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희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보건연구원 연구관리팀 차장

[이투뉴스 칼럼/ 서동희]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Culture)’는 한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방식과 모습을 나타내며, 그 사회가 이룩한 정신적·물질적 결과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라는 용어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어떠한 분야의 발달된 정도를 평가할 때 자주 인용되곤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의 개념이 방사선에 대한 방호와 안전관리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방사선에 대한 인식과 안전을 진단해 더욱 향상시키자는 것이 목적인데, 이것이 바로 ‘방사선안전문화’다.

1895년에 X-선이 발견된 이후 방사선은 의료, 산업, 농업, 공학 등 많은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돼 왔으며 앞으로도 그 이용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방사선의 이용은 인간이 개발한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유익한 것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잘못 이용할 때는 크고작은 해를 입히게 된다. 그렇다고 현대 문명사회에서 방사선을 모조리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산불이나 화재가 무서워 불을 없앨 수 없으며, 교통사고가 무서워 차를 이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또 약물의 작은 부작용 때문에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자연적이건 인공적이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은 인간에게 이로움과 해로움을 함께 부여한다.

그렇다면 방사선은 우리에게 어떤 이로움과 해로움을 줄까? 우리는 방사선을 이용해 암을 치료할 수 있고, 건강을 진단할 수 있고, 품종을 개량할 수 있고, 제품의 결함도 발견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방사선이 인체에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피부손상이나 화상을 초래할 수 있으며 장기간에 걸쳐 노출된다면 암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해로움이다.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인간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은 방사선을 꾸준히 연구해왔으며, 그 성질을 잘 알아냈고 적절한 방호방법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법을 통해서 방사성물질의 생산, 운반, 보관, 이용 및 폐기에 관한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있어 산업체나 일상생활에 이용되는 방사선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문제는 방사선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누설이나 분실이 발생하게 되면 취급자는 물론 일반대중에게 방사선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가 없어 검출기가 없는 일반인들은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지난 수십년간 기록된 방사선 사고들을 분석해 보면 의료적 사고와 범죄에 의한 사고가 다수를 차지했는데, 이러한 사고는 대부분이 부주의와 실수로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즉, 아무리 안전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을지라도 그것을 직접 다루는 개인이나 조직의 태도와 인식이 올바르지 않다면 의도하지 않은 방사선 노출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방사선방호 능력을 더욱 공고히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안전제도나 기술과 더불어 문화를 접목시켜 의식의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사람들은 본래 어떤일을 할 때 조그마한 불편함과 기다림 조차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 운전을 예로든다면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고, 신호를 지키지 않고, 과속과 추월을 하고 졸음운전을 하는 것은 그러한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는 습성도 잘 고쳐지지 않다가 교통문화 캠페인을 벌이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은 문화적인 접근이 효과가 있다는 좋은 본보기다.

한편 방사선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시각은 어떨까. 사람들에게 방사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다면 대개는 과거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나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떠올리며 상당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나타내곤 한다. 이 두 사건은 우리에게 재앙적인 일은 분명하지만 방사선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실제보다는 과장된 면이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지역에 방사선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하면 지역주민이나 환경단체는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이른바 님비(NIMBY)현상을 보여왔다. 혹여 원전주변에서 기형아나 기형 송아지라도 태어나기라도 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그 원인을 무조건 방사선과 결부시키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원전철폐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근거도 없는 잘못된 정보는 굳게 신뢰하면서도 방사선과 관련이 없다는 과학적인 역학조사 결과는 답답하리만큼 믿지않는 것이 현실이다.

수년 전 전북 부안군에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유치하려고 할 때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여준 과격한 폭력시위를 우리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사업추진에 있어서 일부 미진한 부분도 있었으나 과장된 정보와 원활하지 못한 소통이 보여준 극단적인 사례이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우리나라 최초로 경주시에 건설되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 폐기물 드럼을 해상경로를 통해 반입한 일이 있었는데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에서는 크게 반발하고 반입을 저지하기까지 했다. 문화란 정부, 사업자, 지역주민 등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의식과 행동양식이 반영되는 것이기에 우리의 마음을 더 씁쓸하게 한다.

그렇다면 방사선안전문화를 한 수준 더 높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은 방사선에 대한 편향된 인식부터 바로잡아줘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사실과 과학에 근거해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가르치고 전달하는 교육과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수준 높은 방사선안전문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소통하고 함께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업자는 인간과 환경을 중시하는 투명하고 합법적인 시설운영을, 정부는 합리적이고 단호한 안전규제를, 지역주민이나 사회단체는 건전한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겠다. 나아가 서로 간에 의견이 상충할 때에는 물리적인 대립과 갈등보다는 이제는 대화와 협력으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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