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원전줄이기 종합대책에 지경부 '속앓이'

[이투뉴스] 지방자치단체가 에너지 절감 및 생산에 대한 종합대책을 내놨다. 여러 측면을 감안할 때 이 정도 규모의 대책을 내놓은 것은 에너지 역사상 처음으로 보인다. 수요절감과 효율개선, 에너지생산까지 현재 우리 에너지산업이 겪고 있는 과제와 미래가 상당부문 담겨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원전 하나 줄이기 종합대책’에 대한 얘기다.

그동안 국내 에너지정책은 동력자원부, 상공자원부,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 지식경제부 등 수없이 이름을 바꾼 중앙정부가 맡아 왔다. 지자체는 중앙정부가 정한 정책방향에 맞춰 관련 예산을 집행하는 보조자 역할을 담당했다. 수십년 동안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시가 이번에 발표한 대책은 모든 면에서 도발적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다. 3조원이 넘는 예산에서부터 문제에 대한 인식, 접근 방법, 대안 제시 등에서 상식을 뛰어 넘었다. 으레 중앙정부와 상의해서 처리하고, 그 지시를 따랐던 관례에서 완전히 벗어난 셈이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 향상은 양측 모두 좋아하는 관용구다. 하지만 문제는 흔히 말하는 ‘제목’이었다. ‘원전 하나 줄이기’ 라는 표현이 양측의 불신을 초래했다. 원자력발전을 청정에너지에 포함시킨 것은 물론 이를 미래성장동력으로 삼았던 지식경제부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테마였던 셈이다.

지경부와 서울시는 그동안 소위 '타이틀 변경문제'를 놓고 많은 물밑 대화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는 원전 하나 분량의 에너지를 절감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밀어 붙였고, 지경부는 이왕이면 ‘원전 줄이기’라는 부정적(?) 이미지는 빼고 에너지절감이라는 의미를 강조하자고 요구했다.

모든 논란은 결국 박원순 시장의 성향에서 출발했다. 시민단체에서 잔뼈가 굵은 박 시장은 그동안 직접적인 언급은 자제했지만 ‘가급적 원전은 줄이자’라는 뉘앙스까지 피하지 않았다. 지경부로서는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이같은 박 시장 의중을 담은 정책을 점차 구체화했고, 지경부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끄러운 진행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관계 부처 장관과 함께 폼나게 정책을 공표하고자 했던 서울시는 박 시장이 단독으로 언론설명회를 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경부는 지경부대로 속을 끓이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를 면치 못했다.

국내 유일한 특별시인 서울시가 야심차게 내놓은 에너지 종합대책이 중앙정부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결국 예산확보 등 실현 가능성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경부 역시 정책 신뢰성에서 적잖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소외받는 것은 좁게는 서울시민, 넓게는 국민 모두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장관과 시장이 이벤트를 함께 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아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어느 정책을 따를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국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서울시와 지경부가 원전을 둘러싼 제2라운드 논쟁을 벌이기에 앞서 가장 고민해야 할 숙제가 바로 그것이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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