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2024년' 저장 포화시점 연장…공론화 수순 밟기로
경주시 "재처리 꼼수, 안전성 위협" 반발…시작부터 '파열음'

[이투뉴스]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공론화 수순을 밟기로 했다. '원전 강국'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방사성폐기물 처리논의에는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정권 말기에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논의의 발판이 될 연구용역 발표단계서부터 삐걱거리며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 연료로 사용되고 난 후에 남은 핵연료 물질을 말한다. 원전 작업자가 사용한 장갑이나 작업복 같은 중저준위 방폐물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물질로 분류된다.

원전을 가동하는 이상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는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현재 울진ㆍ월성ㆍ고리ㆍ영광 등 4개 원전 부지에 1만1370톤(총 저장용량의 68%)의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저장 중이다. 문제는 2016년 고리 원전부터 단계적으로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 사용후핵연료 발생현황(한국수력원자력)
이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의 대안 마련을 위해 원자력학회 컨소시엄이 최근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의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 결과를 내놨다. 정부가 2009년 이 문제의 공론화에 앞서 전문가 용역을 우선 시행키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용역보고서는 한계에 다다른 사용후핵연료의 저장기한을 임시저장시설 확충을 통해 포화시점을 2016년에서 2024년으로 늘릴 수 있다는 안을 제시했다.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에 대비해 별도의 중간저장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용역을 통한 안의 형태로 제시됐지만 사실상 정부 방침이라는 점에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정부의 공론화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간다면서 정부가 여전히 방폐장에 반감이 큰 지역정서를 끌어안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저준위 방폐장을 갖고 있는 경주시는 '속았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구용역 최종결과 발표에 앞서 지난달 29일 열릴 예정이었던 공청회는 경주시의회 의원 30여명이 "연구용역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단상을 점거하는 바람에 파행을 겪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만드는 대신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을 확충하는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경주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다. 시는 고준위 방폐장을 짓기보다 저장공간만 늘리자는 것은 결국 재처리를 하기 위한 것이며 정부가 경주에 재처리 시설을 들이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은 핵연료 재처리를 규제하고 있는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재처리를 할 수 없다. 핵연료 재처리는 핵무기 개발의 전단계로 간주되기 때문에 특히 민감한 사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 정부가 핵연료 재처리 관련 로비에 나선 정황이 드러나 파장이 일기도 했다.

김익중 경주핵안전연대 운영위원장은 "중저준위 시설을 경주에 들여오면서 후에 고준위 시설은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고 약속했고 특별법에도 들어있다"면서 "하지만 경북이 원전 클러스터를 하겠다 하고 위키리크스에 경주에서 핵 재처리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나오는 걸 보면 정부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가 시급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공론화를 미루며 오히려 정치적 부담을 키워왔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2005년 중저준위 방폐장이 경주로 최종 결정되면서 고리, 월성 등 국내 4개 원전 본부내에 임시 저장중인 고준위 방폐물인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 마련 등을 위한 공론화 작업에 나설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2007년 공론화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고 2009년 7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내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정부는 돌연 전문가 용역부터 다시 하겠다며 공론화 논의를 백지화했다. 전문가 수준의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실상은 정부가 공론화에 부담을 느껴 뒤로 미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정부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지금까지 논의를 미뤄왔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별도의 부지에 중간저장시설을 짓는 데 최소 10년이 걸리고 원전 부지 내 짓더라도 6년이 소요된다. 경주에 터를 잡은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시설도 부지 선정에만 십수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공동대표는 "용역을 통해 안이 나왔는데 사실상 저장시설 확충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고 그것 때문에 지난달 공청회도 무산됐다"면서 "논의 방식부터 이미 짜여진 결론에 따라 가는 것 같다는 혐의가 짙다. 그런 측면에서 진행되는 방식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사회적 합의를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일단은 포화시점을 연장해 시간을 번 만큼 앞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균 기자 kk9640@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