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규 SR코리아 대표

 

[이투뉴스/ 황상규 칼럼] 최근 업무차 도쿄와 후쿠시마를 방문하게 되었다. 출퇴근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지하철도 타고 시내를 둘러 보면서 가져간 방사능 계측기로 수치도 재어보았다. 도쿄는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부터 30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방사능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시민들의 반응은 평온한 것 같았다.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인가. 언론 보도에서 봤던 것과는 달리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하철 한 칸에 2~3명 정도가 마스크를 하고 있는 정도였다. 이제 방사능의 위험은 지나간 것일까. 방사능 계측기가 보여준 결과는 도쿄 시내와 서울 시내가 비슷한 수준을 보여 주었다. 시간당 0.10~0.15 마이크로시버트 정도. 방사능 수치로만 보면 안전한 수준이다.

 

후쿠시마 사고 충격으로 일본 정부는 지난달 5일 전국의 54개 원전을 가동 중지시켰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던 조치였다. 당장 전력대란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그다지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들은 ‘원전이 모두 멈춘 뒤 올여름 전력이 부족해 전력사용이 제한된다면 참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74%가 ‘참을 수 있다’고 답했다. 또 ‘정기 점검을 마친 후, 원전의 재가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63%가 반대의 의견을 냈다. 찬성(31%)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일본 정부는 원전 재가동을 서두르고 있지만, 민심은 ‘탈(脫)원전’ 지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전 중지 후 새로운 규정이 만들어졌는지 시내 곳곳에 있는 각종 음료 자판기들이 작동은 하고 있지만, 대부분 불이 꺼져 있다. 자세히 보니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이 자판기는 소비전력량 삭감(削減)을 위해 24시간 소등(消燈)하고 있습니다. 판매중.’ 우리나라의 서울시도 현재 원전1기 줄이기 정책을 추진 중인데, 시내 곳곳의 자판기를 소등하는 프로그램은 당장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인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1년 이상이 지났지만, 사실 지금부터 새로운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방사능 물질의 특징은 사라지거나 변형되지 않고 오랜 기간 자연 환경 속을 배회한다는 점이다. 방사능 물질은 단지 스스로의 반감기(半減期)에 따라 서서히 줄어들 뿐이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만년. 생태계 순환 관점으로 보면 방사능 물질은 이제 넓은 지역으로 퍼져가서 토양에 스며들고 식물과 동물을 통해 먹이사슬로 옮아가고 있을 때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제 외부피폭보다는 물, 음식 등으로 섭취하는 내부피폭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위험성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돼 진행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일본 근해의 참다랑어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성물질을 몸에 축적한 채 태평양을 넘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해역까지 도달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참다랑어는 몸속에 방사능 물질을 지닌 채 해류보다 빠른 속도로 태평양을 건너 간 것이다. 이처럼 원전 사고를 통한 방사능 오염은 생각보다 빠르게 넓은 지역으로 퍼져 나간다. 이미 우리의 밥상 위에도 미량이지만 서서히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일본산 대구와 명태가 방사능 오염 정도가 기준치 이내라는 명목으로 국내에 유통되고 있고, 원산지 관리가 허술하여 추적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원전 20기가 가동 중인 우리나라 현실에서 보면,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는 남의 일이 아니다. 후쿠시마와 도쿄의 거리는 고리, 월성, 울진, 영광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의 평균 거리와 비슷하다. 이미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비핵(非核)과 탈핵(脫核)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핵드라이브 정책에 목을 매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와 정치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이제 더 이상 우리 다음 세대에게 후쿠시마와 같은 고통을 전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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