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고향마을 산하(山河)를 가로지르는 송전탑이 들어서고 있다. 총연장 65km의 신가평~신포천 345kV 공사구간의 일부다. 고향집서 수km나 떨어져 있는데, 수려한 풍광을 비집고 들어선 철탑이 눈엣가시처럼 거슬린다. 세상사는 '남의 일'에서 '내 일'이 되는 순간 이처럼 호불호가 분명해진다.

고향집 처마 아래서 바라보는 대금산(가평군 소재)의 사계(四界)는 언제나 한 폭의 동양화였다. 단풍이 들면 그런대로, 눈 덮인 설산(雪山)도 그만의 운치가 있다. 내 유년은 그 풍경을 배경으로 성장했고, 장성해 고향을 떠나왔지만 늘 그 깊고 유구한 자연의 품이 그리웠다.

그런 마음의 성지를 침범한 인공시설물이니 공리(公利)를 위한 일이라지만 못마땅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수십미터 높이의 철탑이 지근거리에 들어서는 인근주민의 피해의식과는 비교할 것이 못된다.

아버지와 술상을 마주한 자리에서 건네들은 원주민들의 피해의식과 민-민 갈등은 생각보다 골이 깊었다. 송전선이 관통하는 부락은 반세기를 동고동락한 마을공동체가 양분됐다. 조금이라도 혐오시설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당연한 이기(利己)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실제 송전탑이 들어서는 농촌마을은 민-관으로 시작된 갈등이 민-민 갈등으로 확대돼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송전탑의 진짜 위험은 고압전선이나 막연한 전자계가 아니라 이런 식의 마을 공동체 붕괴다.

신고리-북경남 765kV 건설공사 구간 중 한 곳인 밀양에서 지난 16일 일흔넷 어르신이 공사강행에 항의해 몸에 불을 붙였다. 무려 7년간 반대운동을 해 온 故 이치우 어르신의 유언은 "내가 죽어야 이 공사를 막아내제"였다고 한다. 목숨을 던질만큼 싫었던 송전탑 건설은 일시 중단됐다.

송전탑은 대량 전력공급처와 수요처가 달라 필요한 구조물이다. 전력의 대부분을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가 쓰는데, 발전소는 외진 지방이나 바닷가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보니 이런 시설이 확충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GW단위로 늘어날 원전과 수요처를 연결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송전탑이 세워져야 할지 모른다. 또 이 과정에 발생할 사회적 갈등비용과 경관훼손에 따른 계량화하기 어려운 직·간접적 피해액도 비례해 불어날 것이 명약관화하다.

지중화하면 해결되지 않겠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154kV와 345kV을 땅에 매설하면 송전탑 건설 대비 각각 7배와 14배의 비용이 든다.(한전 추계) 지금은 전원개발촉진법 보상규정에 따라 송전탑이 들어선 땅과 선하지(線下地. 공중의 송전선이 지나는 땅) 안팎 3m만 보상해 주면 된다.

특정 지역에 발전원이 몰려있고, 한번 발전소가 들어선 지역에 계속해서 발전소가 추가로 들어서는 지금의 전력체계로는 앞으로도 송전탑 건설은 불가피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송전탑 갈등과 폐해를 완화하거나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분산형 전원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 같은 재생에너지를 확대보급해 수요·공급지를 일치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이 과정에 지속적으로 양산되는 송전탑 경과지역 주민의 상처는 전력소비자 모두가 연대책임을 지고 치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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