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문제 넘어 제대로 된 건물을 짓는 게 포인트
각 분야 기술 융합한 제로에너지 주택단지 조성할 단계

▲ 이명주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이투뉴스] 최근 녹색건축이 건축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에너지 절약형 건물로 더 잘 알려진 녹색건축의 본래 목적은 인간 삶의 질과 경제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명주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는 우리가 지금까지 건물의 질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에너지를 사용하는 건축물을 짓는 데에만 급급했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에너지를 사용하는 건축물 설계에 익숙해져버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집값 올라도 결로현상·층간 소음 문제 여전

"녹색건축을 에너지 문제로만 한정시키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전체적인 질을 끌어올리는 방안이 돼야하죠."

우리나라 건축은 주택 보급이란 미명아래 단순히 콘크리트를 쌓아 올리는 개념으로만 인식돼왔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이라는 지구적 문제가 대두되자 이제는 건물의 에너지 절약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녹색건축이란 에너지 문제에 앞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건축문화는 건축물의 품질이 아닌 재산적 가치와 매매에 따른 가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실정이다.

그녀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집 안에 생기는 곰팡이, 결로, 환기 문제 등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서 "비싼 돈을 주고 집을 사지만 겨울에는 춥고 여울에는 더운데다가 비일비재한 층간 소음은 사회문제로 발전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또 "에너지 절약형 건물을 지으면 이 같은 상황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며 "다만 녹색건축을 에너지 절약의 개념으로만 생각한다면 돈에 관계없이 에너지를 마음껏 사용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하고 귀찮은 기술정도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히 경제성 측면에서 녹색건축은 그저 돈이 많이 들어가는 기술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녹색건축의 개념을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이명주 교수는 주장한다.

그녀는 "집값에만 얽매여 집에 물이 새거나 단열, 방습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도 교통이나 교육 등 주변 여건의 변화로 가치만 상승하면 된다는 인식이 문제"라며 "집의 퀼리티와 관계없이 가격만 오르면 된다는 식의 관점으로는 녹색건축이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집을 투자의 대상이 아닌 정말 살만한 집으로 만드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급격한 경제발전과 생활수준의 향상 속에 정작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자체의 퀼리티는 외면당해왔다"면서 "이제는 삶의 질이 향상된 만큼 좋은 집을 지어야한다"고 밝혔다. 제 값을 주고 제대로 된 건물을 짓는 게 쾌적한 삶과 자연 환경, 지속가능한 건물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 스웨덴 말뫼에 세워진 저에너지주택.
단열시공·엘리베이터 문화 바꿔나가야


우리나라는 콘크리트 건물을 올리고 안쪽에 단열재를 부착한다. 그러나 태양에 콘크리트를 직접 노출하면 열하중(태양이 쏟아내는 열) 때문에 건물의 손상이 빠르게 진행된다. 또 층간 콘크리트 사이에는 단열재를 시공할 수 없기 때문에 내부 모서리에는 결로(結露)와 곰팡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콘크리트 외벽에 단열재를 부착하면 이 같은 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 대신 공사비가 크게 늘어난다. 하지만 이 교수는 건물의 단열만 제대로 되도 쾌적한 실내 환경 조성과 에너지 절약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는 고층아파트의 경우도 에너지 절약과는 거리가 멀다.

이명주 교수는 고층아파트 홍수로 인해 1~2가구마다 설치되고 있는 엘리베이터도 녹색건축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엘리베이터는 관리비 상승과 에너지 낭비를 초래하게 된다"면서 "과거에는 몇 세대가 하나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는데 편의성이 강조되면서 불필요한 소모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너무 편한 것만 추구하다보니 조금 걷고 함께 나눠 쓰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지적이다. 에너지 절약형 건물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이 너무 편했던 셈이다.

이 교수는 "결국 녹색건축의 최우선 목표는 인간이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고, 모든 세대(generation)가 함께 살 수 있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개념이 건축에 적용되려면 에너지 절약 설계가 선행돼야하고, 그 결과물로 지속가능한 건물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환경을 생각하고 기후변화를 대비하는 에너지 절약형 건축이 보급될 수 있다.

이명주 교수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지역과 공간에 관계없이 주택이 5층 이상을 넘지 않는다. 5층은 엘리베이터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보편적인 거리를 뜻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만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녹색건축은 장애인과 노인, 여성들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건축이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사회 복지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 이명주 교수(제드엠제이건축사무소 설립자)가 설계한 국내 최초의 리모델렝 제로에너지하우스 노원 에코센터.
개발된 녹색기술, 현장 적용 방안 필요


녹색건축은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취약계층의 주거권 확보와도 연계된다.

이 교수는 "정부가 저소득층 복지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도시빈민층의 에너지 효율향상 사업은 모순점이 많다"며 "에너지 효율향상에만 집중하다 보니 창호나 보일러 교체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사실 누수와 결로현상이 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물의 상태에 따라 누수만 막아도 에너지 효율은 향상되는데도 '에너지'와 직접 관계가 있는 항목에 한해 지원하기 때문에 일부 현장에서는 벽으로 비가 새 들어와도 창문만 바꿔주고 가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수백 가지의 녹색기술이 개발됐음에도 실제 건축현장에서는 적용되고 있지 않는 것도 녹색건축 정책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녀는 "이젠 단일 주택의 에너지 효율향상을 넘어서 주거단지 전체를 바라보는 개념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모델하우스 수준을 벗어나 경제성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한 건물, 교통, IT 등 종합적인 단지 설계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이명주 교수가 이끄는 명지대 컨소시엄은 국토해양부가 발주한 '제로에너지 주택 실증단지 구축 및 최적화 모델 개발 계획'의 기획 사업을 수주했다.

이 사업은 국토부와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이 주관하는 제로에너지 주택단지 조성사업의 설계 타당성을 분석·기획하는 것으로 명지대 컨소시엄은 ▶인간중심의 단지 ▶자연 친화 ▶에너지절약을 전략으로 내세워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명주 교수는 "녹색건축은 한두 가지의 기술을 첨가해 기존 건축을 고급화하는 브랜드 사업이 아니라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주 교수는 명지대학교, 홍익대학교, 베를린 공과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독일 GKK건축사무소, CH.DIRKES 건축사무소에서 건축실무를 거친 후, 독일 건축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주요 연구로는 저탄소·저에너지 단지계획, 에너지절약형 건축물 설계,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건축물 매뉴얼과 세대친화 주거단지 및 건축물 설계 디자인 매뉴얼 등이 있다. 현재 녹색성장위원회 녹색건축 부문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6월 명지대학교 교내 벤처기업인 ㈜제드엠제이건축사사무소(ZedMJ, Zero Energy Design Myongji University)를 설립했으며 부설 제로에너지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김부민 기자 kbm02@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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