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후체제 마련 합의 '더반 플랫폼' 채택
협상은 이제 시작…법적 구속력 의정서가 관건

[이투뉴스] 지난해에도 전 세계는 폭염과 강추위, 폭우, 대형 태풍 등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12월 필리핀 남부 민다오나섬에서는 열대 폭풍우의 영향으로 폭우가 계속되면서 이틀 만에 약 1400명의 사망·실종자와 약 4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물론 각 대륙의 고지대에 위치한 만년설이 빠른 속도로 녹아 없어지고 있다는 뉴스는 이제 익숙할 정도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여름 예상치 못한 국지성 폭우에 서울 광화문 한복판이 물바다로 변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특히 지난해 9월 15일에는 갑작스런 더위로 전력수요가 솟구쳐 전국 수십만 가구가 정전되는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같은 이상기후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에 있다는 게 전 세계 과학자들의 공통된 연구결과다.

▲ 지난해 12월 6일 저녁 유엔 주최 행사에 참석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 마이테 은코아나-마샤바네 남아공 외무부 장관,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 니콜라스 스턴 경(사진 왼쪽부터)<사진=기후변화행동연구소>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영향, 적응, 완화 방안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IPCC가 발간하는 보고서는 기후변화협상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기후변화협상은 다른 국제협상들보다 기후변화 현상을 예측하는 과학에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IPCC의 보고서가 기후변화협상의 속도와 강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7년 탄생한 교토의정서나 교토의정서 운영 체제에 관한 ‘마라케시 합의(2001년)’, ‘발리행동계획(2007년)’ 등의 채택에는 이들 보고서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가장 최근 발표된 4차 보고서(2007년)에는 지구온난화는 진행 중이며 20세기 중반 이후 진행된 온도 상승의 원인은 인간 활동으로 생긴 온실가스의 농도 증가 때문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지난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국제연합 환경개발회의(UNCED)를 계기로 만들어진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기본협약(UNFCCC, 이하 기후변화협약)은 ‘인간이 기후 체계에 위험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으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안정화’하는 것을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는 194개 협약당사국으로 구성된 당사국 총회(COP)다.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는 매년 5개 대륙에서 번갈아 개최되며 기후변화에 대해 ▶형평성 ▶공통되지만 차별화된 책임 ▶대응 능력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한다.

형평성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공통의 차별화된 책임은 역사적 배출량, 대응 능력은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경제 능력을 의미한다. 당사국 총회 때마다 개도국들이 선진국들에게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책임을 묻고 선도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토의정서 연장… 새 협상 체제 논의키로

최근 몇 년간 열렸던 당사국 총회에서의 가장 큰 의제는 바로 교토의정서 연장에 관한 것이었다.

교토의정서는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에서 채택되고 2005년 발효됐다. 당시 교토의정서의 주목적은 2000년 이후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체제 구축에 있었다. 부속서Ⅰ은 (41개 선진국) 국가 전체가 1차 공약기간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990년 배출수준 대비 최소 5%를 감축해야 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따라서 채택 당시 부속서 Ⅰ국가들에게는 온실가스 의무 감축량이 부과됐다. 그러나 미국은 이때 감축량을 부과 받았음에도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아 현재까지도 의무 감축국가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미국이 국제사회로 부터의 비난을 받음과 동시에 함께 당사국 총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선진국들에게 의무 감축량을 부과한 교토의정서 1차 공약기간의 종료가 2012년 말로 상정됐기 때문에 이후 기후변화논의는 ‘포스트-2012(또는 포스트-교토)’로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11일 막을 내린 17차 더반 총회(COP17)에서 당사국들은 교토의정서의 연장과 새로운 기후체제 마련에 합의한 ‘더반 플랫폼(Durban Platform)’을 채택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COP17의 주요결과는 ▶교토의정서 2차 공약기간 설정 합의 ▶2020년 이후 모든 당사국이 참여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포괄적 감축제체 협상 출범 합의 ▶칸쿤 합의 이행 ▶녹색기후기금 설립 합의 등이다.

주목할 점은 교토의정서를 5년 또는 8년 연장하고 2015년까지 2020년부터 이행할 새 기후변화협정을 만들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다만 교토의정서 2차 공약기간과 구체적인 감축수준은 오는 12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18차 총회(COP18)에서 결정키로 했다.

2차 공약기간에 참여 의사를 밝힌 국가는 EU와 노르웨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호주, 뉴질랜드 등이며 일본과 러시아, 캐나다는 불참 입장을 견지했다.

이로써 새로운 포스트-2012(포스트-교토) 체제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끊임없이 제기되던 교토의정서 체제의 실효성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 깡통과 현수막을 들고 녹색기후기금의 지불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환경단체들<사진=기후변화행동연구소>.
산업 강대국과 약소국의 대립구도

 

COP17에서 선진국들은 교토의정서에서 규정했던 ‘선진국-개도국’ 구분방식의 변경을 주장했다. 1992년 합의된 부속서Ⅰ과 비부속서Ⅰ 등의 선진국 분류는 20년이 지난 최근의 국제상황과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또 부속서Ⅰ국가의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27%(2020년에는 20% 예상)에 불과하며, 선진국그룹으로 인식되고 있는 OECD 가입여부, 국민소득, 1인당 배출량 등을 포괄적으로 감안한 새로운 분류방식이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이번 총회의 협상과정에서는 그동안의 선진국-개도국 간 대립구도가 미국과 중국, 인도 등 산업 강대국과 군소도서국, 최빈개도국, 아프리카 등의 약소국간 대립구도로 변했다. 결국 EU가 기후변화에 취약하고 최우선 피해국인 약소국을 대변하면서 협상을 주도하고, 국제 NGO 및 미디어와 연대해 도덕적 윤리적 명분으로 반대국가를 압박한 것이 협상 타결의 배경으로 평가받았다.

이와 함께 IPCC가 최근 발표한 특별보고서의 극한 기후변화 사태 빈발 전망, UNEP(유엔환경계획)이 코펜하겐 총회(COP15) 이후 각국이 공약한 감축 수준이 2도 상승 억제 목표 달성에 60%에 불과하다는 지적 등도 이번 협상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협상시기의 마지노선이라고 여겼던 코펜하겐 총회(COP15)와 칸쿤 총회(COP16)에서 실패를 경험한 전 세계가 유일한 감축체제였던 교토의정서의 종료를 코앞에 두고 이뤄낸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과학자들이 경고한 2도 상승 억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15년에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은 정점을 찍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대책이 너무 늦게 마련됐다”면서 “그래도 교토의정서 1차 공약기간에 끝나는 2012년 이전에 합의를 이뤄낸 것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교토의정서 1차 공약기간에 따른 선진국들의 감축 의무 이행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앞으로 각국이 의무 감축이나 자발적 감축을 제대로 지킨다고 해도 2도 상승을 막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교토의정서 연장이 합의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더반 총회의 협상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모든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협상 목표는 결국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의정서 형태’를 지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특히 기후변화 협상은 큰 맥락에서 각국의 사회·경제·정치·문화 등 모든 부문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것”이라며 “공통되지만 차별화된 책임이 필요하다는 논리 아래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부민 기자 kbm02@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