합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게 추세다.
 
-CSR에 대한 기업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아직도 많은 CEO들이 사회적 책임을 모르고 있다. 들어서는 알지만 피부로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사회공헌 수준 이상을 많이 못 벗어났다. 이제 사회공헌이 아니라 사회책임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경련은 아직 그 수준까지 못 와 있다.

따라서 첫째는 기업 CEO가 이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경영과정에 사회적 책임 커리큘럼을 담아야 한다. 왜냐하면 CSR은 당면과제기 때문이다.

-국내 CSR 수준을 평가하자면.

▶내년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법안이 시행되면서 CSR 수준도 많이 올라갈 것으로 본다. 사회적 권리는 인위적으로 막지 못 한다. 공익을 위해 협력하자는 게 우리의 목표다. 한국에서 처음 제기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신선한 바람이라 할 수 있다. LG나 KT 등이 이 부분에서 앞서 있다. 우리나라는 CSR에 뒤진 나라였지만 노조의 사회적 책임 논의가 활발해지면 오히려 해외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CSR이 필요하지 않나.

▶동아시아 지역의 CSR에 대한 고민은 2년 전부터 시작됐다. UNGC 한국협회는 2009년 CSR 한·중·일 네트워크 라운드 테이블을 만들고 서울에서 첫 회의를 가졌다. 지난해는 상하이에서 했으며 올해에는 도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아시아적 토양에서 CSR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아시아적 지표를 마련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홍익인간, 공생, 상생 등은 중국, 일본에도 있는 개념으로, 이것과 CSR은 궤를 같이 한다고 본다. 서양적 관점에서 다뤄졌던 CSR 접근방식에 이러한 동양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양은 능력과 결과 중심의 기업 문화, 반면 동양의 '정(情)'을 바탕으로 한 기업문화가 널리 퍼졌다. 이런 동양모델에 대한 화두를 이제 막 던졌다.

▶국내 CSR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CSR은 국제적 트렌드다. 글로벌콤팩트가 생겼고, ISO26000도 발효됐으며 G20에서도 논의되는 등 국제적인 압박이 점점 기업들을 조여올 것이다.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면 기업이 도태될 수 있다. 외국에서는 한국은 3~4년 전만해도 CSR에 관심없는 나라였다고 생각했는데 G20 개최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기치 등으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 기업의 제조 실력은 상당한 수준인데 CSR 수준은 아직 많이 낮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CSR 커뮤니티가 미약하고, 학계의 전문가도 부족하다. 환경도 그랬다. 20년 전만해도 환경 전문가가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많지 않나. CSR도 10~20년 뒤면 앞으로 분야별 전문가가 나오고 해서 커뮤니티가 확장되리라 본다. 잠재력은 크다. 10년 정도면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CSR의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사회적 책임은 좌와 우가 없는 가치다. 진보와 보수간, 노동과 기업간 융합을 꾀할 수 있다. CSR은 정치문화의 성숙과도 맞닿아 있다. 배려하고 책임을 나누고 사회적인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좌와 우가 있을 수 없다. 시민사회도 성숙해져서 사회를 감시하는 등의 기능을 더욱 충실히 해야 한다.

CSR의 하드파워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더 잘해야 한다. 아직 초창기라 그렇지만 국제사회가 변해가는 방향으로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사회 책임과 유엔글로벌콤팩트의 가치가 주류 가치가 되는 것이다. 이런 걸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가치가 되는 게 목표다. 여기에 아시아적 가치를 더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양적으로는 글로벌콤팩트 회원사를 10년 안에 1000개. 세계적으로는 10년 안에 2만개로 늘릴 계획이다. 최근 삼성이 '소셜 엔터프라이즈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작은 부분이지만 이제 변화의 시작이라 본다. 삼성은 품질과 세계 시장 점유율면에서는 최고의 기업인데 CSR도 잘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약력>
▲1946년 강원 원주 출생 ▲1973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 학사 ▲1976년 프랑스국립행정학교 외교학 석사 ▲1993년 브뤼셀리브레대학교 국제정치학 석사 ▲1972년 외교통상부(제6회 외무고등고시 합격) ▲1983년 주유엔대표부 참사관 ▲1989년 주포르투갈 참사관 ▲1991년 주EC대표부 공사 ▲1997년 주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 ▲1999년 주모로코대사관 대사 ▲2002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2003년 주프랑스대사관 대사 ▲현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


유엔글로벌콤팩트 (UNGC·UN Global Compact)

국제연합(UN)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통해 세계화에 수반되는 여러 문제에 국제 사회가 공동 대처하자는 뜻에서 유엔이 2000년 창설했다. 코피 아난 유엔 전 사무총장이 1999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제창했다. UNGC는 금융·경제·정보 등 국제화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엔의 활동에 민간기업이 협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글로벌콤팩트는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로 구성된 10대 원칙을 세우고 있으며, 이는 세계인권선언, 노동에서의 권리와 기본 원칙에 관한 ILO 선언,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 국제연합 부패방지 협약 등 기존 UN협약에 기초한다. 여기에 가입한 기관들은 가입 후 2년이 지나서부터 추진경과보고서(COP, Communication on Progress)를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돼 있다.

유엔글로벌콤팩트 10대 원칙

인권
1. 기업은 국제적으로 선언된 인권 보호를 지지하고 존중해야 한다.
2. 기업은 인권 침해에 연루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한다.

노동기준
3. 기업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의 실질적인 인정을 지지한다.
4.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배제한다.
5. 아동 노동을 효율적으로 철폐한다.
6. 고용 및 업무에서 차별을 철폐한다.

환경
7. 기업은 환경 문제에 대한 예방적 접근을 지지한다.
8. 환경적 책임을 증진하는 조치를 수행한다.
9. 환경친화적 기술의 개발과 확산을 촉진한다.

반부패
10. 기업은 부당취득 및 뇌물 등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부패에 반대한다.

김선애 기자 moosim@e2news.com·사진=길선균 기자 yupin3@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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