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량 최대189만톤서 현재 12만톤으로 뚝
친환경·수익형 비축기지로 탈바꿈시도

[이투뉴스] 4월이 넘도록 찬바람을 몰고오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완연한 봄을 맞이했다. 길에 핀 봄꽃들이 어울리는 계절이 됐다. 한낮에는 덥기까지 하다.

따뜻한 봄바람은 에너지 소외계층에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는 찬바람이 물러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여건상 고급 연료인 가스를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 소외계층에게 저렴한 비용의 연탄은 겨울을 나는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정부도 이들을 돕기위해 연탄에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유사시 언제든지 연탄을 만들 수 있는 비축 석탄도 보유하고 있다.

국내 비축 석탄은 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1000만톤이 넘을 정도로 풍족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유일한 에너지 자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다.

하지만 정부는 석탄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이유로 80년대 후반부터 강도높은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축 석탄량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지난 17일 강원도 정선군 석탄 비축기지 '석항사무소'를 방문한 날은 20여년이 지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의 현주소와 새로운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석항사무소를 찾는 것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석탄이 산처럼 쌓여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변을 꼼꼼히 살펴봤지만 빽빽한 나무들 한켠에 넓게 펼쳐진 검정색 천막(방진망)만이 눈에 들어왔다.

이정표를 따라 겨우 찾아간 석항사무소는 의외로 조촐한 모습이었다. 석항사무소를 지키는 인원도 서동만 소장과 고광수 관리과장, 외주인원 3명 등 5명 뿐이다.

본사에서 인사팀과 남북협력팀에서 일했던 서 소장은 작년 6월에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고 과장은 3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의 주임무는 석항사무소의 비축 석탄을 관리하는 일이다.

사무소 직원이 적은 이유는 비축 석탄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에는 12만톤의 석탄이 비축돼 있다. 1톤당 약 270장의 연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약 3240만장의 연탄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기지가 최대 200만톤을 비축할 수 있는 규모라는 점을 생각하면 12만톤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한 때 7만3000평 부지에 석탄이 꽉차있었지만 지금은 그에 비해 조촐하다는게 서 소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석탄산업합리화 이후 전국의 많은 광업소가 문을 닫게 되고 현재 석탄공사가 운영하는 도계, 장성, 화순광업소만 남아있는 상태다. 그 만큼 석탄 생산량과 비축량이 줄어든 것이다.

200만톤의 석탄이 있어야 할 곳에 12만톤만 비축돼 있으니 넓은 부지 중 10%에도 못미치는 공간만 이용하고 있는 셈이어서 그 수치가 더욱 작게 느껴졌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결과 석탄이 몇 개 분류로 나뉘어 산재해 펼쳐져 있다. 산처럼 쌓여있을거란 생각이 틀린 이유를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다보니 에너지 안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걱정스럽다'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서 소장은 하지만 비축기지 석탄은 정부의 지시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절대 출하할 수 없는 만큼 현재 비축량만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또 겨울에는 연탄수요가 많기 때문에 비축기지는 항상 출하 준비 상태에 있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지만 이제 겨울도 지났기 때문에 더 많은 양의 석탄을 비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겨울이 지났다고 소임을 다한 것은 아니다. 다가올 장마와 또다른 겨울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1년간 손상된 비축기지 각종 시설물들을 관리해야하기 때문이다.

석탄가루가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축기지 주변에 이중으로 쳐놓은 방진망을 수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2040m에 달하는 방진망은 바람, 눈 등에 의해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방진망은 조금만 손상되도 제때 신경쓰지 않으면 금세 허물어지는데다, 이 경우 석탄먼지가 날릴 것을 우려한 민원이 발생할 수도 있어 인근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매서운 바람에 방진망 일부가 흘러내렸지만 조만간 손을 볼 계획이라는 게 서 소장의 설명이다.

지난 식목일에는 방진망 주변에 아카시아 나무를 심었다. 이 또한 방진망을 보호하기 위한 일환이다. 아카시아 나무는 빨리 자라고 생명력도 질겨 방진망 주변에 심으면 일종의 방어막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비축된 석탄에는 초록색 천막이 덮혀있고 그 위에는 3m 간격으로 타이어가 올려져 있다. 석탄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가 가장 크지만 석탄에서 발생하는 먼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뒤따른다.

장마에 대비하기 위해서 하수구를 관리하는 것도 비축기지에서는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많은 비가 내리면 석탄을 머금은 검정물이 하수구로 빠져나가는데, 정화시설을 해놓지 않으면 그대로 강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하수구 통로 한 곳에 갈대숲을 넓게 조성해놓고 있다. 여기를 거치면 검정색이던 물은 마지막에는 투명한 물로 바뀐다는 게 서 소장의 설명이다.

이같은 일련의 활동들은 모두 비축기지가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서 소장은 "인근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이 올라와 있는 만큼 철저한 관리로 민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부터는 사용하지 않는 비축기지 부지를 인근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방안의 일환으로 목초 오차드그라스를 약 3000평 부지에 심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석탄이 쌓여있던 자리는 검정 탄가루가 그대로 남아있어 보기도 흉하고 석탄먼지가 발생할 우려도 있는데, 이를 갈아엎고 목초를 심어 풀이 자라는 땅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것이다.

오차드그라스는 다년생 식물로 한번 풀이 자라면 생명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소사료로도 쓸 수 있는 만큼 이를 필요로 하는 인근 주민들에게 지급할 예정이다.

비축기지 한켠에는 오차드그라스가 제법 자라나 있어 석탄이 뒤덮혀 있는 바로 옆 땅과는 색상부터 묘한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이 아이디어를 제안한 고 과장은 "석탄 비축량 저하로 늘어나는 유휴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다가 이 같은 방법을 고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석탄가루가 덮여있던 땅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정화 효과가 있는데다 여기서 나는 목초를 인근 주민들에게 나눠주면 비축기지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고 과장은 기대하고 있다.

또 현재는 3000평 부지에만 목초를 심었지만 어느정도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이를 점차적으로 늘려나가고 생산량이 늘어나면 향후 이를 판매해 별도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석탄공사 내부적으로 비축기지 유휴부지 활용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석항사무소가 이에 대한 해결책과 수익 아이템을 동시에 만들어낸 셈이어서 성공여부에 관심이 크다.

현재 석항사무소는 인력부족으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축 석탄과 기지를 관리하는 임무에 더해 과거 함백, 나전, 영월 광업소 등에서 일했던 약 4000명에 달하는 인력풀을 관리하는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광업소에서 일했던 이들은 경력증명서를 발급받기위해 여기 사무소를 찾아오는데 이를 일일이 확인해서 내어주는게 생각보다 일손이 많이 간다는 설명이다.

모든 경력증명서는 스캔을 통해 데이터베이스화 돼 있어 검색이 가능하지만 민원인이 세심한 확인을 요청할 경우 직접 문서를 꺼내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석항사무소는 하지만 석탄 비축기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고 이 증명서가 진폐를 호소하는 탄광근로자들에겐 생ㅅ나 생계의 문제가 되기도 하는 만큼 허투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석항 비축기지가 영월군과 정선군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보니 간혹 양쪽군에서 좋은 일이 있으면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가서 축하해주는 등 발품도 팔고 있다.

서 소장은 "석항사무소 이미지가 곧 석탄공사의 이미지와 직결되는게 아니겠냐"며 "주민들과 일선에서 접하고 있는 만큼 최소한의 민원도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만규 기자 chomk@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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