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욱 이투뉴스 발행인

[이투뉴스 / 사설]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지난달 9일 저녁 12분간 전기가 끊기는 사고가 일어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같은 사실이 한달 가까이 은폐되어 왔다는 점이다. 실무자는 금방 외부 전원을 이용해 전기를 공급했기 때문에 공식 보고하지 않았다는 주장.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는 종업원들의 원자력 안전에 대한 의식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자로에 전기 공급이 끊기면 바로 옆 수조에 보관해놓은 사용후 핵연료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물이 모두 증발한다. 물이 없어지면 사용후 핵연료를 식힐 수 없기 때문에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전무후무한 재앙이 닥치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원자로의 전원은 어떤 경우에도 끊겨서는 안된다.

이번 사고의 경우 원자력발전소의 설비와 운영 등 전반에 걸쳐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고리 1호기에는 외부 전력을 공급하는 전선이 두개 있다. 하나는 정비를 위해 끊어놓은 상태였고 다른 하나는 정비작업자의 실수로 끊어졌다. 작업하는 사람이 전력 차단장치를 한 개씩만 작동해야 하는데 두 개를 한꺼번에 작동해 1호기 전체 전력이 차단된 것이다.

전력이 차단될 경우에 대비해 비상 디젤발전기가 2대 준비돼 있었으나 한 대는 정비 때문에 가동할 수 없는 상태였고 남은 한대는 엔진 시동장치에 붙어있는 밸브가 고장나 가동되지 않았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는 수동 비상발전기가 있다’고 자랑했지만 이번 사고에는 역시 가동되지 않았다.

고리 사고는 부산의 한 시의원이 우연히 듣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이처럼 엄청난 사고가 났는데도 본사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관할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물론이고 지식경제부 마저도 깜깜 무소식이었다 하니 이러고도 원전 강국이라고 큰 소리를 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이달 말에는 핵안보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세계적으로 원자력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모임을 앞두고 이런 원시적인 사고는 물론이고 은폐사실조차 드러났으니 얼굴을 들 수 없는 상황이다. 원자력발전소는 보안을 매우 중시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까지도 쉬쉬하는 것이 오랜 관행으로 되어 왔다. 이번 사고 은폐 역시 쉬쉬하는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다.

차라리 사고 사실을 국민에게 밝히고 신속하게 대응했던 것을 알렸더라면 원자력에 대한 신뢰가 한층 더 쌓였을 것이다. 누누이 지적한 바와 같이 원자력은 안전 못지않게 신뢰가 중요하다. 국민의 수용성 확보를 위해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이런 사고가 한번 터지면 신뢰를 회복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발전소의 쉬쉬하는 풍토를 뿌리부터 고치는 환골탈태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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