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사태 이후 계통운영기능 한전 이관 추진 '탄력'
전력업계 "민간발전 소외로 시장 위축 불가피"

[이투뉴스] '9·15 정전사태'를 계기로 전력산업구조를 다시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이른바 '전력산업 수직재통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규모 정전사태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 전력계통망의 운영주체와 소유주체가 이원화된 현 구조에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통합론이 힘을 받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계통운영 기능이 한국전력으로 넘어갈 경우 시장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는 민간발전업계의 반발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지난달 15일 벌어진 정전사태는 송·배전과 계통운영을 이원화한 기형적인 전력산업 구조에서 비롯된 '예견된 참사'라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경쟁을 통한 효율을 꾀하겠다는 목적으로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추진하면서 한전을 6개 발전사와 전력거래소로 분리했다. 이어 이들 회사를 민영화하고 송전과 배전 부문도 분할하려 했지만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정전 사태 이후 추진동력을 잃어 어정쩡한 상태로 남게 됐다.

전력노조와 정치권, 시민사회단체들은 전력산업의 분할 경쟁체제로 인한 폐해를 바로잡고 유기적인 통합관리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전력산업을 다시 통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호동 에너지노동네트워크 대표는 "10여년간 지속된 구조개편 논의는 지난해 분할 경쟁체제의 폐해를 그대로 남긴 채 봉합됐다"면서 "이번 사태의 주요원인 가운데 하나가 분할경쟁체제라면 이를 근본적으로 짚어봐야지 인적 책임을 묻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력노조측은 정전사태 직후 성명서를 통해 "이번 대규모 정전사태는 실제 설비를 보유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한전과 계통운영을 담당하는 전력거래소의 업무가 분산돼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생산에서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수직 통합된 전력회사가 담당해야 최적의 전력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전력계통망 소유와 운영의 이원화로 위급상황에서 유기적인 대응이 어려웠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의사결정과 보고체계, 계통운영 등에서 드러난 총체적인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계통운영기능을 한전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탄력을 받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여야 국회의원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5일 정전대란 방지를 위해 전력계통 운영업무를 한전에 이관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과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경위원 25명 가운데 24명이 법안에 서명함에 따라 법안은 별 무리 없이 통과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계통운영 기능을 한전으로 옮기고 나면 전력거래소에는 전력을 거래하는 시장운영 기능만 남게 된다. 전력거래소의 주된 업무가 계통운영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한전과 전력거래소의 통합수순으로 가게 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의 움직임에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도 있다.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해야 할 사안을 여론에 따라 성급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근대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실장은 "중장기적으로 보면 송배전과 계통운영기능을 합치는 게 효율적일 수 있고 통합구조에 관한 해외사례를 벤치마킹할 부분도 많다고 본다"면서도 "거래소의 시장운영기능이나 판매경쟁, 전기요금 등에 관한 방향 설정 없이 무조건 재통합이나 한전 체제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포스코파워, 케이파워 등 민간발전사들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성장을 거듭하며 국내 발전용량의 10%를 점유하고 있는 민간발전업계는 계통운영 기능의 소유주체가 한전으로 바뀔 경우 시장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계통운영 기능을 소유한 한전을 공항 관제탑에 비유한다면 90여대의 항공기를 소유한 관제탑이 민간기 10여대를 포함한 모든 비행기의 입출항을 제어하는 격이라며 업계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간사가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평택에너지서비스, 포천파워 등이 설비 건설 중인데 정 의원의 입법 내용대로라면 사업 추진이 어려워져 파장이 클 것"이라며 "한전 체제로 갈 경우 투자가 지연되면 한전이 나서야 하는데 재원 마련과 민원 해결 문제만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한전은 4~5년 걸리는 석탄화력발전이나 10년 이상 걸리는 원전 등 발전단가가 저렴한 기저발전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아 정전 위기는 늘 상존하게 될 것"이라며 "전력거래소 인력이 한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고 10년 이상 계통운영 업무를 해왔는데 전문성이 결여됐다고 보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광균 기자 kk9640@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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