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자원환경경제학박사 /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허은녕 박사

[이투뉴스 / 칼럼] 전기가 곧 쌀이 되어 버릴 것 같다. 무슨 소리냐 하면, 국제에너지가격은 계속 높은데 국내 전기가격을 계속 낮게 유지하다보니 이제 벼농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끊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이제 낮은 농업용 전기료를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엄청난 정부 세금이 사용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쌀(벼)농사는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가장 오래된 문제 중 하나이다. 1970년대 이후 정부의 쌀 증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쌀은 자급자족하게 된 지 오래인데 벼농사 하시는 분들이 다른 작물로 옮겨가지 않고 계속 벼농사만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국가재정에서 지원되는 금액은 특히 이를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정치건의 영향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10년부터 겨울철에 발생하기 시작한 전력 피크는 이제 벌써 일상생활이 되어가고 있다. 원인은 분명 정부의 통제로 산업용, 농업용, 교육용 및 심야전력용의 전기요금을 정부의 지원으로 낮게 유지하고 있는 전기요금체계에 있는데, 정부는 괜히 산업체보고 전기 절약하라 하고, 공무원들 춥고 덥게 일하게 하고 있다. 특히 농업용이 문제인데, 농촌지역의 전기사용량은 낮은 전기요금 덕택에 최근 10년 동안 급증하였다. 농촌용 전기요금이 평균요금의 40% 수준이라, 농어촌 지역 주택의 가전기기나 핸드폰 등은 물론이고 전기장판으로 대표되는 난방용 에너지로 전기사용이 급증하고 있고, 이제 비닐하우스, 채소재배 및 양식어업 등 농업/어업 등 사업용으로도 싼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화(電化)사업이 세계에서 가장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농어촌지역의 전기소비는 낮은 요금이 지속되는 한 계속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농어촌 지역은 재생에너지 보급에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펠렛 보일러와 같은 바이오에너지나 폐기물에너지의 경우는 물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을 사용할 수 있는 여력이 많은 지역이 농어촌지역이다. 그러나 전기에 맛들인 농어촌지역 주민들이 재생에너지는커녕 천연가스 배관망까지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신재생에너지 지방보급사업 예산이 대부분 남아도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번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오랫동안 원가보다도 낮게 유지된 전력가격이다. 지난 수년 동안 전문가들은 꾸준히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여 왔고 정부도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인 전력가격 상향조정은 물론 원가연동제의 실시도 미루고 있다. 당장에 물가를 잡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이제 기회를 놓치면 전기는 쌀이 되어 우리 후손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전기요금 현실화나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고려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내년 총선을 기점으로 곧 전기가격은 농어촌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전기요금 인상은커녕 벼농사와 같이 오히려 보조금이 더욱 더 늘어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벼농사가 국가보조로 버티듯이 이제 전력산업도 국가보조가 필요한 산업이 된다는 것인데, 벼농사는 그래도 쌀이나 나오는데, 전기는 그냥 사용하고 말게 되니 더욱 문제이다.

전력가격 합리화를 서두르지 못하는 이유로 물가 문제 이외에 서민층 복지 문제와 한국전력의 비효율성을 드는 경우가 많다. 요금을 올리면 한국전력만 부자가 되고, 서민층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은 전력특별기금의 신설로 해결이 가능하다. 전력생산에 사용되는 화석연료에 수입부과금을 부과하여 이를 바탕으로 기금을 만들면, 전력가격의 상승효과도 보지만 그 상승분을 한국전력이 아닌 기금조성에 투입하게 되며, 동시에 이 기금을 활용하여 서민층의 복지향상과 고효율 전력기기 보급, 스마트그리드, 신재생에너지 전력보급 등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에의 수입부과금 부과로 인한 전력특별기금의 신설은 저탄소녹색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석유수입에 이미 부과하고 있는 수입부과금을 석탄과 천연가스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단지 자주개발분 등에 대해서는 이를 면제해 주어야 할 것이다. 특별기금신설은 국가재정의 문제 역시 해결해 준다.

그러나 이 역시 완전한 처방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당장 중장기적인 전력가격 상승 정책을 발표하여 더 이상의 급격한 전력수요증가를 막고, 빠른 시한 안에 근본적인 전력가격체계 개선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농어촌의 전기사용량이 늘어나는 것이 농어촌지역 주민들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 그런 전력가격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