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풍조 심화, 전기로의 쏠림 등 자원배분 왜곡
정부 정치적 이해득실만 치중…결단 미뤄선 안돼

[이투뉴스] 포퓰리즘[populism]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옳고 그름 등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일반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행태.

겨울철 기온이 내려가면 에너지업계 대목이 시작된다. 기업과 가정이 난방을 위해 전기, 가스, 열 등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에너지기업들은 울상을 지었다. 에너지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이상한 에너지가격구조 때문이다.

전임 김쌍수 한전 사장은 전기요금을 제대로 올리지 못해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며 작년 소액주주들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4년 연속 적자인 한전의 아픔이 묻어난다. 가스공사와 지역난방공사 역시 연동제에도 불구하고 정부 통제로 손실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기를 필두로 가스, 지역난방 등 에너지가격 현실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오죽했으면 OECD까지 나서 한국보고서를 통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해 과다한 전기소비를 감축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내놓았다. 본지는 금주부터 4회에 걸쳐 국내 에너지가격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자세히 알아보는 연재에 들어간다.

◆에너지공기업 적자 만연, 민간이면 다 망했을 것
관세청과 지식경제부의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올 1분기 주요 에너지 수입액은 481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7억달러에 비해 18.2%나 증가했다. 수입량이 증가해서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만큼 국제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 원유 수입량은 1% 남짓 줄었으나 수입액은 전년동기 231억달러에서 272억달러로 18%나 증가했다. 가스도 수입량은 3.6% 줄었지만, 수입액은 23.6% 증가한 98억달러에 달했다. 석유제품과 석탄 수입량도 각각 0.3%, 1.3% 소폭 증가에 그쳤지만, 수입액은 각각 13.8%, 14.7%씩 늘어났다.

이처럼 국제 에너지가격이 증가하는데 반해 국내 가격은 거의 요지부동에 가깝다. 매년 국제유가는 치솟고 있지만 국내가격 적용은 미뤄지거나 일부만 적용됨으로써 에너지공기업들의 만성적인 적자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2008년에는 요금을 올리지 못하는 대신 추경까지 편성, 국민 세금으로 적자를 메꿔주는 촌극도 벌였다.

일각에서는 전기요금이 지난해에만 두 차례 올랐다고 지적한다. 8월과 12월의 인상폭을 합치면 10%에 가깝다. 그런데 왜 한전은 지난해 3조5000억원의 당기 순손실이 났을까. 단순하게 지난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치솟는데다 오랜 세월 원가보다 싸게 전기를 공급했던 여파로 누적적자 8조원이 한전을 옥죄고 있다.

가스공사 역시 재무제표상으론 이익이 났지만 미수채권을 포함하면 작년에만 사실상 2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인상요인이 발생했지만 정부가 제때 적용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지역난방공사도 열요금 인상에 목을 매달고 있지만 가스공사와 같은 처지다. 천연가스와 지역난방요금은 법을 통해 연동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법을 지키지 않는 셈이다.

국내 에너지 전문가는 “100원짜리 제품을 87원에 팔아 매년 수조원씩 적자를 내면서도 버틸수 있는 것은 공기업이기 때문”이라면서 “민간기업이었다면 망해도 진작에 망했을 것”이라고 정책당국을 비난했다.

◆에너지 낭비 등 자원배분 비효율 초래
우리가 쓰는 에너지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초등학생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한겨울에도 아파트 안에선 반팔티를 입고, 여름철에는 냉방병을 걱정해 긴소매 옷을 챙겨야 하는 웃지 못할 풍경을 숱하게 볼 수 있다.

벌이가 늘어 풍요로운 생활을 누린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공공재인 에너지 낭비가 그만큼 심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2일 열린 녹색성장위원회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낭비가 심한 나라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낭비풍조에 대해 대통령까지 정확한 상황인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절약을 유도하기 위한 가격구조 개선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에 목을 매는 정부가 그 기초가 되는 에너지가격구조 개편에는 방관자적 자세를 유지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2차 에너지인 전기를 난방용까지 확대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업무용 건축물의 경우 EHP가 대부분을 장악, 동절기 피크수요가 하절기를 추월했다.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요금상승 속도가 더딘 전기의 가격경쟁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전기 블랙아웃까지 염려해야 하는 사태에 이른 셈이다.

◆이중잣대 정부·언론, 포퓰리즘 벗어나야
에너지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 지경부, 물가와의 관계를 따지는 기재부, 최종적으로 청와대까지 현 에너지가격의 문제점을 모르는 이는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 또한 그들이다. 표면적으로는 에너지가격을 올릴 경우 공공요금 상승을 불러와 물가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다.

하지만 실질적인 배경에는 흔히 말하는 ‘민심은 곧 표’라는 정치적 이중성이 존재한다. 에너지 과소비 풍조를 막고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위해선 손대야 하는게 맞지만 총선·대선 등에서의 인기를 위해 눈감고 있다는 얘기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산업경쟁력도 한번 되짚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저렴한 산업용 요금에 기댄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과도하게 대접받는 풍토를 두고 나온 말이다. 기후변화가 세계적인 이슈로 발돋움한 상황에서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은 최고의 효율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만큼 에너지가격에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분석이다.

방송과 일간신문이 주도하는 여론이라는 것도 다 믿을 건 못된다. 더욱이 에너지공기업 임원들이 받는 억대 연봉을 운운하며 힘든 서민들에게 요금폭탄이라는 굴레를 씌운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평범한 4인 가족 기준 에너지요금에 비해 통신요금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에너지복지 시행도 지금과 같이 낮은 가격에선 여력이 없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에너지가격 현실화 및 제도개선이 안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가격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하부 공기업들이 말을 잘듣고 통제가 가능하다는 정치지향적인 공무원들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독설을 날렸다.

[특별취재팀 채제용·채덕종·김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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