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전력거래소를 두고 전문성이 없다고 하는데 국회의원들의 전문성이 더 의심스럽다."

어느 민간발전업계 종사자의 말이다. 전력거래소의 계통운영기능을 한전으로 통합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한 업계의 반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전사태 발생 후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계통운영기능을 한전으로 이관한다는 내용의 관련법안 개정안을 발의했고 동료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서명을 통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업계 관계자들이 실소를 금치 못하며 지적하는 대목은 정 의원이 밝힌 발의취지다. 정 의원은 "전력계통 운영 경험이 풍부한 한전이 이 업무를 담당하게 해 계통 운영의 일원화로 효율성을 확보하고 안정성도 높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0년 이상 특정업무를 수행해온 기관에 전문성이 없다고 하면 대체 어느 기관에 전문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한전은 송배전망 운영과 전력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회사다.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추진 과정에서 발전과 계통운영 부문이 쪼개진 이후 계통운영 경험이 없단 얘기다.

이는 상식의 문제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법 개정취지로 전문성을 운운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특히 민간산업이 발전시장에서 1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계통운영 권한의 향방이 전력산업 구조에 미칠 파장을 고려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관련법 개정안에는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 묻어있지 않다. 다분히 감정적 요소가 반영된 부실 입법행위다.정전사태를 둘러싼 책임공방 속에서 드러난 정황만으로 만만한 기관에 징벌적 조치를 취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책임소재는 분명히 따져야 한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지 구조부터 바꾸고 보는 것은 순서가 아니다. 한전에 계통운영을 맡겼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가서 또 바꿀 셈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를 바로잡는 일이다. 지금 상황은 정작 치료해야 할 상처를 놔두고 엉뚱한 처방을 내놓는 것과 다름 없다. 에너지 다소비를 조장하는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않고 전력수급과 수요관리 대책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

당장 올 겨울이 문제다. 공급예비력이 200만kW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력수급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력거래소는 계통운영업무가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징계조치로 인한 중앙급전소 직원들의 사기 저하로 흔들리고 있다.

전력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시기에 중앙급전소는 그야말로 전시상황을 방불케 한다. 비상상황에서 순간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급전 지시를 내려야 하는 책임자는 막중한 부담감을 지닐 수밖에 없다. 사상 초유의 단전 조치를 내렸어야 했던 담당자의 심정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위기상황을 대처해야 하는 이들에 대해 사후 징계 조치가 난무하게 되면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과감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위축되기 쉽다. 지금은 당면한 전력수급 위기를 대처할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잘못된 처방으로 인한 파장을 감내하기엔 예측가능한 후유증이 너무 크다.

김광균 기자 kk9640@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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