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프라이싱 제도 도입 타당성 공청회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확대 보급할 목적으로 정부 주도하에 내년 중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 그린프라이싱 제도가 사전 검토가 부족한 상태서 강행될 경우 ‘정책적 미숙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됐다.

 

이 같은 지적은 21일 서울 코엑스 컨퍼런스센터에서 산업자원부 주최로 열린 '그린프라이싱 도입 타당성 검토를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패널들에 의해 제시됐다. 그러나 제도 도입을 주관하고 있는 정부는 “문제는 성숙하지 않은 시민의식”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서울시 ‘면피조항 될라’=이의준 에너지기술연구원 지열연구센터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이날 공청회에서 패널토론자로 나선 한전 관계자와 시민단체 등은 정부 주도의 성급한 정책추진에 일제히 우려의 시각을 나타냈다. 아울러 이들은 또 한전 위주의 운용주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자체를 대표에 토론자로 나선 조항문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위원은 지역난방 공급자까지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하며 그린프라이싱 제도가 되레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아닌 지자체의 ‘면피조항’이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위원은 “서울시의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신재생에너지 목표치인 2%를 맞추기 힘든 상황인데 이를 전력부문에서 충당한다는 것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며 제도도입 자체를 반겼지만 “현재의 정책은 지자체는 무시되고 산자부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된 형태”라고 꼬집었다.

 

그는 그린프라이싱 제도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열쇠가 될 수 있지만 공원 같은 곳에 신재생에너지를 확대 설치하려고 해도 법적 제약이 심한 상황에서 이 제도가 오히려 의무를 진 사람들을 위한 면피조항이 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 한국전력 “충분한 사전검토 필수”=한국전력 측은 정책적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한 뒤 법적용을 시도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을 한결같이 폈다. 한전은 또 제도 도입에 앞서 국민적 합의가 선결돼야 하며 현재 시행중인 발전차액제와의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전을 대표에 토론자로 나선 안남성 전력연구원 전력경영연구 센터장은 “녹색가격제 도입이 한전의 약관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며 “정부 정책의 기본적 성격은 기부금 형태에 가까워 전기사업법 개정이 필요해 향후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민적 합의가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으며 “설문조사에서 요금인상에 대해 15%만 찬성한다고 했는데 이조차 신재생에너지를 이해하는 집단”이라며 “본격적인 법적용에 앞서 소비자 행동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검토가 이뤄져야 국민적 합의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현재 시행중인 발전차액제와 차별화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하며 한전이 발전사업에 참여할 수 없는 현재의 제도를 개선해 신재생에너지사업 권한을 동시에 줘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어 신재생에너지 사업자 입장에서 발표에 나선 강형구 한국수력원자력 실장은 ‘시장의 원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실장은 “유럽의 경우 환경단체가 앞서 국민의 의식을 일깨우고 계몽에 나섰다”며 “제도를 도입할 때 공공기관이 나서면 시장의 원리를 존중하고 방법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등 ‘추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시민단체 “국가주도 방식자체가 문제”=제도 도입의 주체가 정부라는 사실이 문제의 발단이라고 주장한 측은 시민단체들이다.

 

토론에 나선 박성문 에너지나눔과평화 부장은 “어떤 제도든 주도가 누구냐에 따라 사업효과와 실효성이 달라진다”며 “정부 입장에선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자율추진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방식은 그린프라이싱제의 장점인 홍보효과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박부장은 “한전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제도를 몰아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기금의 집행도 정부 밖의 이해구조가 함께 모인 공동기구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주도의 입법화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그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해법을 전력산업기반기금 확대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부장은 “미집행액이 발생하고 있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신재생에너지 지원 비율을 확대하고 산업용 전력요금을 정상화하는 방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며 “제도 도입에 앞서 전력요금에서 혜택을 받아온 산업계가 환원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준관 환경운동엽합 팀장 역시 정부 주도방식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다. 안팀장은 “소비자의 자발성이 가장 큰 관건으로 자발성이 참여로 이어져야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다”며 “정부 주도하에 시행된다는 것은 이미 자발성이 약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안팀장은 “이렇게 되면 소비자 인식 증진에는 별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근본 취지와 다르다”며 “차라리 용어 자체를 ‘공공기관의 녹색전력 기금제’ 등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재원관리 주체를 문제 삼으며 ”징수는 한전이 하되 재원관리는 별도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방청객들은 신재생에너지의 범주를 정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과, 제도를 도입하기 이전 현재 사업자들의 발목을 잡는 제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 산자부 “문제는 시민의식”=이 같은 지적에 대해 산업자원부는 오히려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을 이유로 책임을 피했다. 산자부는 신재생에너지분야가 지나치게 뒤떨어졌다는 점을 문제 삼아 제도 추진을 강행할 입장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토론에 나선 김영삼 산자부 신재생에너지팀장은 “그린프라이싱이란 도그마에 산자부가 빠져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이처럼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시민의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팀장은 “정부 주도란 지적이 나왔는데, 정부는 틀을 만들 뿐 선택권은 온전히 소비자에 있다”면서 “우리는 시스템을 만들 뿐 100% 민간 주도로 가야한다는 생각은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요금에 적용할 경우 한전이 약관만 고치면 되고, 기부금 형태일 경우는 전기사업법 자체를 바꿔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며 “근본적인 제도의 취지는 재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국민의 의식이 너무 부족해서이기 때문”이란 원론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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