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러지연료화편

 

글 싣는 순서

(1) 플라스틱 유화산업
(2) 슬러지연료화
(3) 목질계 바이오매스

하·폐수처리장을 운영하는 지자체는 요즘 슬러지(찌꺼기) 처리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런던협약에 따라 정부가 2012년부터 슬러지와 축산폐수의 해양투기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젠 매년 1000만톤 가량을 바다에 내다버리던 육상 슬러지를 직접 처리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아직 뚜렷한 대책은 없다.
올 초 환경부가 내놓은 ‘해양투기 폐기물 육상처리 대책’에 따르면 2004년 현재 해양투기 폐기물 배출총량은 974만톤이다. 이중 하수처리장 등에서 발생한 사업장 폐기물은 386만톤에 달한다. 지자체가 처리비용이 저렴한 해양배출을 선호하면서 최근 급격히 배출량이 증가했다.
일본은 내년부터 해양투기를 중단할 예정이며 미국과 유럽 등은 이미 90년대부터 하수오니(하수 침전물)의 해양투기를 전면 금지해왔다. 이에 궁지에 내몰린 해양수산부는 올해부터 ‘육상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육상에서 처리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육상의 쓰레기는 육상에서”=하수슬러지는 머리카락에서부터 중금속 물질까지 다양한 생활부산물이 섞여있는 찌꺼기다. 폐수처리장에서 물을 걸러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찌꺼기 덩어리가 생기게 마련인데 그동안은 바다에 내다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각 지자체는 이를 소각하거나 매립 또는 유기성 비료로 자원화해야 한다. 우선 환경부는 하수오니ㆍ음식물류폐기물ㆍ축산폐수 등을 에너지로 이용하는 '바이오매스 2020(bio-Mass 2020)'을 추진키로 했다. 투기가 아니라 태워서 에너지로 만들겠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된 추진 계획의 실체는 없다. 2020년까지 바이오매스 상용화를 위한 기반을 확보하고 수요기반을 확충하는 한편 민간부문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정도가 대책의 전부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학계의 한 관계자는 “막상 환경부가 바이오매스를 상용화한다고 했지만 에너지 분야는 산업자원부 소관이기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며 “말로만 자원순환형 체계를 만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소각도 에너지 차원에서 적극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업체 슬러지에너지화 시도=이처럼 정부가 슬러지자원화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슬러지에너지 시대를 가장 발 빠르게 앞당기고 있는 곳은 민간업계다. 이미 일부 기업은 슬러지 자원화에 대한 다양한 실험결과를 토대로 상용화에 주력하고 있다.
경기도 의왕시 상하수도사업소와 환경전문기업 (주)셈즈는 처리장에서 발생한 슬러지를 탄화시켜 연료화하는 시험을 1년째 시도 중이다. 이래저래 처치곤란인 슬러지를 발열량 높은 연료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전해복 셈즈 대표는 “하수처리장이나 정수장에서 발생한 슬러지에 황토를 섞어 연소시키니까 온도가 무려 1050도까지 올라갔다”며 “이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일반 연료에 버금가는 슬러지에너지를 개발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업체에 따르면 하수처리장 등에서 발생하는 슬러지는 각종 유기물을 충분히 함유하고 있어 적절한 건조절차만 따르면 연료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더욱이 슬러지연료화는 전국 각지에 위치한 정수장과 하·폐수처리장이 매일 다량의 슬러지를 발생시키고 있어 원료공급 걱정이 없고 별도의 슬러지 처리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석이조의 대안이란 설명이다. 한동수 의왕시 하수계 담당자는 “골치 아픈 하수·정수 슬러지도 저열탄 등과 적절히 배합시켜  탄화시키면 3100~3200칼로리의 훌륭한 연료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며 “우선 수요가 많은 화훼농가나 발전소가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제품을 개발해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담당자는 또 “시가 현재 용역 중인 탄화설비(건조설비) 도입문제를 마무리 지으면 하수슬러지는 물론 음식물쓰레기까지 연료로 사용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이는 국내 최초의 슬러지 연료화사업으로 의미가 깊다”고 강조했다.
 
◆중금속 등 유해물질 방출 ‘숙제’=하지만 슬러지 연료화 기술은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슬러지의 특성상 각종 물질이 섞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연소시키면 각종 유해물질이 배출되기 때문에 자칫 또 다른 환경오염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일부 시험결과 하수슬러지를 자연상태서 건조시켜 태우면 다이옥신이나 질소산화물(NOx) 등 치명적인 물질에 배출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원료를 고온상태에서 숯처럼 탄화시키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업계의 주장이다. 전해복 셈즈 대표는 “자연건조보다 탄화시키는 방법을 택했더니 유해물질의 배출이 거의 줄어들었다”며 “이렇게 해도 제거되지 않는 중금속 문제만 풀어낸다면 슬러지가 연료로 각광받을 시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중금속 역시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을 국내연구진이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이들 기술이 유기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어 성공적인 자원화 기술로 빛을 발하도록 집중적으로 연구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보다 앞서 해양투기를 금지한 일본은 이미 수년전부터 슬러지 연료화에 대한 국책과제를 진행시키고 있다. 정부가 민간보다 먼저 변화된 환경에 대비해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지원에 앞서 현장이 수용가능한 경제성 있는 기술이 먼저 개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윤찬 부산발전연구원 환경연구부 박사는 “아무리 뛰어나고 효율적인 기술이 개발된다고 해도 많은 설치비나 처리비가 들어가는 기술은 지자체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서 “슬러지 연료화사업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형태로 개발되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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