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개 대형 수장고 총 1100만점 이상 생물표본 소장
맞춤형 설비·전자동 항온항습·자외선 차단장치 등 과학적 시스템

 

▲ 국립생물자원관 전경.

[이투뉴스] 지난달 20일 인천시 서구 경서동의 종합환경단지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수장동.

우리나라 생물자원 전반을 다루고 있는 이곳은 '한국판 노아의 방주'로 불린다. 연구수장동에는 지난달 현재 190만점 정도의 생물표본과 생물재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15만점 정도의 새로운 표본이 들어온다.

19개의 대형 수장고에 총 1100만점 이상의 생물표본을 소장할 수 있는 동양 최대 규모다. 19개의 대형 수장고에는 분류군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이동식 수장설비(컴팩터)와 전자동 항온항습 장치, 자외선 차단 전등, 할론가스 소화장치 등 첨단 관리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6만7000여㎡ 부지에 전시교육동과 연구소장동을 갖춘 국립생물자원관은 2007년 10월 10일 문을 열었다. 4층짜리 연구수장동 건물 1층에 들어서니 가운데 복도를 기준으로 왼쪽은 사무실, 오른쪽은 분류별 수장고가 위치해 있다.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한 구조다.

연구수장동의 모든 생물은 1차로 건물 1층 중앙에 있는 하역장을 통해 들어온다. 동식물 표본은 반드시 하역장 바로 옆에 붙어있는 소독실에서 영하 20℃에서 72시간 이상 냉동소독을 해야 한다. 해충 발생을 막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서 중요성과 시급성에 따라 임시 수장고나 표본·박제 제작실로 보내진다.

표본은 특성에 맞게 건조나 액침(液沈. 알코올 등 액체에 담가 보관하는 방법), 슬라이드, 박제 등 과학적 보존처리방법을 사용해 관리한다. 주로 식물은 건조표본으로, 곤충은 건조나 액침, 척추동물은 박제, 무척추동물은 액침 방식이 적용된다. 이를 수장고에 보관할 때 식물은 썩지 않는 종이에 붙여 차곡차곡 쌓은 뒤 종이파일에 넣고, 곤충은 종이상자 안에 핀을 꽂아 고정한 뒤 다시 나무상자에, 척추동물은 유리상자에, 무척추동물은 표본병에 담는다.

무척추동물표본수장고에는 코끝을 자극하는 알코올 냄새가 솔솔 풍긴다. 절지류와 해면동물, 패각 등은 액침표본을 하기 때문이다. 무척추동물은 생약이나 먹을거리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해 소위 '노다지' 분야라고 불리지만 아직까지 조사가 많이 안 된 상황.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등생물은 생태계 순환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연구가 시급하다고 한다.

김민하 고등식물연구과 박사는 "표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본 형질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데 있다. 최고의 표본을 채집하더라도 관리를 제대로 못 하면 표본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고 설명했다. 건조표본은 해충, 액침표본은 알코올 휘발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생물자원관은 냉동건조와 알코올 휘발을 최소화하는 용기 사용 등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표본관리에 있어 표본정보를 정확히 확보하고 정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식물표본의 경우 꽃과 열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표본의 '주민등록증'이라 할 수 있는 동정에는 누가, 언제, 어디서 채집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반드시 표기돼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GPS(위성항법장치)나 해발고도 등 상세정보를 적기도 한다. 김 박사는 "다른 사람이 이 지역에 가서 이 식물을 채집할 수 있도록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처음 생물 표본정보를 확보하기 시작한 때는 1900년대. 하지만 6.25 전쟁을 겪으며 많이 소실됐다. 이후 1990년대부터 다시 표본정보를 모으고 있으며 생물자원관은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표본정보는 생물의 변이 양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김 박사는 "표본을 통해 생물의 '변이'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표본의 가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생물 표본정보는 기후변화의 지표로 활용되기도 한다. 강원도 일부지역에 서식했던 상제나비(멸종위기종 1급)는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췄다. 추운 날씨에서 살 수 있는 상제나비는 기후변화로 온도가 상승하면서 국내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 환경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생물을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생물자원관은 표본 수장고의 역할은 물론 BT(생명공학)산업 지원을 위한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유전자원은행을 설립하고, 활용성이 높은 종을 대상으로 생체·조직·DNA 등 유전자원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2012년까지 유전자원 시료와 주요 자생식물의 종자를 확보, 2015년 종자은행을 본격할 계획이다.

생물자원관은 10년마다 전국자연환경조사를 벌여 왔으며, 2013부터는 5년 단위로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2015년까지는 한반도 고유·자생식물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자생생물의 전통지식 조사사업'을 통해 7044건의 전통지식을 새롭게 밝혀냈다. 이 사업은 민간에 구전(口傳)돼 오던 '전통지식'을 발굴해 채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함께 지난해 5월 캄보디아에 '생물자원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해외 생물자원 확보를 위한 활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총회에서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최초의 국제조약인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되면서 표본 확보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생물다양성협약(CBD)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과 이들이 서식하는 생태계, 생물이 지닌 유전자까지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협약. 1992년 6월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158개국 대표가 서명해 채택됐으며, 이듬해 12월 29일부터 발효됐다. 우리나라는 1994년 10월 가입했으며 자연환경보전법에 생물다양성 보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김선애 기자 moosim@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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