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이투뉴스] 처음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으로 취임을 했을 당시만 해도 나는 사실상 IT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사회과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경제학과 정치학에 대해 불철주야 공부를 했으며, 스포츠 분야의 활동을 통하여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방안을 열정적으로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IT 기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IT는 단지 영어의 대명사로만 존재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IT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IT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 한국정보기술연구원에서 나의 열정을 펼칠 기회가 닿게 됐다. 한국정보기술연구원의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쌓아왔던 모든 능력을 발휘하여 국가와 국민에 크게 이바지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리라 마음먹었고, 그 첫 번째는 숙제는 바로 IT 분야에 대한 이해였다.

IT연구원의 수장으로서 내가 이끌어가야 할 조직의 임무와 역할을 이해하고, 그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들과 서로 소통하면서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그들의 업무 환경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양한 IT 이슈들에 관심을 갖고, 기본적인 전산 이론 및 실무에 대하여 나이어린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들으면서 배우고, 유명한 전문가들의 서적을 쌓아놓고 밤새 읽으면서 1년여간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자 IT 분야에 대한 안목이 서서히 생기게 됐다.

또한, 실제 생활에서는 각종 이슈를 따라잡기 위하여 내가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는 IT 분야의 결과물을 이용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실제로 기존에는 컴퓨터로 웹페이지 검색 수준 정도의 수동적인 컴퓨터 사용 범위를 넘어서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도 관심을 가지고 각종 커뮤니티들을 통하여 정보를 습득하는 등 네트워크를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컴퓨터 사용자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IT는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이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산업경쟁력 면에 있어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기반산업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IT 산업분야가 우리나라 GDP의 11%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그 가능성과 영향력을 활용하여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분위기가 거의 조성되지 않는 현실 또한 알게 되었다.

IT 종사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푸념과 한탄으로 나타나고 있었으며, 심지어 심심치 않게 자조섞인 우스개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에서 OS를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으나,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직원이 회사 업무 때문에 이혼하게 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업체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심한 허무함과 인식의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이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어떻게든 쥐어짜서 제품을 생산하는 환경 속에서 개발자들의 열정을 희생으로 바꾸기를 강요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 상황을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 IT 산업의 성숙은 아직도 요원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볼 때 오히려 더욱 개선하고 발전할 여지가 많은 상황이라는 역설적 희망과 함께, 국가의 운영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정보기술연구원의 원장 업무를 수행하다가 가장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 것은 우리나라의 정보보안 실태였다.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산업 분야에서는 IT 기술을 활용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이제는 산업의 기반이 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보안이 필요한 현장에 대한 인식은 열악하다 못해 무관심하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나 자신이 IT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과거에는 2003년의 1.25 인터넷 대란이나 2004년 국내 대형 병원들이 악성코드 감염으로 인하여 업무가 중단될 뻔한 상황까지 갔던 일들을 겪으면서도 당시에는 생활에서 불편함만 잠깐 느낄 뿐 그 원인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IT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감을 잡은 이후에 벌어진 옥션, 네이트 등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그리고 현대 캐피탈과 농협 등 국가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금융권의 정보보안 사건들을 접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북한이나 중국발 해킹 시도가 빈번해지고 이로 인한 국가적 피해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현 상황은 정보보안 문제가 국가경제와 안보에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개개의 정보보안 사건들을 하나씩 놓고 바라볼 때는 단순히 담당자의 실수나 업무상 과실로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주체가 누구이든 정보시스템에 대한 공격이 명백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정보보안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대폭 개선되지 않는다면 더욱 큰 피해, 더욱 심각한 손실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이러한 상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사람에게만 책임을 묻고 짐을 지우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개인이 스스로 자신과 관련된 정보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과연 내가 스스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한국정보기술연구원이 어떤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지에 대하여 고민을 거듭했다. 한국정보기술연구원은 25년간의 IT 교육에 대한 노하우가 있으며 그동안 만오천명 이상의 IT 전문 인력을 키워온 기관이다. 여기에 내가 정보보안 분야에 대한 교육 임무를 부여하고, 정보보안 전문기술을 가지고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사명을 제시했다.

정보보안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사명을 단순한 구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직접 발 벗고 뛰었다. 국회의원들에게 정보보안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자료를 만들고 설득하는 작업을 했다. 또한 지식경제부의 주무부처 공무원들과 직접 만나고 토론하면서 인력양성을 위한 정책적 밑바탕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다.

정보보안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단기적인 교육과정의 개설이나 일시적인 지원만을 통해서는 절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적어도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교육 대상은 어떤 사람이며 그들에게 무엇을 교육시켜서 사회 어느 분야에서 역할을 하게 해야 할지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 첫 번째 성과로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4개의 과정을 만들었으며 이 과정을 통하여 배출된 인력들은 현재 정보보안의 각 분야에서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욱 더 발전해 나가기 위해 정보보안 분야의 엘리트 양성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보안 엘리트 양성 계획은 그동안 내가 몸담았던 체육 분야의 경험에서 착안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스포츠 분야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엘리트 체육정책이었다.

사회체육에 대한 저변확대를 통하여 전체적인 국민건강 증진을 추구함과 동시에 엘리트 체육 정책 하에서 우수한 선수들을 발굴⋅지원하여 그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들이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확보된 국제적 경쟁력은 국가 위상 제고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스포츠 분야의 발전 과정에서 착안하여, 엘리트 체육 관점으로 정보보안 분야에서도 국가적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특히 정보보안 분야는 한명의 해커가 다수의 관리자가 지키는 정보시스템을 무력화할 수도 있고, 제대로 된 정보보안 전문가 한명이 다수의 해커에 의해 수행되는 공격을 막을 수도 있다. 그들 하나하나가 창조하는 경제적 가치는 수백, 수천억의 국가예산이 소요되는 국방비와 비견할 수 있다. 따라서 악의적인 수많은 해커들에 대항할 수 있는 정보보안 분야의 엘리트(Best of Best) 인재들을 육성하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IT 산업 및 정보보안 분야를 둘러싸고 있는 제반 환경들은 우수한 인재들이 이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막고 있다. 특히 정보보안 분야는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 사회적 이슈화 정도, 학습 내용의 흥미도 및 결과물의 성취감 등에 있어서 학습자를 자극하는 요인이 많이 있으나, 노력에 대한 보상과 그에 따른 사회적 위상 등이 부족한 상황이다. 재능있고 똑똑한 학생들이 더 편하고 보장되는 길을 두고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길을 굳이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인재들을 정보보안 분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그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여 이 분야를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하며, 그 시초가 되는 것이 정보보안 분야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양성과정이다. 정보보안 분야의 특성상 정부가 의지만 보여준다면 유능한 인재들을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본다. 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원과 더불어 정보보안 분야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제대로 만들어진 교육과정이 마련된다면 투자대비 엄청난 사회⋅경제적 효과를 유발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다.

단적인 예로,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에서 2012년부터 사이버국방학과를 설립하여 국방부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보여주니 소위 말하는 5관왕(서울, 연고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합격) 인재들이 대거 지원한 사실이 있다. 국가적 중요성과 사회적 관심도로 볼 때 우수한 인재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 주면 최고의 두뇌들이 정보보안 분야에서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IT 기술은 이제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생활과도 밀접한 기술이다. 이러한 IT 기술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편의성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이 바로 정보보안이다. 따라서 머지않은 시기에 정보보안 경쟁력은 국민 생활의 질을 측정하는 행복지수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될 시기가 올 것이며,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정보보안 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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