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자원환경경제학박사 /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부교수

허은녕
서울대 교수
[이투뉴스 칼럼/허은녕] 벌써 8년이 되어간다. 국제원유가격이 배럴당 40달러 수준이던 2004년 6월, 라미쉬발리 前주한러시아 대사는 한 인터뷰에서“에너지 안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며 이는 미국, 유럽 등과 다른 모습”이라고 우리나라에 대하여 쓴소리를 하였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러시아와 일본 등 선진국 대부분이 2001년에서 2003년 사이에 국가장기에너지정책을 확정, 발표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핀잔을 듣고서도 우리는 국제원유가격이 140달러까지 올라갔던 2008년 8월에야 겨우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국제정세를 모를 리 없는 우리나라가 외국 대사의 핀잔까지 들어가면서도 국가에너지정책을 완성하지 못한 대표적 이유 중 하나가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문제였다. 협의과정이 난항이었기 때문이다. 경주로 방폐장의 위치가 정해지고 난 이후인 2006년에서야 에너지기본법이 확정되었고,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노무현 정부에서 발표하지 못하고 2008년에야 발표된 것이다.

정부가 한국전력 등 에너지공기업을 민영화 하여 에너지부문에 시장경쟁을 도입하겠다는 논의를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였으니 이미 15년이 되어 간다. 한국전력은 여러 회사로 쪼개졌고 한국가스공사와 함께 주식시장에 상장되었으나 이들의 생산품인 전기와 가스는 여전히 시장이 정하는‘가격’아니라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결정하는‘요금’인 상태이다. 당연히 국제시장변화가 반영될 리 없으며‘시장경쟁을 통한 효율화’가 이루어졌을 리 만무하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전력요금 수준은 2000년 OECD 평균수준이던 것이 지금은 OECD 최하위권이 되었으며 OECD 최고수준이었던 전력공급 안정성은 이제 거의 매달 정전을 걱정하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시 되는 에너지정책 기조인 기후변화대응정책 역시 낮은 에너지가격에 그 구호가 빛바래 버리고 말았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 중에서 60년대 이후 꾸준히 유지되어 왔던 기조는 크게 ‘높은 가격’과 ‘인프라투자 정책’이었다. 세금으로 가격을 높여 국민의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고, 그 세금으로 기금을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전력망을 설치했고, 수도, 도로 및 광통신망을 깔았으며, 발전소와 천연가스배관망 및 도시가스시설을 하였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어디서나 높은 품질의 전기를 사용하고, 품질이 세계 최고수준인 휘발유를 사용하며, 청정연료인 도시가스를 도시지역 대부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이러한 기조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인 우리나라의 사정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동해에서 천연가스가 나오고 해외자원개발사업이 최근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성공스토리를 이어가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에너지의 95%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나라이다.

전기나 휘발유를 우리나라 땅 파서 만드는 게 아니고 우리나라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땀 흘려 만든 공산품 팔아 번 돈을 주고 외국에서 수입한 에너지로 만든다는 그 사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자원부국’은 고사하고 작금의 이란사태나 북한사태가 심각해지면 가장 크게 경제가 타격을 입을 나라 제 1순위에 오르는 곳이 우리나라이다. 

후쿠시마사태로 번지고 있는 국내의 원자력 논의가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외국에서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우라늄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고, 재생에너지인 태양광발전시설 역시 중국제품이 세계시장을 다 잡고 있지 않은가? 이 사실을 국민은, NGO는 잊을 수 있겠으나 정부가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되지 않은가? 정부는 도대체 언제까지 국제에너지가격이 오르면 국내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을 제대로 고치지 않을 건가? 언제까지 원가 이하의 에너지요금을 물가를 핑계로 다음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지나갈 것인가?

에너지정책의 기조는 어떠한 정책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바로 국민을 이롭게 하는 것 그 이상일 수 없다. 그리고 정책의 기본이 튼튼하고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국가와 국민이 행복해 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게 바로 선진국의 모습이다.

늦추고 눈치를 보다가는 그 동안 쌓아온 것조차 모두 잃고 만다. 어떻게 국가와 국민을 이롭게 할 에너지 정책기조를 세울 것인가 하는 화두가 정부부처 및 국회와 전문가들이 공유하는 화두가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이러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날이 앞으로 많이많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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